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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일예화말씀묵상 2020년 6월 13일 (토) - 순금을 연단할때

작성자목사님|작성시간20.06.13|조회수27 목록 댓글 0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에미 카미켈이 인도의 대장장이에게 질문했습니다. “당신이 금을 연단할 때 이것이 순금이 되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 금 속에서 제 얼굴을 볼 수 있을 떼까지 연단합니다. 불순물이 섞여 있는지 알아 보기 위한 방법은 그 속에 비치는 내 얼굴이 얼마나 정확하게 잘 보이느냐를 가지고 결정합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함인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바닷가의 조약돌은 수없이 거친 파도에 다듬어지면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나님께서는 원하시는대로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해 고난으로 우리를 연단하십니다.

어느 자매는 사랑하는 아버지와 동생을 잃고 나서야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자신의 생애를 바치겠다고 헌신하게 되었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허락라시는 고난을, 당신을 위한 연단의 기회로 삼겠습니까? 아니면 불평만 하겠습니까?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고난이 불순물이 없는 정금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연단임을 깨닫는가?

 

벧전 1:8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시험과 연단은 처음 맞부딪칠 때는 마치 삼손에게 달려든 사자같이 무서운 것이나, 한 번 이기기만 하면 단 꿀이 그 속에서 생겨나는 것과 같다.  -허드슨 테일러-

시험은 당연히 만날 수 있는 것이며, 죄가 아니다. 그러나 시험에 지는 것은 죄가 된다.  -빌리 그레이엄-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의 사역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연단의 재발견
(본문:벧전1:7)


 성경에서 연단은 연달, 단련 등의 의미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연단은 '쇠붙이를 불에 달구어 두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연단을 신앙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잠17:3)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마음을 연단하신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유아기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서 어른스럽게 성숙되고 고양되어 가도록 하나님이 이끄신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도의 연단에 대한 하나님의 참된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판별(단11:35)


 1)참과 거짓을 판별함
 성경에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고 표현되고 있습니다(시64:6). 우리나라 속담에도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어떤 그 사람의 인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고난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숨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평소에는 좋은 성품과 인간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이 고난과 민감한 이익적 사안에 접해서는 교활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를 봅니다. 평소의 행동은 위선적인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평소에는 나약해 보이던 사람이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 처해서는 의외로 굳건한 모습으로 대응하는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연단은 사람들의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시금석이 됩니다.


 2)참된 백성의 유무를 판별하게 됨
 이스라엘 백성은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물론 그 고난을 자신들이 자초한 경우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부여하신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백성을 고난의 길로 인도하셨을까요? 그것은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자신들이 원하는 길로 그릇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라 내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렘9:7)고 선언 합니다. 하나님은 백성의 잘못을 묵과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백성의 잘못은 자신들을 멸망의 늪으로 이끌어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연단을 받음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오는 것은 물론 아닐 것입니다.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있는 자는 깨달으리라"(단12:10)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연단을 통해 참된 백성의 유무를 판별하십니다. 왜냐하면 선인과 악인이 함께 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창19:16,17)


 2. 증명(히12:11-13)


 1)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이 증명됨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 성도의 연단 과정은 이해하기 힘든 것입니다. 살아계신 신이라고 주장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고난을 당한다는 것은 결코 좋은 모습으로 비쳐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 성도의 연단은 하나님이 세상의 주관자요 자기 백성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확증과도 같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잘못된 길로 가는데 방치할 부모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결코 단 한 사람도 하나님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습니다(롬8:28). 성도의 연단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 아래 있음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2)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증명됨
 지성인임을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죽었다고 조롱했습니다. 그들의 판단 기준은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왜 사람들이 이러한 잘못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느냐는 회의에 근거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이 더 이상 살아계시지도 않을뿐더러 이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와 오늘날까지 진행되어 온 세계 역사의 흐름을 보면 하나님은 결코 죽으신 것도 잠자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성도의 연단은 "의의 평강한 열매"(히12:11)를 위한 정지작업이며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하는 선포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약5:10)고 했습니다. 성도의 연단은 하나님께서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에게 역사하신다는 명백한 증명인 것입니다.


 3. 단련(히5;13,14)


 1)죄악에 휩쓸리지 않게 됨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세상이 모두 선하거나 진실한 것은 아니라는 것은 깨닫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유아기적인 신앙을 가지고는 죄악에 휩쓸리거나 그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기를 원하십니다. 세상 사람들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자는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딤전5:6)는 선고를 듣게 될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벧전4:3)라고 말씀하시며 이제 선악을 분변하고 초등 학문에서 벗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에 의해 단련받은 사람은 장성한 사람으로 죄악을 분변하고 거기에 휩쓸리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악의 길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2)더 큰 일을 맡기려 하심
 연단은 성숙으로 향하는 관문입니다. 아무도 이러한 과정을 피하고 장성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감당할 만한 능력이 없는데도 일을 맡기는 어리석은 이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단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시겠다는 의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고난을 받았습니다(빌2:22). 그 고난은 디모데를 성숙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더 큰 일을 감당할 것을 원하십니다. 그런데 더 큰 사명의 감당은 하나님의 연단에 대한 인내로부터 시작됩니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4)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연단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연단은 우리로 하여금 순수하게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신앙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연단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작정된 기한까지 이르게 하는 유익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단11:35). 연단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징표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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