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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원어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합니다.

작성자부흥맨|작성시간16.06.30|조회수45 목록 댓글 0



성경원어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합니다.

 

성경의 원어는 히브리어와 약간의 아람어와 헬라어로 되어있습니다.

 

구약은 몇 대목에 걸쳐 기록된 약간의 아람어 부문을 제외하고는 전부가 히브리어입니다. 히브리어는 고대 이스라엘의 국어로 셈어족에 속하며 아람어는 셈의 지손인 아람인의 국어입니다. 오늘날의 이스라엘은 히브리어를 국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의 언어는 전부 헬라어입니다. 그것은 당시 지중해 연안 여러 나라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던 코이네 헬라어로서 현대의 헬라어와는 많이 다릅니다. 또한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시대의 고전 헬라어와도 문법이나 단어의 의미 등이 많이 변한 형태로 알려져 있습니다. 독일의 성서학자 다이스마의 섬세한 연구조사 결과 코이네가 당시의 공통어이며 평민들의 언어였음이 입증되었습니다. 어떤 특별하고 신성한 언어가 아니라 예수님이나 바울과 같은 시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말하고, 편지를 주고받는데 쓰인 언어였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연구함에 있어서, 성경원어의 의미가 갖는 중요성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때때로 성경본문의 의미를 좀 더 세밀하고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있어서 원어를 참조할 필요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전달해야 하는 사명의 길을 가고 있는 목회자들에게 있어서 성경의 원어연구는 목회사역의 기초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학대학,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생들에게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성경연구에 있어서 헬라어와 히브리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다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본문의 올바른 해석과 적용을 위하여, 성경의 원어들을 연구하고 적용할 때에 매우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경본문자체의 문맥에 입각한 원어의미의 해석과 적용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어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풍부한 의미들을 인용하며 성경원어의 의미들에 대하여 운운하되 성경본문자체의 문맥을 무시함으로 성경본문의 진리와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소리를 하는 분들이 꽤 많이 있음을 봅니다. 제가 온라인 상에서 실제로 발견한 황당한 예들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마 8:26) 『예수께서 ...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여기에서 예수님이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실 때 그는 하나님이 하고 계시는 일을 꾸짖으신 게 아닙니다. 마귀의 일을 중지시킴으로 하나님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광풍으로 인한 바다의 큰 놀 즉 풍랑은 사탄이 일으킨 것이었고 예수님께서는 그 악한 세력을 꾸짖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동일한 사건에 대한 기록인 마8:18-34, 막4:35-5:20, 눅8:22-39의 세 가지 본문들 모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시고 거라사지방의 악한 군대귀신들린 자를 찾아가 귀신들을 쫓아내고 그를 자유하게 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배를 타고 가고 있는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 이후에 거라사지방의 군대귀신 들린 자가 먼저 예수님께로 달려나와 예수님을 알아보며 자신들을 그 지방에서 쫓아내지 말아 주실 것을 간청하는 일이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군대귀신들로부터 자유하게 해 주시는 사건이 기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성경자체의 문맥으로 볼 때 바다에 일어난 그 광풍은 예수님의 그 사역을 방해하려는 사악한 군대귀신들의 장난이었고, 예수님께서 그 사악한 군대귀신들의 장난을 대적하여 꺾어버린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자연정화를 위한 풍랑과 같은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어성경과 영어 등 외국어에 능통하다고 매우 자신하시는 어떤 목사님께서 원어성경을 인용하시면서 똑같은 사건인 마태복음14장(?사실은 8장)의 기록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황당한 주장을 하셨습니다. 유튜브에 올려진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녹취하여 아래에 소개해 봅니다.

 

-다 음-

 

여러분! 마14장(?)에서 풍랑 이는 바다 위의... “예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라...(마8:26-녹취자 註)”에서 “꾸짖다”는 단어를 풍랑 이는 뒤편에 있는 귀신을 꾸짖는 것으로 보는 것을 보고 매우 안타까웠어요. 그럴 법도 해요! 한글성경으로 보면 야단치는 것 아니에요?... 그러나 “꾸짖다”로 번역된 단어 “에피티마오”는 “에피테메쏘”입니다. “에피”는 “about ~에 관하여, 대하여”이고 “티마오”는 “deserve 가치를 인정하다.”라는 뜻입니다.

 

직역을 해 볼게요. “예수님께서 풍랑 이는 바다와 바람을 보시고 일어나서 그 가치를 인정하시면서 ‘그만하면 됐어!’ 하시니 잠잠해졌더라.” 원더풀!(Wonderful!)입니다. 이것이 오케이!(O.K!). 아주 우리 마음을 너무 행복하게 만드는 구절이에요! 여러분 풍랑이 안치면 밑에 있는 식물들, 바다, 해초들, 물고기, 다 죽잖아요?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거 창조의 법으로 풍랑을 치라고 만들어 부은 거에요! 근데 창조주 하나님이 풍랑 친다고 야단치면 됩니까? 안됩니다! 안되죠! 그러니까 “에피티마오” 그 가치를 인정하시면서 “애들아 됐어!” 하니까 잠잠해진 거에요! 할렐루야! 할렐루야는 이럴 때 쓰라고 둔 거에요... 이게 얼마나 감동적인 번역입니까? 여러분들이 어디 가서도 이런 얘기 못 들어 보셨을 거에요... 너무 안타까운 게 참 많지요? 어째든 여러분 우리가 신뢰하는 것은 성경입니다. 성경에서 벗어나는 것은 신령한 것이 아니라 악령적인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성경이 가장 신령한 것입니다. 성경을 신뢰하고 성경이 지시하시면 성경대로 따라가시면 됩니다. 성경이 곧 길입니다. 길을 벗어나면 우리는 떨어져 죽습니다. 저는 천 마디의 말이나 그리고 누구의 어떤 말도 저는 존경하고 그분의 지식을 존중하지만 성경과 빗나가면 신뢰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우리의 길입니다. 도를 잘 따라가셔서 주의 나라 도착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상-

 

이상과 같은 성경해석과 적용에 대한 결론적인 평가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분이 선포하신 이와 같은 설교야 말로 우리를 매우 안타깝게 만드는 매우 잘못된 성경해석과 적용, 성경의 진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오히려 성경의 메시지와 정반대되는 매우 어리석고도 위험한 설교의 대표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원어의 여러 가지 의미들 중 어떤 의미가 본문의 의미인지는 본문의 문맥이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다”는 단어가 “ejpitimavw 에피티마오”입니다.

 

“비난하다, 꾸짖다, 견책하다” 라는 기본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동사 “ejpitimavw 에피티마오”는 “에피(ejpiv,1909: 위에 on, upon)”와 “티마오(timavw,5091: 가격을 정하다)”에서 유래했으며, 헤로도투스 이래로,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a) '존경하다, 경의를 표하다, 영예를 주다'(Hdt. 6. 39).

(b) '~의 값을 올리다'(Dem. 918, 22).

(c) '비난하다, 견책하다, 벌하다'(Thuc., Xen., Plato등).

 

보시는 바와 같이 “에피티마오”는 물론 “존경하다. 경의를 표하다. 영예를 주다,”라는 의미가 있기에 상황에 따라서 “~의 가치를 인정하다”라는 해석을 할 수도 있는 단어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최종적인 의미는 그 단어의 전후문맥이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바른 성경해석을 위하여 필요한 것은 원어실력보다 성경본문자체의 문맥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실력이 더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위에 인용한 어느 목사님의 설교는 성경원어의 의미를 인용하고 적용하되, 성경본문의 진리와 전혀 상관없는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를 주장하고 합리화하기 위하여 성경원어를 이용하는 수준에서의 저급한 해석과 적용의 오류라 할 것입니다. 상기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성경본문자체의 문맥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매우 심각한 성경해석의 오류입니다. 오늘날 원어를 운운하며 이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황당한 성경해석을 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런 분들에게 우리 주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기를 원합니다. 매우 심각한 사안은 이상과 같은 매우 어리석고도 황당한 성경해석을 하신 그분이 다음과 같은 주장과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째든 여러분 우리가 신뢰하는 것은 성경입니다. 성경에서 벗어나는 것은 신령한 것이 아니라 악령적인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성경이 가장 신령한 것입니다. 성경을 신뢰하고 성경이 지시하시면 성경대로 따라가시면 됩니다. 성경이 곧 길입니다. 길을 벗어나면 우리는 떨어져 죽습니다. 저는 천 마디의 말이나 그리고 누구의 어떤 말도 저는 존경하고 그분의 지식을 존중하지만 성경과 빗나가면 신뢰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우리의 길입니다. 도를 잘 따라가셔서 주의 나라 도착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심각하게도 그 자신이 성경과 전혀 상관없는 전혀 엉뚱한 길을 가고 있으면서도, 그 자신은 절대 성경만을 신뢰하고 따라가고 있다는 거짓된 확신 속에 사로잡혀 있음을 봅니다. 성경의 원어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성경의 문맥을 볼 줄 아는 눈입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성경의 진리를 정확하게 알기 원하신다면, 그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본문자체의 전후문맥에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 문맥과 상관없는 엉뚱한 원어해석의 실제 예를 하나 더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분이 역시 성경원어의 의미들을 운운하며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그 글의 내용들 중 일부만을 요약발췌하고 문제점들을 지적해 보고자 합니다.

 

-아 래-

 

출 20:26에 ‘너는 층계로 내 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난해구절이다. 층계 계단을 올라가면 하체가 드러나 보이기 때문에 계단에 오르지 말라는 것이다. 요즘에는 계단에 오르는 사람들 중에 하체가 드러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오늘 언급된 말씀이 문자적으로는 짧은 옷을 입고 층계로 올라가지 말라 하체가 드러나게 되기 때문에 안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시대가 변천되어 짧은 옷을 입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시대 상황에 따라서 하체가 보일지라도 말씀을 무시해 버리고 그대로 올라가라는 말인가? 이것에 대해 분명한 답변을 해야 할 것이다.


층계는 ‘베마아로트’인데 명사, 여성, 복수이며 ‘알라’가 어원으로 ‘올라가다’는 뜻이다. 현상적인 층계를 통해서 위로 올라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잣대인 창조의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뜻과 계획의 목표가 한 과정(계단) 한 과정 올라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표시다.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는 현상의 세계를 창조하신 6일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양육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끌어 올리시는 과정이 천지창조의 과정이다. 창세기 1장에 천지창조가 만물의 기원이나 인류의 기원을 근거하는 역사적인 내용이나 과학적인 내용이 아니다. 우리 신앙의 단계를 이끌어주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는 내용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것이 창세기 1장 본연의 뜻이다.(중략)

 

성경은 단순히 과학적인 내용이나 역사적인 내용을 입증하기 위해 존재하는 책이 아니다. (중략) 계단을 올라간다는 말은 물리적인 계단을 올라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살이 쪄 목표로 있는 창조의 과정 중 여섯 과정으로 올라간다는 의미다. 짐승의 속성이 죽고 난 뒤 그제서야 사람의 존재가 되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는 말씀이 된다.

 

하체는 ‘에르바트’인데 명사, 여성, 단수이고 어근은 ‘아라’인데 ‘벌거벗다, 비우다, 없애다’는 뜻이다. 하체로 번역된 것은 완전히 왜곡된 것이다. 옷을 벗어서 사람의 하체 부위가 드러난다는 말은 성경의 맥을 전혀 모르는 잘못된 번역을 하여 경전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해 버렸다. 첫째과정에서 여섯째과정 안에서 어두움인 무지의 무저갱의 얼굴들인 육의 속성을 죽이고 자신을 벗은 것을 벌거벗었다고 하는 것이다. 제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두움인 무지가 죽고 생명으로 부활하는 사역을 하는 곳이다. 어두움인 무지의 육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하나님 제단 위를 올라가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강단에 올라가는 목회자들은 유식한 내용을 담은 설교를 하는 곳이 아니다. 혼돈과 공허와 무지를 불러일으키는 육의 속성을 가진 채로 올라가 하나님을 빙자하여 전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이 목회자들의 설교를 통해 혼돈과 공허와 무지로 인해 이단과 사이비로 빠지고 있지 않은가?

 

이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인 무지의 무저갱의 얼굴들을 완전히 깨트려 벌거벗은 것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여호와의 제단 위로 첫째과정에서 여섯째과정의 목표를 향해서 올라가면 안 된다. 어두움인 무지가 제단 위에서는 완전히 밝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니 이 육의 속성이 제단 위에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벌거벗으라는 말씀이다.

 

하나님 앞에 나의 생각, 감정, 판단을 앞세우지 말고 내가 갖고 있는 겉치장을 벗어버려야 한다. 변명으로 위장하고 거짓으로 변장하고 있는 무화과치마를 벗어버려야 한다. 위선과 왜곡으로 감싸고 있는 가면과 누더기를 걷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육신의 하체가 드러나는 것보다 더 부끄러운 심판이 있을 것이다.

 

-이 상-

 

이상과 같은 글에 “ㅇㅁㄴㅇ”이라는 분이 아래와 같은 리플을 달으셨습니다.

 

-아 래-

 

"너는 층계로(하나님의 언약대로 하나님이 자라게하는 단계: 진리되는 과정)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하나님의 제단은 내 육이 죽어야하는 거고 오직 은혜진리 브엘세바 아가페사랑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곳인데 인간들의 섬김과 드림과 예배짓으로 자신의 힘껏 오르려하니 이를 경계하는 말임) 네 하체가(여호와하체: 남자, 인간하체성기: 여자.... 은혜진리로 한 몸되면(호몰로게오:시인) 하체가 드러나지 않으나 섬김 드림 예배행위로 남자인 여호와로부터 분리되고 이혼되면(부인) 부끄러운 하체를 드러낸거고 수치이며 진리되지 못한 것. 오늘날의 기독교는 100프로 섬김과 드림과 예배짓행위로 구원에 이르려는 종교행위요 적그리스도요 가짜기독교... 이는 은혜진리 아가페여호와로부터 이혼된거요 분리요 그 마음밭 마음땅은 흑암, 공허, 혼돈이며 무저갱인거고...성기 하체를 드러낸 부끄러음이며...수치 그 자체인 것...

진리를 말씀하시는 목사님의 글을 보고 기쁨속에 몇자 적어봅니다...감사~

 

-이 상-

 

오~~~ 주님, 이를 어찌어찌 하오리이까?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일까요?

 

이상과 같은 괴이한 주장과 해석들이 과연 성경본문이 말씀하고자 하는 진리의 실체들일까요?

 

상기필자의 주장처럼, 출 20:26에 ‘너는 층계로 내 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고 하였는데, 정말로 이 구절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난해구절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본문은 전문맥과 연관하여 볼 때 너무도 이해하기 쉬운 말씀들 가운데 한 구절일 뿐입니다.

 

이 구절의 전문맥인 출20:22-25에, 구원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지켜야 할 하나님의 명령과 요구사항들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첫째,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라.

둘째,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셋째, 그러나 만일(히. A!aiw], We'im, 영. But if/NRSV)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으려거든,

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②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들어날까 함이니라.

 

이상을 간단하게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될 것입니다.

 

“너희가 내게 제사하려면 우상을 만들지 말고 토단을 쌓아 그 위에 제물을 드리라. 그러나 만일 네가 돌로 제단을 쌓기 원한다면 돌을 다듬지 말고 층계를 만들지 말라. 정으로 돌을 쪼는 것과 층계로 오르다가 하체가 들어나는 것은 부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셋째 명령에 해당하는 25-26절을 한글성경 새번역은 아래와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아 래-


(출 20:25-26, 새번역) 『[25] 너희가 나에게 제물 바칠 제단을 돌로 쌓고자 할 때에는 다듬은 돌을 써서는 안 된다. 너희가 돌에 정을 대면, 그 돌이 부정을 타게 된다. [26] 너희는 제단에 층계를 놓아서는 안 된다. 그것을 밟고 올라설 때에, 너희의 알몸이 드러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상-

 

한글성경 새번역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구절은 전혀 난해구절이 아닌 것입니다.

 

상기 필자가 “층계”의 의미에 대하여 설명한 바를 아래에 다시 인용하며 그 문제점을 지적해 보겠습니다.

 

-아 래-

 

층계는 ‘베마아로트’인데 명사, 여성, 복수이며 ‘알라’가 어원으로 ‘올라가다’는 뜻이다. 현상적인 층계를 통해서 위로 올라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잣대인 창조의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뜻과 계획의 목표가 한 과정(계단) 한 과정 올라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표시다.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는 현상의 세계를 창조하신 6일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양육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끌어 올리시는 과정이 천지창조의 과정이다. 창세기 1장에 천지창조가 만물의 기원이나 인류의 기원을 근거하는 역사적인 내용이나 과학적인 내용이 아니다. 우리 신앙의 단계를 이끌어주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는 내용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것이 창세기 1장 본연의 뜻이다.(중략) 성경은 단순히 과학적인 내용이나 역사적인 내용을 입증하기 위해 존재하는 책이 아니다. (중략) 계단을 올라간다는 말은 물리적인 계단을 올라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살이 쪄 목표로 있는 창조의 과정 중 여섯 과정으로 올라간다는 의미다. 짐승의 속성이 죽고 난 뒤 그제서야 사람의 존재가 되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는 말씀이 된다.

 

-이 상-

 

이상과 같은 주장이 정말일까요? 출20:26의 “층계”라는 의미가 정말로 그런 영적인 단계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층계로”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tl[}m'b] Bema'alot”로 “층계”라는 “hl;[}m ma'alah”와 “~로”라는 전치사 “b] Be”가 합쳐져서 된 단어입니다. “hl;[}m ma'alah”(여성명사)의 어원은 알라“hl;[; , alah”로 “올라가다, 오르다”에서 유래했으며, “떠오르는 것, 올라감, 계단, 층계”를 의미합니다. 마알라는 계단이나 층계, 보좌, 성벽 등에 “오르는 길”을 의미하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성전(겔 40:6, 겔 40:22, 겔 40:26, 겔 40:31, 겔 40:34), 제단(출 20:26), 집(왕하 9:13), 보좌(왕상 10:19-20, 대하 9:18-19), 다윗 성(느 3:15, 느 12:27)의 층계나 계단에 대해 사용되었습니다. 왕하 20:9-11과 사 38:8에서 이 단어는 해시계의 각도들을 가리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시계, 위에 표시된 '단계' 혹은 구분들을 가리키는 용도로도 사용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된 것인지는 이 단어가 쓰여진 본문자체의 문맥에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상기필자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주장을 펼치기 위하여 ‘알라’가 어원으로 ‘올라가다’는 뜻이다. 현상적인 층계를 통해서 위로 올라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식의 편협하고도 엉뚱한 주장을 펼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마치 원어의 의미자체에는 현상적인 층계라는 의미가 없는 것처럼 호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상기 필자가 설명한 “하체”의 의미에 대하여 설명한 바를 아래에 다시 인용하며 그 문제점을 지적해 보겠습니다.

 

-아 래-

 

하체는 ‘에르바트’인데 명사, 여성, 단수이고 어근은 ‘아라’인데 ‘벌거벗다, 비우다, 없애다’는 뜻이다. 하체로 번역된 것은 완전히 왜곡된 것이다. 옷을 벗어서 사람의 하체 부위가 드러난다는 말은 성경의 맥을 전혀 모르는 잘못된 번역을 하여 경전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해 버렸다. 첫째과정에서 여섯째과정 안에서 어두움인 무지의 무저갱의 얼굴들인 육의 속성을 죽이고 자신을 벗은 것을 벌거벗었다고 하는 것이다. 제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두움인 무지가 죽고 생명으로 부활하는 사역을 하는 곳이다. 어두움인 무지의 육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하나님 제단 위를 올라가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강단에 올라가는 목회자들은 유식한 내용을 담은 설교를 하는 곳이 아니다. 혼돈과 공허와 무지를 불러일으키는 육의 속성을 가진 채로 올라가 하나님을 빙자하여 전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이 목회자들의 설교를 통해 혼돈과 공허와 무지로 인해 이단과 사이비로 빠지고 있지 않은가?

 

이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인 무지의 무저갱의 얼굴들을 완전히 깨트려 벌거벗은 것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여호와의 제단 위로 첫째과정에서 여섯째과정의 목표를 향해서 올라가면 안 된다. 어두움인 무지가 제단 위에서는 완전히 밝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니 이 육의 속성이 제단 위에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벌거벗으라는 말씀이다.

 

하나님 앞에 나의 생각, 감정, 판단을 앞세우지 말고 내가 갖고 있는 겉치장을 벗어버려야 한다. 변명으로 위장하고 거짓으로 변장하고 있는 무화과치마를 벗어버려야 한다. 위선과 왜곡으로 감싸고 있는 가면과 누더기를 걷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육신의 하체가 드러나는 것보다 더 부끄러운 심판이 있을 것이다.

 

-이 상-

 

이상과 같은 주장이 정말일까요? 출20:26의 “하체”와 “제단에 오르지 말라”는 의미가 정말로 이상과 같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 hw:r][  'erwa "를 “하체”로 번역한 것은 정확한 것입니다.


그 어근이hr;[;  'arah ”인데 “벗겨내다. 가난하게 하다. 발견하다. 공허하다. 파괴하다. 흘러나오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고, 실제로


“벌거벗음, 나체, 부끄러움, 수치, 외음부”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창9:22-23, 레18:6-19의 “하체”, 삼상20:30의 “벌거벗은 수치”, 사20:4, 애1:8의 “벗었음” 겔16:8의 “벌거벗은 것”, 겔16:36의 “벗은 몸”이라는 단어가 바로 이 단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기필자는 본인이 주장하고 싶은 영적인 의미를 취하기 위하여 본문자체의 문맥과 상관없이 “하체는 ‘에르바트’인데 명사, 여성, 단수이고 어근은 ‘아라’인데 ‘벌거벗다, 비우다, 없애다’는 뜻이다. 하체로 번역된 것은 완전히 왜곡된 것이다. 옷을 벗어서 사람의 하체 부위가 드러난다는 말은 성경의 맥을 전혀 모르는 잘못된 번역을 하여 경전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해 버렸다.”라는 엉뚱한 주장을 펼쳤습니다. 원어를 운운함으로 원어에 무지한 독자들로 하여금 헷갈리게 하여 자신이 의도하는 바대로 맹종하게하려는 사특한 방법을 사용했다 할 것입니다.

 

제단의 의미는 또 무엇입니까? 전문맥인 출20:24에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에 기록된 현상적인 그 제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단어의 의미 그대로의 제단을 의미하는 것이지 현상적인 것을 뛰어넘는 그 어떤 영적인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기필자는, “제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두움인 무지가 죽고 생명으로 부활하는 사역을 하는 곳이다. 어두움인 무지의 육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하나님 제단 위를 올라가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강단에 올라가는 목회자들은 유식한 내용을 담은 설교를 하는 곳이 아니다. 혼돈과 공허와 무지를 불러일으키는 육의 속성을 가진 채로 올라가 하나님을 빙자하여 전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이 목회자들의 설교를 통해 혼돈과 공허와 무지로 인해 이단과 사이비로 빠지고 있지 않은가?”라는 주장을 펼침으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순수한 제사의 의미를 뛰어넘어 필자 자신이 생각하는 영적인 단계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피력하고, 그와 같은 본인의 생각 위에서 한 단계 더 확장하여 오늘날 목회자들의 설교사역에 대한 편협하고도 정당하지 못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음을 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우주만물과 인류의 기원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인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를 영적인 의미를 설명하기 위한 상징적인 기록으로 호도하며 다음과 같은 황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 음-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는 현상의 세계를 창조하신 6일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양육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끌어 올리시는 과정이 천지창조의 과정이다. 창세기 1장에 천지창조가 만물의 기원이나 인류의 기원을 근거하는 역사적인 내용이나 과학적인 내용이 아니다. 우리 신앙의 단계를 이끌어주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는 내용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것이 창세기 1장 본연의 뜻이다.”

 

-이 상-

 

이상과 같은 황당한 이설을 펼치고 그 황당한 이설의 기초 위에 서서 상기에 소개한 바와 같은 어리석고도 위험한 여러 가지 이설들을 피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자신이 마땅히 들어야만 할 다음과 같은 경고의 문구를 날렸다는 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다 음-

 

하나님 앞에 나의 생각, 감정, 판단을 앞세우지 말고 내가 갖고 있는 겉치장을 벗어버려야 한다. 변명으로 위장하고 거짓으로 변장하고 있는 무화과치마를 벗어버려야 한다. 위선과 왜곡으로 감싸고 있는 가면과 누더기를 걷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육신의 하체가 드러나는 것보다 더 부끄러운 심판이 있을 것이다.

 

-이 상-

 

‘이상과 같은 경고는 타인이 아닌, 본인이 들어야만 할 본인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안타까운 생각을 해 봅니다. 너무도 안타깝고 황당한 생각이 들어서 상기의 글에 아래와 같은 리플을 달았습니다.

 

-아 래-

 

창세기 1장에 천지창조가 만물의 기원이나 인류의 기원을 근거하는 역사적인 내용이나 과학적인 내용이 아니다?

정말 그런가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충격입니다.

원어를 운운하며 객관성을 상실한 이런저런 이상한 말들을 쏟아내다가 목매어 자살하신 어떤 분과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ㅠㅠ

저는 창세기 1장은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기술이 맞다고 봅니다!!!

 

-이 상-

 

그랬더니 서두에 인용한 “ㅇㅁㄴㅇ”이라는 분이 아래와 같은 답리플을 또 달으셨습니다.

 

-아 래-

 

창세기1장은 하나님의 언약이며 약속인거지 우주만물의 창조이야기가 아닙니다... 진리의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비진리의 마음땅을 가진 인간을 하늘 즉 진리로 만들어 내겠다는 창조이야기인겁니다....이 세상에 나타난 천지만물 우주는 그것을 설명하는 도구일뿐~~~~ 어둠의 인간마음땅을 빛의 진리로 만들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요.... 아랫물의 존재인 인간을 위물 곧 진리로 만들겠다는 언약이요.... 저주의 바다마음땅 인간을 뭍의 마음 진리로 만들겠다는 약속..... 즉 땅의 존재를 하늘존재로 만들어 안식하게하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인 것. 이걸 성경에서 일곱말 일곱약속(창세기1장 완전언약)이라고 하는거고 아브라함이 이 말씀우물로(브엘세바) 구원에 이르는 것.... 성경에서 말하는 일곱은 두 가지...인간이 섬기고 드리고 바치고 예배짓으로 구원에 이르려는 가짜일곱과(요셉의 꿈해몽: 파리한 소 일곱, 파리한 이삭 일곱).... 하나님의 약속인 진짜일곱 브엘세바(살진소 일곱, 살진이삭 일곱).... 인간이 생각하는 섬김과 드림신앙 즉 예배행위는 바싹마른 소인거고 바싹마른 이삭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요.... 오직 은혜진리 즉 하나님의 약속 일곱만이 우리를 진리로 살려내는 것... 바싹마른 인간의 행위신앙은 반드시 살진 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만 살아날 수 있는 법********

 

-이 상-

 

오~~~ 주님, 이를 어찌 어찌 하오리이까?

 

이 외에도 성경의 원어를 운운하며 이런 저런 이설들을 너무도 당당하고 공공연하게 주장하고 외치는 분들이 있음을 봅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이단정죄에 있어서 때로는 ‘이것은 좀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자아낼 정도로 혹독한 부분들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하지만, 성경의 원어를 운운하며 이렇게 저렇게 주장하는 이설들에 대하여는 너무도 관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신구약성경을 좀 더 세심하게 이해하는 데 있어서 때때로 원어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존에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한글과 영어 등 수많은 번역본들만으로도 성경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성경의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아셔야합니다. 더군다나 성경의 원어는 사전적인 의미를 가지고 성경의 진리를 우리에게 전달하는 책이지, 원어 특별히 히브리어의 알파벳 하나하나를 파자(破字)해서 그 알파벳 하나하나의 의미들을 역추적하고 다시 조합해야만 그 정확한 의미를 알게 되는 무슨 비밀의 암호책과 같은 것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어 각각의 알파벳은 고유한 의미와 숫자가 있고, 히브리어의 모든 단어는 알파벳의 조합으로 만들어져 있기에,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히브리어의 표면적 사전의 의미가 아니라, 알파벳을 파자(破字)하여 낱낱이 분석해보면 왜 그런 뜻이 만들어졌는지 그 근원, 뿌리를 알게 되고, 그러한 파자의 과정을 통하여 그 단어들의 비밀스러운 뜻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이설을 주장하는 무리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음을 봅니다.

 

그러한 파자의 과정으로 창세기의 창조를 물리적인 창조가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비유적인 기사로 취급하는 괴설을 주장하다가 결국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하였던 모 목사(?)와 같은 그런 부류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창조에 관한 황당한 주장들이 있는데 그런 부류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다 음-

 

1:1창조하시니라(. 바라)”를 인본주의적인 그 문자로 보고 창조론적 입장에서 이해하는 사람들은 거짓의 자식들이며, 히브리어동사 바라가 내포하고 있는 “내 안에(베이트) 머리로 오셔서(레쉬) 진리를 가르치신다(알렙).”는 구원의 복음으로 듣고 이해하는 사람들은 진리의 자식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사실과 다른 객관성을 상실한 매우 허무맹랑한 주장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이병천 註- 창세기 1:1창조하시니라(바라)”가 어떻게 들리느냐의 문제는 나머지 성경 전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에, 여기에서 이미 진리의 자식과 거짓의 자식으로 갈리는 것입니다. 창세기 1:1에서 이미 거짓의 자식들과 진리의 자식들이 갈리는 것입니다.

 

-이 상-

 

이상과 같은 괴이한 주장들을 듣고, 성서원어의 의미라는 말에 현혹되어 그곳에 뭔가 깊은 진리가 있을까 하는 착각에 빠져, 기존의 건강한 교회에서 떠나 그들의 마수에 걸려들게 되고, 결국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딤후3:7)는 말씀처럼, 원어를 운운하며 많은 것들을 배우는 듯 하나 실제로는 성경의 진리를 떠나 유리방황하게 되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아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성서원어를 운운하며 히브리어 알파벳을 파자하며 알파벳 하나하나에 이런저런 의미들을 부여하고 성경전체를 사전적 문자적으로 보지 않고 예수님만을 말씀하는 비유적, 상징적, 영적인 책으로 호도하는 부류들을 극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http://cafe.daum.net/gvlove0691/K3nD/1039 참조).


다시 말씀드리지만, 신구약성경을 좀 더 세심하게 이해하는 데 있어서 때때로 원어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기존에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한글과 영어 등 수많은 번역본들만으로도 성경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성경의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성서원어를 운운하며 모든 성경을 예수님 중심의 상징적으로만 호도하며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자들에게 현혹되어 방황하는 분들이 더 이상은 생겨나지 않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우리나라에 신학대학과 신학교들이 얼마나 많고 그런 곳곳에서 성경원어를 가르치시는 실력 있으신 교수님들이 얼마나 많이 계실 텐데... 그런 훌륭하신 교수님들은 신학교 강의에만 집중하셔서 이런 일에 시간을 내실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무관심하신 것인지... 아니면 대다수가 성경원어에 무지하여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하도 답답한 생각들이 들었기에 미력하나마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이 글이 지금 현재 성경의 원어를 운운하며 엉뚱한 이설들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한국교회가 단호히 대처함으로 순수한 성도들을 성경의 진리로 보호하고 양육하는 일에 앞장서는 계기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진리의 하나님, 저희들 모두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부어주사 생명의 길, 거룩의 길, 부흥의 길을 힘 차게 달려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http://cafe.daum.net/gvlove0691/K3nD/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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