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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다원주의가 침된 신앙에 미치는 영향

작성자봉서방|작성시간26.06.05|조회수25 목록 댓글 0

종교 다원주의가 침된 신앙에 미치는 영향             

종교 다원주의는 겉으로는 “관용”과 “평화”의 언어를 입고 다가오지만, 신자의 내면에 들어오면 종종 신앙을 뜨겁게 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다원주의가 말하는 핵심은 대개 이렇습니다. “여러 종교는 궁극적으로 비슷한 정상(頂上)을 다른 길로 오르는 것일 뿐”이라는 주장입니다. 종교철학자 존 힉(John Hick)의 ‘종교 다원주의’는 대표적으로, 각 종교가 ‘궁극적 실재(Real)’를 향한 서로 다른(그러나 동등한) 응답이라고 보는 관점을 펼칩니다.   이 전제가 교회 안으로 스며들면, 성도의 마음속에서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복음의 절대성이 “강한 확신”이 아니라 “여러 선택지 중 하나”로 내려앉기 시작합니다. 신앙이 ‘침된’(미지근한) 상태로 가는 길은 대개 여기서 열립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단지 교리적 표지판으로 세우지 않고, 영혼의 생명선으로 세웁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행 4:12),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이라는 말씀이 흔들리면, 신앙은 구조적으로 힘을 잃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뜨거움은 대개 ‘강한 감정’에서 나오기보다, “내가 지금 누구를 붙들고 있는가”라는 중심의 확정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주이시라는 확신이 약해질수록, 죄를 끊는 결단도 약해지고, 기도를 견디는 인내도 약해지고, 예배를 지키는 충성도 약해집니다. 마음은 점점 “치열한 회개” 대신 “적당한 종교생활”로 기울어집니다.

다원주의가 침된 신앙을 만드는 내적 메커니즘을 조금 더 ‘양심의 사례’(casuistry)로 풀어보겠습니다. 먼저, 다원주의는 죄를 죄로 느끼게 하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흐리게 합니다. 여러 길이 다 괜찮다면, 십자가의 필연성도 옅어집니다. 십자가가 ‘반드시 필요한 대속’이 아니라 ‘여러 영적 길 중 하나의 상징’처럼 보이면, 죄의 무게도 가벼워집니다. 그 결과 성도는 마음 깊은 곳에서 “그렇게까지 회개할 필요가 있나?”라는 태도로 미끄러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십자가를 ‘선택 가능한 옵션’으로 두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죄를 어떻게 다루시는지(공의)와 하나님이 죄인을 어떻게 살리시는지(사랑)가 만나는 유일한 자리입니다.

다음으로, 다원주의는 신앙을 “진리의 순종”이 아니라 “영적 소비”로 바꿉니다. 현대 다원주의 사회를 분석한 피터 버거(Peter Berger) 전통에서는, 다원적 환경이 사람들로 하여금 궁극적 의미를 하나의 ‘당연한 세계’로 살지 못하고, 늘 여러 선택지 사이에서 “상대화(상황화)”하도록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이 교회 안에 들어오면 성도는 말씀을 “나를 바꾸는 하나님의 칼”로 받기보다, “내 기분을 돕는 콘텐츠”로 받기 쉬워집니다. 그러면 말씀 앞에서 무릎 꿇기보다, 말씀을 평가하고 취사선택합니다. 뜨거움은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진리 앞에 엎드림’에서 생기는데, 다원주의는 그 엎드림을 어렵게 만듭니다.

그 다음으로, 다원주의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키워 신앙을 침되게 합니다.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목사님, 저는 예수님이 유일한 길이신 건 믿는데, 그렇게 말하면 독선처럼 보일까 봐요.” 여기서 양심을 섬세하게 분별해야 합니다. 이웃을 존중하고 폭력적 언행을 버리는 것은 성경적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 복음의 칼날을 무디게 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 순간 마음은 하나님보다 평판을 더 붙듭니다. 결국 신앙은 조용히 식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심령의 불은, 사람의 눈치를 보는 순간 산소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흔한 사례가 있습니다. “다른 종교에도 좋은 가르침이 많잖아요. 다 틀렸다고 하는 건 너무하죠.” 여기서 개혁주의는 ‘두 가지’를 함께 말합니다. 하나, 하나님은 일반은총 아래에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도덕적 통찰과 질서의 선물을 주십니다(롬 2:14-15의 양심 논의는 최소한의 틀을 제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종교인들의 선행이나 지혜의 파편을 전부 조롱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둘, 구원은 지혜의 파편으로 오지 않습니다. 구원은 인격이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옵니다. “아들을 모시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요일 5:1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효과적 부르심과 구원을 말할 때,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역사로 주어지는 것임을 분명히 하며, 그리스도 밖에서의 구원을 허락하는 식의 사고를 경계합니다.   그러니 “존중”은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고, “구원”은 그리스도께만 있는 것입니다. 이 둘을 섞으면 마음이 흐려지고, 흐려진 마음은 뜨겁게 타지 못합니다.

이제, 다원주의 시대에 성도가 어떻게 다시 ‘뜨거운 신앙’으로 돌아갈 것인가를 복음적으로 말하겠습니다. 핵심은 “다원주의를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을 다시 보는 길”입니다. 침된 신앙은 대개 ‘열심의 부족’ 이전에 ‘시선의 이동’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장 귀한 분으로 보이지 않으면, 마음은 다른 것들을 귀하게 여깁니다. 그러면 기도는 의무가 되고, 예배는 일정이 되고, 죄와 싸움은 피곤한 자기관리로 전락합니다. 그러니 회복은 먼저 시선의 회복입니다. 십자가에서 죄의 심각함과 은혜의 깊이를 다시 보십시오(갈 2:20). 부활에서 새 생명의 실제를 다시 보십시오(벧전 1:3). 승천과 중보에서 “지금도 나를 위해 간구하시는 주님”을 다시 보십시오(롬 8:34). 여기서 마음의 온도가 다시 올라옵니다. 뜨거움은 “내가 무엇을 해낼까”가 아니라 “그분이 어떤 분이신가”에서 시작됩니다.

그 다음에는 양심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다원주의는 마음에 “모호함”을 심어 신앙을 흐리게 합니다. 그러니 반대로 양심을 말씀으로 선명하게 세우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하루를 마칠 때 이렇게 자문해 보십시오. 오늘 내가 피한 것은 무엇인가. 사람의 시선 때문에 숨긴 복음은 없었는가. 편안함 때문에 회개를 미룬 죄는 무엇인가. 인정받고 싶어서 하나님보다 더 붙든 우상은 무엇인가. 이 질문들은 우리를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데려가려는 ‘빛의 질문’입니다(요일 1:7-9). 회개는 ‘내가 다시 시작하는 결심’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다시 씻기는 자리’입니다. 회개가 복음에서 멀어지면 율법주의가 되고, 복음에서 나오는 회개는 마음을 다시 뜨겁게 합니다.

또한 성도가 반드시 붙들어야 할 방편이 있습니다. 다원주의 시대에는 특히 “공적 예배”와 “말씀-기도-성례”의 평범한 은혜의 방편이 가볍게 여겨지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늘 새로움과 자극을 주지만, 은혜의 방편은 ‘평범함 속의 능력’으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길로 성도를 살리십니다. 예배를 ‘취향의 선택지’로 대하지 말고, 왕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는 실제로 받으십시오(히 12:28). 주의 만찬을 ‘상징적 행사’로 넘기지 말고, 약속의 복음이 내게 적용되는 거룩한 확증의 시간으로 받으십시오(고전 11:26). 신앙이 뜨거워지는 것은 결국 은혜의 불길이 공급받을 때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붙들고 싶습니다. 다원주의 한복판에서 신앙이 침될 때, 문제는 세상이 복잡해진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왕좌에 그리스도가 ‘유일한 주’로 모셔져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싸움은 외부에서 시작되지 않고 내부에서 시작됩니다. “주님, 제 마음의 중심에 다시 오소서. 사람을 두려워하던 마음을 꺾어 주소서. 여러 길이 다 괜찮다는 세상의 속삭임 속에서, 십자가의 유일성을 제 양심에 다시 새겨 주소서.” 이것이 다원주의 시대의 가장 복음적인 기도입니다.

참된 관용은 진리를 버리고 얻는 평화가 아니라, 진리를 붙든 채 사랑으로 말하는 담대함입니다(엡 4:15). 그리고 그 담대함은 성격이 강해서가 아니라, 십자가 아래에서 “나는 죄인이었는데 은혜로 살았다”는 겸손을 배웠기 때문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다원주의가 주는 미지근함을 두려워하되, 그 미지근함을 이기려는 길은 결국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영광을 다시 보는 길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분이 다시 귀하게 보이면, 신앙은 다시 뜨거워집니다.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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