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梁公
지난주로 3주차 교육이 끝나 홀가분하여 나의 주장을 씁니다.
二月河의 역사소설 강희대제편에 읽은 기억이 나는 구절인데 이 책을 이사 올 때 모두 남을 주서 미확인입니다
후금의 2대왕 홍타이지가 후금에서 청으로 국호를 양공주장대로 1626년이겠지요. 개명합니다.
그리고 그 소설 에에 명확한 얘기가 없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뭔 이유야 쓰겠지만 소생이 기억을 못합니만
얼마 안가서 국호를 후금으로 다시 환원합니다.
아마 명의 한족입장에서 보면 만주족 후금이 청으로 국호개명이 중국대륙의 통일작업에 한족의 존심을 건드려 반작용이 있었을 테이고
아직 동북3성정도의 만주 땅에 심양을 수도로 하는 후금으로서는 본토를 장악하고 북경의 자금성을 지한 다음에 국호를 청으로 다는 것이 전략상 나은 선택이라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소인은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후금을 배후에서 명과 합동작전으로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키 위해후금의 왕 홍타이지는 즉위하자마자 조선에 침범합니다. 정묘호란 1627년입니다
그런 후 확인살차 1636년 병자호란을 일으키고 항복과 함께 소현세자 봉림대군을 볼모로 잡아 심양으로 데려가지요 그리고 후금의 왕은 연호를 崇德으로 버꾸지요 거의 중국은 먹어가고 있다는 자존심의 발로입니다
그러나 북경과 자금성은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버티고 있습니다. 숭정제9년입니다
그리고 자금성에 입성치 못하고 후금왕 홍타이지는 죽고 말지요 1643년입니다
비로소 청세조로 일컬어지는 순치가 등장합니다. 1643년이고 명의 숭정16년입니다
심양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도 더 이상 불모의 가치가 없고 새 임금의 등극특사로 인심을 써 귀국시킵니다.
그리고 같은 한족인 이자성의 발란 덕에 자금성은 손쉽게 이자성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명의 마지막 황제는 자금성 해자를 판 흙으로 쌓은 동산정자에서 목메 죽습니다.
나라 잃은 황제나 왕은 마땅히 이래야 합니다.
신라의 경순왕이나 후백제의 견훤이나 조선의 고종순종처럼 비굴하게 승리자들이 던 저주는 벼슬이나 밥을 얻어먹어서는 안 된다 소생은 생각합니다.
장하다 명의 자존심을 지켰으니 숭정제여!!!!!!
드디어 순치도 1661년 재위15년으로 죽지만 그는 중국 전 대륙과 자금성에서통치를 한 황제이기 때문에 중국의 한족들이 청의 창시자로 보고 1대 황제라 그의
영정에 표기 한지 모릅니다.
1662년 康熙제가 등극합니다. 그리고 정식 淸으로 국호를 창건한 것으로 소생의 자료는 쓰여 있습니다.
다음은 참고 자료입니다
비록 간자로 허지만 글이 짧은 소생도 대충 짐각하겠듣데 해박하신 양공이아 한눈에 알아보시겠지요
역사는 누구 눈으로 봐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루하치의 12세는 부이입니다 부이의 11대조는 누르하치지요 그것은 그들의 가승입니다
왕조는 만주족이 보면 후금의 누르하치를 창시자로 보겠지요.
그러나 우리 조선인은 시각으로는 후금은 우리를 2번이나 침공한 원수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우리 선조를 무참히 살해하고 노략질을 해간 전쟁의 원흉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정확히 호칭해야 합니다.
1대2대는 후금의 왕이고 청의 창시자는 3대왕이 통일하여 황제가 되었으니 그부터 황제로 호칭해줘야 정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