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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in necessaris unitas),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in unnecessaris libertas), 그리고 모든 것에는 사랑을(in omnes charitas) 주라

작성자기독네티즌|작성시간11.03.02|조회수996 목록 댓글 1

 

멍석을 깔아주라 

 

고든 맥도날드 목사님의 신간 『누가 내 교회를 훔쳤는가?』 내용에 「음악전쟁」이 나온다.

 

역사가 생긴 이래 교회에는 음악전쟁이 늘 있어왔다. 종교개혁자 캘빈은 시편으로만 찬양을 하게했다. 그 외의 인간이 지은 일체의 가사는 찬송으로 허락하지 않았다.

상당히 거룩해 보이지만 그때도 반발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인간 속에 심겨진 하나님의 형상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무리한 조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캘빈의 권위가 워낙 크다 보니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많은 세월을 내려오며 교회 안에서는 음악전쟁이 여러 차례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전통 찬송가와 현대적 스타일의 성가들과의 전쟁이다.

많은 기성교인들이 교회 내에서 CCM, 가스펠 송이 찬송가를 대신한다며 인상을 찌푸린다. 도무지 경건하지가 않아, 너무 경망스러워, 너무 빠르고 어려워, 박자가 따라가기 힘들어… 저건 교회음악이 아니야. 심지어는 사탄의 음악이라고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뿐만 아니다. 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고 자기고백, 자기 간증만 있느냐, 그러니 예배시간에 부르기엔 적합하지 않다고 핏대를 세운다.

그에 비해 젊은층, 학생층은 또 견해가 다르다. 축축 처지는 옛날 노래, 고전적인 찬송가는 도무지 우리 정서에 맞질 않아요, 그건 늙다리들이나 부르는 거지 우리처럼 젊고 힘 있고 팽팽한 이들에겐 어울리지 않아요, 우린 기타를 치고 드럼을 두드리면서, 몸도 함께 춤을 추면서 그렇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단 말이에요.

그래서 전쟁이 난다. 실제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 내의 「음악」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서 참다못해 교회를 옮기기도 한다.

우리나라만 그런 줄 알았는데 미국도 그렇단다. 고든 맥도날드 목사님은 미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도 지금 그런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단다.

 

그의 책엔 이제까지 크게 네 차례의 음악전쟁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말한다.

멍석을 깔아주라고, 젊은이들을 위해서 멍석을 깔아주는 어른들이 될 순 없겠느냐고.

그는 계속해서 말한다.

미래의 교회는 젊은 사람들의 것이다. 지금, 이미 기성교인이 된 우리들의 것이 아니다.

만약에 지금의 기성교인들이 인상을 쓰고 고집을 부린다면, 그래서 젊은이들의 취향을 도무지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가차 없이 교회를 떠나고 말 것이다. 미래의 우리교회는 누가 책임질 것이냐.

음악의 질(質)에 대해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경박한 노래, 도무지 Holy하지 않은 음악을 어떻게 예배에 사용할 수 있느냐고.

하지만 그는 말한다.

당신들은 아느냐고. 지금 기존의 찬송가에 수록되어져 있는 곡들 중의 적지 않은 수의 곡들의 멜로디가 옛날에 술집에서 불렸던 노래였음을 아느냐고, 그 노래에 가사만 바꿔서 만든 곡인 걸 알고 있느냐고 묻는다.

그 글을 읽고 깜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나도 복음송에 대해 어느 정도 편견이 있었다. 예배시간에 찬송가를 부르지 않고 복음송을 부르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in necessaris unitas),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in unnecessaris libertas), 그리고 모든 것에는 사랑을(in omnes charitas) 주라」고 했던 어거스틴의 말이 생각난다.

그래 그렇구나. 그건 본질이 아니구나, 비본질이구나. 자유를 주어야 할 비본질의 문제구나. 찬송가를 부르든, 복음송을 부르든 그건 본질이 아니구나.

 

사람들은 그렇다. 언제나 비본질 때문에 다툰다. 본질이 아닌 비 본질에 목숨을 건다. 언제나 그렇듯 치고받고 피 터지는 싸움도 사실은 사소한 비본질 때문에 생긴 것임을 우린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비 본질에는 자유를 주어야 하는데, 비 본질에 일치를 요구한 까닭이다. 나 역시 그랬다, 예외가 아니었다.

「사랑」이 본질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사랑을 카운팅하신다. 내 생각, 내 고집, 내 감정만을 주장하면서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 자체를 싫어하신다. 그건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본질이 사랑인데, 사랑이 빠진 건 심각한 본질의 훼손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신다. 멍석을 깔아줄 수 없겠느냐고, 너도 다음세대를 위해 멍석을 깔아주면 안되겠느냐고, 꼭 네 고집을 부리는 완고한 장로의 하나가 되어야겠냐고.

그게 사랑 아니냐고, 그게 사랑으로 품어주는 것 아니냐고, 사랑이란 그렇게 멍석을 깔아주는 것 아니겠느냐고, 그게 본질 아니냐고 하신다.

가슴이 뜨끔했다. 아, 그랬구나. 이제껏 내가 젊은이들에게 너무 멍석을 깔아주지 못했었구나. 우리의 후예들이 뛰어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멍석을 깔아주지 못했었구나. 내가 너무 사랑이 없었구나.

 

아무 이유가 없다. 사랑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멍석을 깔아준다는 의미 하나로, 이런저런 이유와 고집을 버려야겠다.

사실은 우리가 CCM이나 복음송을 부르든, 전통적 스타일의 찬송가를 부르든 하나님은 그런 따위에 신경 하나 쓰시지 않는 분이신데, 그런 사소한 것, 비본질적인 문제로 열을 올리고 인상을 쓰며, 분열을 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치졸한 생각인가 하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한권의 책이 내 생각을 바꿨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는다. 내 생각을 바꾸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나에게 한권의 책을 읽게 하셨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나의 사소한 것 하나까지 일일이 간섭해주시는 하나님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다.

 

 

 

http://www.hae-dal.com/mp.htm

 

해와달  2010년 12월호 내용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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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기독네티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3.02 최근, KBS 방송국에서 어느 신부님의 헌신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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