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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키온, 마르키온 주의(Marcion, Marcionism)

작성자봉서방|작성시간14.12.19|조회수510 목록 댓글 0

마르키온, 마르키온 주의(Marcion, Marcionism)

 

 

 

 

(1) 신학: 신학에 있어서 마르키온의 주요 주장은 율법과 구약의 의의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 즉 그 가장 중요한 속성이 선함 또는 사랑하심과 친절함이신 하나님과는 무관하거나 그보다 열등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두개의 분리된 신성에 관한 관념은 케르도를 통하여 영지주의에서 온 듯하다. 따라서 이런 사실은 다음과 같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의 마르키온에 대한(달리는 모호하기만 한) 기록과 연관될 수 있을 것이다. 즉 바실리데스와 발렌티누스와 '동시대 인물인' 마르키온은 "마치 한 나이 많은 사람이 젊은이들을 데리고 있듯이 그들과 함께 있었다"고 하였다. 모든 경우에 있어서 마르키온의 신학은 영지주의자들의 신학과 달랐다. 즉 '아이온'의 이론이 전혀 없다거나, 유대 및 기독교의 경전을 해석함으로써 나올 수 없는 어떤 요소도 배제하고 있다는 것 등이 그러하였다. 마르키온의 가르침은 이교도적이라고 전혀 말할 수 없었다.

 

 [Antitheses]라고 이름이 붙었던 마르키온의 지금은 유실되고 없는 저술은 마르키온의 신학의 증거를 기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신학이란 구약의 하나님에 관한 사항과 나란히 그에 반대되는 신약의 하나님에 대한 예수와 바울의 가르침을 적어 놓은 것이었다.

마르키온이 영지주의와 더욱 더 달랐다는 점은 그가 하나의 완전히 체계적으로 사변적인 신학을 구축하려는 노력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르키온은 서로 대조가 되는 신 관념을 제기만 하였지 그 관념들을 더 높은 차원에서 조화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마르키온에게 있어 두 개의 archai(아르카이: 힘, 주권 등의 뜻)는 신약성경의 하나님의 도덕적 우월성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별개였고 또 별개인 채로 그렇게 남아 있었다. 이러한 마르키온의 입장이 가지고 있는 논리적 약점은 테르툴리아누스에 의해 잘 지적되고 있다. 한편 하나님의 개념에로의 수, 즉 복수의 도입은 참된 신성의 본질과 어긋났다. 그리고 또한 다른 면에서 볼 때, 다른 신이 창조하고 소유하고 있는 세계에 선하신 하나님-즉 '낯설은 하나님'-이 개입한다는 것은 분명히 이해에 있어서 장애물이 되었다.

 

(2) 기독론: 마르키온에 따르면 선한 하나님에 의하여 사용된 자기 계시의 양식은 "티베리우스 통치 제15년에 그(예수 그리스도)는 갈릴리 지방 도시인 가버나움에 강림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다 테르툴리아누스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물론 이것은 창조주의 하늘로부터 그가 내려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 선한 신은 이미 전에 그 자신의 하늘로부터 창조주의 하늘로 내려왔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자신의 아버지이신 선한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의 관계는 아들이라는 관념 이외의 다른 것으로는 정의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스도의 인간적 체험과 고난에 대하여 마르키온은 전혀 가현실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마르키온은 그리스도가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복음서의 기사를 부인하면서 예수께서 29년에 그리스도로 갑자기 나타났다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이는 전적으로 새로운 현상이며 과거 역사에 어떤 근거가 되는 점이 있었다거나 혹은 사람들이나 인류 종족에게 관계되어지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르키온은 그리스도의 땅 위 생애 및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힘을 인간 구원을 위해 필요한 수단이라고 보면서도 우리 주님은 외형상으로만 고난을 받았다고 믿었다. 다른 한편 마르키온은 그가 순수한 것으로 믿었던 제3 복음(누가복음)의 여러 부분에 기사화되어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받아들였
으며 또한 당시의 기독교인의 신조에 나타난 다른 여러 믿음들을 같이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마르키온은 그리스도께서 하데스에 내려가셨고, 거기에 갇혀있는 이전 시대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설교를 하셨다는 것에 대해서 매우 강조를 하였다.

마르키온은 두 분의 하나님을 믿고 있듯이 또한 두 분의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있었다. 마르키온의 이론에 의하면, 구약에 나타난 메시야적인 예언들은 참된 예언들이었다. 그러나 그 예언들이 언급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구약성경의 의로우신 하나님의 사자로서 후에 나타나게 되어 있던 그런 다른 메시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메시야의 활동에 대한 마르키온의 설명은 구약 예언서의 그 메시야에 대한 이야기에서 별로 더 발전된 것이 아닌 것 같다.

 

(3) 성경 비평과 주석: 마르키온은 성경을 취급함에 있어서 구약성경을 한 역사적인 문서로서 그 객관적 진리성을 높이 평가하고 신약성경에 대해서는 놀랍고도 대담하게 주관적인 비평을 가하여 신구약 양자를 연결시켰다. 그런데 이 신약.구약을 다루는 그의 자세는 그의 입장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점에 크게 좌우되고 있었다. 구약성경의 신학들과 자기가 느끼는 것처럼 신약성경의 핵심이 되는 진실한 신학 사이에는 근본적인 불일치가 있다고 확신한 마르키온은 자연적으로 구약성경에서는 기독교의 관념에는 반대가 되며 유대교적인 것만을 얘기하고 있다고 보여지는 모든 이야기, 설교 심지어는 구절 등에 중점을 두
게 되었다. 마르키온이 구약성경을 다루는 방식에는 적어도 한가지의 장점이 있었다. 즉 그는 영지주의자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우화적 해석 방식을 전혀 취하지 않은 것이다. 마르키온은 구약 역사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그 역사의 뚜렷한 특징들을 아주 강조하였다. 한편 신약성경을 다룸에 있어서도 또한 우화적인 해석 방법보다는 문자 그대로의 해석 방법을 더 좋아하기는 하였으나 그러면서도 마르키온은 대담무쌍하게 사실을 보는 자신의 견해에 어긋난다고 생각되는 성경의 책이라든가 또는 책들의 부분들을 과감하게 삭제해 버렸고 어느 정도 자기의 주관적인 근거 위에서 그 성경의 본문들을 과감하게 재편집하였다.
제3복음서인 누가복음이 전체적으로 보아 자기의 신학에 최고로 잘 들어맞는 책 같이 보이자, 마르키온은 이 책을 비록 잘라내고 상당히 변경시킨 상태로이기는 하였지만 신약성경 내에 있는 역사적인 작품 중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부분으로 선택하였다. 마르키온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도들 중 유일한 참 사도였다고 보았으며 그리고 마르키온은 제3 복음서가-마르키온은 이것을 누가복음서라고 부르지 않았다-바울의 감독 아래에서 집필되어진 것이며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바울의 견해를 담고 있는 책이라고 믿었다.

마르키온은 다른 복음서 기자들이 12사도 가운데에서 발전되고 있던 거짓된 유대전통을 썼다고 보았다. 따라서 마르키온은 그들의 복음서들을 '전적으로' 거부하였다. 나머지 신약성경의 책들 중에서 마르키온이 받아들인 것은 단지 열개의 바울 서신들뿐이었다.
그는 사도행전도 배척하였고 바울의 목회서신들도 거부하였으며, 마르키온이 알고 있던 바 나머지 신약성경 모든 책은 거부되었다. 그리고 마르키온이 받아들인 열개의 서신들 가운데에서도 자기의 견해에 어긋나는 문장이 있다면 마음대로 거부하거나 변조시켜 버렸다. 마르키온이 신약성경을 어떻게 다루었나 자세히 알려면 테르툴리아누스의 [adv. Marcionem] 제4권과 제5권을 읽어 보면 가장 잘 알 수 있다.

 

(4) 신앙의 실제생활에의 적용: 기독교의 전통 및 성경에 대해서 마르키온이 아무리 변덕스럽고 주관적인 태도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때의 마르키온의 중심되는 목적은 사변적이거나 이론적인 데에 있지 않고 신앙적인 면과 실제 생활적인 면에 있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은 마르키온이 어떤 더 높은 단계의 종합같은 것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러면서 그가 죽을 때까지 창조주와 신약성경의 하나님 사이에 도저히 화합할 수 없는 대립관계를 그냥 두고만 보았다는 사실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마르키온에게 구원의 수단들이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대한 신앙에 있었다. 이 신앙은 인간 생존조건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창조주가 만든 피조물을 멸시하고 거부하는 금욕생활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따라서 독신자만이 세례를 받도록 허용되었다. 이러한 태도로 인해 더욱 심화되어 나타난 결과로서 마르키온은 육체의 부활을 부인하였고, 또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영과 혼에만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마르키온 공동체의 도덕적인 진지함은 이 공동체의 전도의 열심과 또 이 공동체 가운데에서 수많은 순교자들이 나왔다는 사실로 알 수 있다.

 

(5) 예배의식: 마르키온의 목적은 하나의 학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교회를 세우는 데에 있었다. 따라서 예배의식에 관하여 마르키온은 정통 교회의 관례를 대부분 따랐다. 그러나 정통교회라는 달리 교회의 예배시에 세례지원자들도 세례받은 사람들과 똑같이 취급했다. 그러나 성찬 예배시 포도주 사용은 금하였다. 마르키온파 중의 동방 지역에 있던 분파가 행하던 독특한 몇몇 관례적 의식을 에즈닉은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마르키온은 세례를 단 한번만 받도록 제한하지 않는다. 연달아 세번 죄를 범하였을 때, 그리고 세례지원자가 세례 전에 죽었을 때는 누군가가 대신하여, 다시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 또한 마르키온은 여자가 세례를 베풀 수 있도록 허용하는 대담성도 가지고 있었다-이것은 다른 어느 분파에서도 시행하지 않던 일이다-그러나 여자가 두번째나 세번째의 세례를 집행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마르키온은 (감히) 여자가 사제가 되도록 허용하지는 않았다." 마르키온의 추종자들은 마르키온을 주교의 반열에까지 (적어도 실질적인 면에서는) 떠받들어 올렸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마르키온 분파의 교회 조직은 주교제도였던 것임이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이 점에 대해서 뚜렷한 증거는 많지 않다.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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