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12
백사실 계곡
다리근력을 키우기 위해 하루 3시간이상 남산 팔각정까지 오르고 내리기로 마음먹고 열흘이상 계속하니 현충일 전후로 6시간이상 무리한 산행의 근육통이 사라졌다 종아리의 알이 배면 어릴 때는 이삼일 지나면 없어지는데 이제는 아니다 종아리를 만져 마사지를 하고 스트레칭으로 풀지 않으면 안 된다.
조금 더 경사진 인왕산을 오르기로 하고 급경사를 오르니 숨이 턱밑까지 찬다 한두 번 쉬어야 오른 더니 두 번째는 근력이 붙었는지 안 쉬고도 오른다.
지난번에 우리보다 나이가 더 드신 분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오르다 따라간 것이 길이 잘못되어 백석 동천이다 이곳은 백악(북악산)의 빼어난 경치를 유지 관리하던 별서가 있던 자리로 지금은 白石洞天이란 암각된 글자만 남아있다
이곳은 白沙室이란 속명으로 불린다. 백사 이항복 선생과 어떤 관련이 있겠지만 증명된 기록은 없으나 계곡에 백사의 별장 터로 짐작되는 집터와 연못의 정자가 남아 잇다는 말에 따라 내려갔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이런 명당에 이런 집터와 연못 정자????
그리고 주변자연 환경이 너무 조화를 이룬 곳은 처음이다
한 동안 넋을 잃고 주변을 관찰하다 주춧돌 하나하나의 간격과 옛 집의 모양새를 간음해보니 사랑채는 간반 두 줄 배기 네 칸으로 6칸 집이 기역자 건물이니 열두 칸 집이다
계단을 올라온 사랑의 전면은 높은 누마루방과 대청이 있음직하고 왼편으로 돌아간 기역자집의 다른 한편은 퇴를 넣은 대청이 반간씩 네 칸이 걸여 있다
그 툇마루에서 쳐다 뵈는 작은 연못 약 80평은 돼 뵈는 연못이 있고 그 위편에 육각정의 초석이 세월의 세파에 약간 기울어져 있다
그날은 카메라를 안가지고 가서 오늘 다시 카메라라 메고 찾아 온 것이다
이곳은 군사 보호구역으로 묶인 덕에 오늘날 까지 잘 보존이 됐다 그리고 생태공원으로 지정되어 개도맹보호구역이다 개구리 도롱뇽 맹공이의 약칭이다
그 실개천을 따리 조금 내려오면 세검정의 주택가가 나오고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못난 임금을 반정으로 세운 인조반정이란 역사를 만든 장본인들이 모여 반역을 꾀한 정자가 나온다.
때 많이 묻은 노해한 정치가 김유 이서 김자점 신경전 이괄 등등 그런 인물이 우리나라의 승천국운을 다시 묵어 200여년을 더 흘러 보내면서 치욕의 역사를 만들고 이제야 좀 국운이 피려는 시기에 접어들게 만든다.
백사 이항복 선생
임진왜란에 못난 임금 게다가 변덕까지 심한 왕 선조를 호종하여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하신 위대한 선각자 아니신가.
그 분의 속설상의 별장이라지만 소박하고 자연을 그대로 이용한 작은 별장과 연못과 정자기초가 그분의 인격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자리다
이곳은 외진 궁벽한 산속이라 추운 겨울을 나기는 도로 사정이나 난방이 어려울 것으로 보면
한여름 별장이 맞을 것이다
오늘에야 안내판을 자세히 보니 중구청에서 이미 발굴조사를 완료하여 집터와 기단 그리고 실측이 끝나고 안채 터는 복토를 하고 사랑채는 기초만을 남기어 두었다
안채 터를 지나가니 우물터는 자연석을 뚫어 흐린 물을 받던 자리가 있고 뒤 계단을 오르니 담장이 아직 일부 남았다 넓이는 3자정도 90센티로 넓다
그런 담장이 30여 미터 남았다 그리고 연못이 있다
행락객이 사직단에서 모여 체조를 하고 무전기를 들고 행사를 준비하더니 인왕산을 올라 넘어 창의문을 통과해서 음식을 잔뜩 바리바리 싸 가지고고 이곳을 선발대가 도착해 있다 유니폼이 그들이다 엄청난 분량이다 우리를 알아보고 먹을 것 많이 가지고 왔으니 오셔서 잡수시란다
고맙다고 건성인사를 하고 내려가니 막걸리로 목을 축이면서 인절미 같은 것은 웬 여인이 남자를 입에 넣어 준다. 나를 보더니 내게도 주겠단다. 뭔가 보니 인절미가 아니고 달걀후리이다 낮선 여인이 입에 넣어 준다. 주뼛거리니 마누가가 자기는 싫고 난 얻어먹으란다. 프라이를 이리 많이 해오는 소풍도 있다
아직 인심은 살아있다 한 개 맛을 보고 돌아서 오던 길로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