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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류재훈)

청의 10황제와 자금성

작성자류재훈|작성시간10.08.03|조회수74 목록 댓글 0

     
 
 
청의 10황제와 자금성 |세상 이야기(류재훈)
류재훈 | 조회 0 | 2010.08.03. 20:18 http://cafe.daum.net/cjm42/6ZRn/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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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의 얘기는 참고 사항이고



내가 아는 정사는 서태후는 1835년-1908년, 죽기는 1908년 무술년 10월13일 제 생일잔치를 거하게 열고

20일 이질이 발명하여 아편을 배로 복용하여도 차도 없어 빼빼 마르다 11월 14일 죽는다.


청의 역사를 보자

 동북부의  변방 후금의 2명의 왕은 조선의 광해와 호형 호제한 사이이며 인조에게 형님이라 불러지길 바라는 작은 왕이다

통일중국의 황제가 아니다

일부 자료들이 청의 선대왕을 황제로 치는 것은 무식의 소치이고

 중국인도 인정 안하는데  뭘 모르는 아해들의 아부이다.


우리 조선의 공문서에 나오는 황제만이 우리선조들이 인정한 중국의 황제다

중국인의 자금성에 입성하여 중국을 호령한 사람이우리조상과 중국인과 나는  황제라 본다 

 고로 순치를 청의 1대 황제라 표현한다.자금성에서 먹고 싸고  백성 조지고  뀐놈이 황제다!!!!!!!

이점은 자금성 박물관 순치 영정에 청 1대 황제라 쓰여 있다.


후금의 순치제가 비로소 자금성에 입성 중국을 통일한 이후순치가 15년 다스린1647년부터

 나는 후금을 포함한 청으로 본다.

2대황제 강희가 국호를 “청”으로 바꾸어 262년 존속 한다


초대황제 순치 1647년 15년 재위  우리 조선은 순치 년호를 안 쓰고 영명으로 호칭한다.

2대황제  강희 1662년 61년 재위

3대황제  옹정 1723년 13년 재위

4대황제  건룽 1736년 60년 재위

5대황제  가경 1796년 25년 재위

6대황제  도광 1821년 30년 재위

7대황제  함풍 1851년 11년 재위

8대황제  동치 1862년 13년 재위

9대황제  광서 1875년 34년 재위

10대황제 선통 1909년  3년 재위



서태후의 생가는  최근“유기“ 연구 자료에 의하면

만주족이 아닌 한족의 가난한 농부의 딸로 姓 ”예허나라“이고

名은 ”난아“로 4살에 만주족 왕 씨에게 입양된다.

16살에 궁녀로 입궁하여 궁의 여인 11계급 중 5등급의 귀비(정원2명)에 녹봉 된다.

 궁녀로 입궁한 뒤 임을 봐야 뽕을 따지 뇌물을 주어

 황제의 길목을 찾아 목청을 높여 노래를 하다

함풍제의 눈에 뛰어 출세 가도를 가는데 노래 내용이 한족의 노래만을 주로 하여

 황제가 만주족이 한족

노래만 하느냐 물은 적이 잇단다.


청을 48년 통치한 여인으로74세에 죽는다. 아들 동치가 6세에 등극할 때 서태후는 26세고 동태후는 25세다


아들 동치는 13년 재위 후 19세에 죽는다. 이때가 1875년이다

1881년 정비인 동태후가 죽는다.


한 끼 식사비용은 은전 1백 냥으로 중국농민 1만5000명의하루 식비다 하루 식비 은전 3백 냥은 농민 4만5000명을 하루 먹어 살린 돈이다

사치하기는 하루5번의 목욕을 하는데 한번은 여인의 모유를 짜서 욕통에 넣고

마사지를 하고

 시중들던 시녀를 마음에 들지 않으며

그 자리서 샘에 빠트려 죽인 예가 있어 시녀들이 몹시 그녀를 두려워했단다.

한번은  늙은 남 내시가 한일이 마음에 안 들자 그 자리에서

인분을 먹이는 벌을 주기도 하여 모든 내시 시녀가 겉으로 따르나 무척 싫어했다.

그리고 옷을 자주 갈아입는 폐쎤 쇼를 한 모양인데 옷은 3000상자가 있었단다.


죽으면서 다음부터는 여인이 정치를 못하게 하라는 엄명을 내리고 가시었는데!!!!!!!!

죽은 뒤 호화로운 관(보석으로 관의 주위를 쌈)에 묻어 능을 만들었으나

 1928년 공산당이 들어 선후 파 해쳐지고 시체는 모욕을 당하였단다.

가이드의 얘기는 참고사항이지 따지고 들면 엉터리들이다



5시30분 서커스 공연/70분

7시00분 식사이동 왕부정 거리

왕 씨가 살던 동네다 사람이 살려면 1순위가 식수가 있어야 한다.

이곳이 좋은 우물이 있어 호족이 살면서 번창한 동네인 모양이다.


계속 가이드는 내일 밤 “북경의 밤 ”공연 관람을 강매한다.

저는 이곳에서 팀을 안 받고 백두 산가서 내고 대신 인당 40불짜리 공연을 옵션으로 보달 라는 얘기다

저녁먹이고 나와서 의사를 표현해 달라는 얘기다


7월 18일일요일

 

 

 

 

 

 

 

 

 

 

 

 

 

 

 

 

 

 

 

 


5시 일어나서 목욕 후 짐을 챙긴다. 어제 한 병 먹었어도 가져온 소주가 3병이나 남았다

내일 잠잘 호텔이 이곳이 아니고 싼 곳으로 옮기다 보니 버스 이동시간이 길다

6시30분 조식을 먹고 버스에 탄다. 호텔 나올 때 중국은 수건이 없어지면 돈을 물어야한다

수건이 없어져 한동안 여려 명이 기다린 후


7시10분 천안문 광장으로 향한다.

8시 정각 버스 하차

9시 자금성에 입궁한다.

이곳은 가이드를 따라 다녀 봐야 중국사람 머리통 보기만 할 뿐

양공에 10시에 북문으로 나온다 한 뒤

혼자 왼쪽으로 향한다. 서태후의 서쪽이다

이곳은 청대의 유물이 전시된 전시공간이다 청1대황제 순치제, 건륭제 강희제의 영정과

금색 마구 무기류 악기류 불 상류 도자기류 서책류

 황제의 밥상에 쓰던 반상기류 실로 많은 보물이 전시되는 곳이다

1시간으로는 겉도 못 핥고 갈 시간이다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해 후원은 대충 지나갔어도 5분 지각이다 27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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