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구의 0.2%다. 약 1,500만 명. 서울시 인구보다 조금 많은 수준이다.
그런데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22%가 유대인이거나 유대계다. 인구 비중의 110배에 해당하는 숫자로 보인다.
1901년부터 2023년까지 965명의 개인 수상자 중 최소 214명이 유대인이었다. 경제학상은 39~42%, 물리학상과 생리학상도 30% 안팎으로 집계된다.
숫자만 보면 뭔가 설명이 필요한 현상이다. 단순히 "똑똑한 민족"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역대 의장 15명 중 11명이 유대인이었다. 그린스펀, 버냉키, 옐런. 달러를 움직인 사람들이다.
유대인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 파라오의 지배 아래 있다가 모세의 인도로 탈출했다는 출애굽기 이야기가 그들의 집단적 출발점이다.
솔로몬 왕 시절에 최전성기를 맞이하지만 이후 왕국이 분열되고 바빌로니아에 멸망한다. 기원전 6세기의 일이다.
로마 제국 시대에는 세 차례의 유대-로마 전쟁을 치른다. 마지막 전쟁 이후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지역명을 '유대'에서 '팔레스티나'로 바꾸고 유대인 다수를 추방했다.
이때부터 유대인의 디아스포라(흩어짐)가 본격화된다. 나라 없는 민족으로 2,000년을 보내게 된다.
중세 유럽에서 유대인은 기독교도에게 금지된 금융업과 상업을 맡아야 했다. 천시받던 직업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자본을 다루는 능력을 집중적으로 키우는 계기가 됐을 가능성이 있다.
9세기부터 유럽에 정착한 유대인은 아슈케나짐(독일계)과 세파르딤(이베리아계)으로 나뉜다. 현대 이스라엘과 미국을 지배하는 유대인은 대부분 아슈케나짐 계열로 보인다.
이들은 중세 내내 학살과 추방을 반복적으로 당했다. 1096년 십자군 원정 때, 스페인 종교재판 때, 동유럽 포그롬(집단 학살) 때마다 생존을 위해 이동해야 했다.
나라가 없으니 빼앗길 수 없는 것에 집중했다. 그게 지식이었다. "지식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절대 빼앗을 수 없다"는 유대 격언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셈이다.
유대교의 경전 탈무드는 사실 법전이자 토론 모음집이다. 13세 성인식을 치르려면 토라를 히브리어로 암송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뇌를 언어와 논리로 훈련시키는 셈이다.
하브루타라는 유대인 교육법이 있다. 선생이 답을 주는 게 아니라 둘이 짝을 지어 질문하고 논쟁한다. 정답을 외우는 교육이 아니라 질문을 만드는 교육인 셈이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유럽에서 반유대주의가 거세진다. 특히 19세기 말 러시아의 포그롬과 유럽 전역의 차별이 심화됐다.
오스트리아 출신 언론인 테오도르 헤르츨이 1896년 소책자 '유대국가'를 펴냈다. 유대인 문제는 오직 독립 국가 건설로만 해결된다는 내용이었다.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제1회 시온주의 의회가 열린다.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자는 목표가 공식화된다.
시온주의 이전까지 유대인 랍비들은 성경을 민족주의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는 시각도 있다. 시온주의는 19세기 유럽의 민족주의 물결 속에서 탄생한 정치운동이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1882년부터 팔레스타인으로의 이민이 시작된다. 1948년 건국까지 다섯 차례의 대규모 이민물결(알리야)이 있었다.
1917년 영국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팔레스타인을 빼앗는다. 같은 해 벨푸어 선언으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민족 조국 건설을 지지한다고 약속한다.
영국은 동시에 아랍인들에게도 독립을 약속했다. 중동 지역을 두고 사실상 이중 약속을 한 셈이다. 그 후유증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한다. 유대인에 대한 체계적인 박해가 시작되고 많은 유대인 지식인들이 독일을 탈출한다. 아인슈타인도 이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홀로코스트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 독일은 유럽 유대인 약 600만 명을 학살했다. 당시 세계 유대인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홀로코스트는 이스라엘 건국의 결정적 계기가 된다. 서방 세계의 죄책감과 국제적 동정론이 유대 국가 건설을 가능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1947년 유엔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인 국가와 아랍 국가로 분할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다. 당시 유대인이 더 적은 인구였음에도 더 넓은 땅을 받았다. 아랍 측은 거부했다.
1948년 5월 14일. 다비드 벤구리온이 텔아비브 박물관에서 이스라엘 독립을 선언한다. 다음 날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이 선전포고를 했다.
제1차 중동전쟁이다. 신생 이스라엘이 아랍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한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아랍인 70만 명 이상이 고향을 떠났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이를 '낙바(재앙)'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후 모두 여섯 차례의 중동전쟁을 치른다. 1956년 수에즈 전쟁, 1967년 6일 전쟁,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1982년 레바논 침공 등이다.
1967년 6일 전쟁이 현재 분쟁의 핵심 좌표다. 6일 만에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요르단의 서안지구, 시리아의 골란 고원을 점령했다. 예루살렘을 통일했다.
이스라엘은 전라도 크기(약 2만 제곱킬로미터)의 나라다. 그런데 주변 2억 명의 아랍권과 수십 년을 싸워왔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군사 기술력과 정보력, 그리고 미국의 지원이 핵심으로 꼽힌다.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유일한 핵 보유국으로 추정되지만 공식 확인은 없다.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아돌프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에서 납치해 재판에 세운 것도, 이란 핵과학자들을 암살한 것도 모사드였다.
경제 이야기로 넘어가자. 이스라엘 건국 이후 노벨상 수상자가 13명 나왔다. 유대인 출신 타 국적자까지 합치면 수백 명에 이른다.
미국 억만장자의 약 40%가 유대인이라는 통계가 있다. 미국 내 유대인 인구는 2%에 불과하지만 소득이 전체의 15%를 차지하는 셈이다.
워너브라더스, 파라마운트, 드림웍스.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 대부분을 유대인이 세웠다. CBS, ABC, NBC 등 미국 3대 방송사도 마찬가지다.
골드만삭스, JP모건. 월가 대형 금융사들도 유대인이 창업했다. 전 세계 억만장자의 3분의 1이 유대인이라는 통계가 있다.
왜일까. 여러 이론이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없는 듯하다. 교육 문화설, 박해를 통한 지적 선택설, 디아스포라 적응설 등이 경쟁한다.
박해를 받으며 이주를 반복한 사람들은 언어와 수리 능력이 뛰어난 직업을 선택했다. 과학과 금융이 그런 분야다. 이민자일수록 수학·과학 관련 직업을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편 이스라엘 내부도 단일한 공동체가 아니다. 유럽계 아슈케나짐, 중동·북아프리카계 미즈라힘, 에티오피아계 베타 이스라엘 등이 서로 다른 위계를 갖고 있다.
건국 초기 이스라엘의 주류는 아슈케나짐이었다. 미즈라힘은 교과서에서도 지워지고 도시 공간에서도 밀려났다. 유대인끼리의 내부 차별 문제인 셈이다.
이스라엘 인구는 2025년 1월 천만 명을 돌파했다. 이 중 유대인이 다수이지만 이스라엘 국적의 팔레스타인 아랍인도 상당수 있다. 법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보장받는다고 하지만 현실은 복잡하다.
가자지구 이야기다. 면적 365제곱킬로미터에 250만 명이 산다. 이스라엘 전체 면적의 1.6%에 해당하는 땅이다.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25%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셈이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기습해 약 1,200명을 살해하고 250여 명을 인질로 데려갔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 민간인 피해였다.
이스라엘은 즉각 가자지구에 대한 전면 공격을 시작한다. 전쟁 목표는 하마스 궤멸과 인질 귀환이었다.
2025년 기준으로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6만 7,000명을 넘어섰다. 주민의 90% 이상이 실향민이 됐다.
전쟁은 확전됐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그리고 이란까지 개입하는 구도가 됐다.
2025년 6월에는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을 선제 타격하는 '12일 전쟁'이 벌어진다. 이란의 보복 공습으로 이스라엘에서도 280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왔다. 나탄즈, 이스파한, 포르도 핵시설이 광범위하게 파괴됐다.
이 과정에서 이란의 '저항의 축'—헤즈볼라, 하마스, 후티—은 모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2024년 12월 시리아의 바트주의 정권도 반군에 패망했다. 이란의 중동 영향력이 크게 줄어든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등장하면서 판이 바뀌었다. 2025년 10월 트럼프는 즉각 휴전, 인질 석방, 하마스 무장해제, 가자 재건을 포함하는 평화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2026년 3월 현재도 협상은 진행 중이다. 이스라엘은 정전 협상을 위해 카타르에 대표단을 파견했고, 가자지구 반입 물자는 여전히 제한되고 있다.
국제 여론은 분열됐다. 초기에 이스라엘의 자위권에 동정적이었던 서방 여론도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가 커지면서 돌아섰다. 유럽과 아랍권 20개국이 이스라엘에 전쟁 종결을 촉구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분열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전쟁 책임론과 인질 협상 지연으로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 전후 조기 총선 가능성이 계속 거론됐다.
반론도 있다. 하마스는 20년 가까이 가자지구를 통치하면서 이스라엘을 지속적으로 공격해왔다. 10월 7일 기습은 이스라엘에게 실존적 위협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를 두고 서방과 이스라엘 사이에 인식 차이가 크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민간인을 방패로 쓴다고 주장한다. AP통신은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인을 조직적으로 인간방패로 활용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두 개의 서사가 충돌하는 구도다. 한쪽에서는 홀로코스트 이후 세워진 유대인 국가의 생존 투쟁이고, 다른 쪽에서는 수십 년간 이어진 팔레스타인 민족의 추방과 억압의 역사다.
시온주의에 대한 비판도 내부에서 나온다. 노엄 촘스키가 '이스라엘 최고의 양심'이라고 평가한 일부 이스라엘 학자들은 시온주의가 팔레스타인 원주민과의 공존이 아닌 배제를 선택했다고 비판한다.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유일하게 UN 분류 선진국이다. 제조업, IT, 생명공학, 방위산업 등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스타트업 네이션'이라는 별칭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 과학자가 말한 "인간의 두뇌는 이스라엘이 보유한 유일한 천연자원"이라는 말은 이 나라가 왜 강한지를 설명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전 세계 억만장자의 3분의 1, 노벨상 수상자의 22%. 이 숫자들이 단순히 유전자나 음모론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면, 2,000년의 디아스포라가 만들어낸 생존 전략의 산물일 가능성이 있다.
박해가 오히려 특정 능력을 선택적으로 강화했을 수도 있다. 땅과 재산을 빼앗길 수 있으니 이동 가능한 자산—지식, 금융, 인적 네트워크—에 집중한 결과일 수도 있다.
유대인 공동체는 전 세계 어디에 가도 회당(시나고그)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유지한다. 미국에서 성공한 유대인이 이스라엘 유대인을 지원하고, 그 자본이 다시 미국 정치로 환류하는 구조가 있다.
미국 의회에서 유대계 의원의 수는 상원 100석 중 11석 이상이다. 미국 인구의 2%인 집단이 의회에서 11% 이상의 의석을 갖는 셈이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분석된다. 민주주의 국가 연대, 냉전 시기 소련 견제, 기독교 복음주의 지지층의 이스라엘 사랑, 유대계 로비 등이 얽혀 있다.
트럼프가 2025년 가자지구를 미국이 인수해 '리비에라'로 개발하겠다고 말한 것은 이 복잡한 이해관계 위에서 나온 발언이다. 아랍 국가들은 즉각 반발했다.
중동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이란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 가능성이 논의된다. 아브라함 협정 이후 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이 이미 이스라엘과 수교했다.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고립이 깊어지는 상황으로 보인다.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관계를 맺으면서 팔레스타인 문제는 협상 카드에서 점점 밀려나는 듯하다.
그렇다고 팔레스타인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가자지구 250만 명의 현실이 있고, 이스라엘 국내에도 아랍 시민권자가 있다. 두 국가 해법은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국제사회의 공식 입장이다.
하마스는 이번 전쟁으로 조직에 큰 타격을 입었다. 지도부 손실, 내부 분열, 통치 정당성 위기가 겹쳤다. 2025년 유엔 회의와 아랍연맹 결의안에서 하마스의 가자지구 행정 배제가 공식화됐다.
그러나 하마스를 대체할 무언가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부패와 무능으로 신뢰를 잃었다. 가자지구 전후 통치를 누가 맡을지가 핵심 난제다.
이제 전망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단기에 해결될 성격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땅, 종교, 역사, 민족이 모두 얽혀 있다.
이스라엘은 당분간 군사적 우위를 유지할 것이다. 이란 핵시설이 타격받았고, 헤즈볼라와 하마스가 약화됐다. 이스라엘 주변 안보 환경은 역설적으로 전쟁 이후 더 안정됐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재앙은 이스라엘의 국제적 고립을 심화시켰다. 서방 국가 내에서 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고, 유엔 기구들과의 관계도 악화됐다.
유대인이라는 정체성 자체도 변화하고 있다. 젊은 미국 유대인 세대는 이스라엘의 가자 정책에 비판적인 경우가 많다. 이스라엘-디아스포라 유대인 관계도 복잡해지고 있다.
0.2%의 인구가 세계 지식과 자본의 상당 부분을 주도하는 현상, 그리고 전 세계가 주목하는 분쟁의 한복판에 있는 현실. 이 두 가지가 같은 민족의 이야기라는 사실이 여전히 흥미롭다.
2,000년의 박해가 생존 전략을 만들었다면,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가하는 것이 또 다른 박해의 역사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그 질문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