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선유도 기행 신아문예대학 수필가 구연식
사람들은 지척에 있는 유명 관광장소는 일부러 가지 않아도 언제나 쉽게 갈 수 있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냥 지나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몇십 년을 보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멀리 사는 사람들은 일부러 여행코스를 잡아서 다녀가곤 한다. 그곳 주민들은 다녀오지 않았어도 많이 다녀 온 것처럼 능청을 떨면서 얼버무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나는 군산에서 40여 년이나 살았으면서도 선유도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선유도에 다녀와왔다. 지금은 일반 학교 교육 활동도 시대적 교육목표에 따라서, 소풍이 체험학습으로 수학여행이 테마여행으로 바꾸어 졌다. 내가 1960년대에 다녔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쌀이 그렇게 귀해서인지 물품화폐로 통용되기도 했다. 시골에 사는 학생들은 하숙비 대신 하숙미(下宿米) 쌀 포대를 일요일에는 메고 오는 일이 일상적이었다. 수학여행을 갈 때도 농촌 학생들은 돈 대신 쌀을 가져가기도 했다. 수학여행 여관집 사장님도 쌀이 귀한 시절이라 돈보다는 쌀을 좋아했다. 선생님들은 학생 수를 계산하여 밥값을 끼니마다 쌀로 주었다. 지금 신세대들이 생각하면 곧이듣지 않을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로 들을 수 있다.
나는 60여 년 전 중학생 시절에 고군산으로 수학여행을 갔었다. 쌀자루를 등에 메고 버스에서 내려 익산 기차역에서 군산행 기차를 탔다. 기차는 힘이 들어서인지 가끔 꽥꽥 소리를 지르고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스쳐갔다. 기차는 가만히 있는데 철길 옆 전봇대들이 계속 뒷걸음을 치면서 멀어졌다. 다른 산과 집들을 보아도 전봇대처럼 기차를 밀어내면서 뒤로 가는 것이 신기해서 정신이 팔렸다. 어느덧 기차는 군산역에 도착했다. 선생님은 제일 앞장을 서서 가시고, 학생들은 올망졸망 쌀자루를 메고 병아리 새끼처럼 선생님을 따라갔다. 어머니가 모처럼 수학여행을 간다고 새 운동화를 사주셨는데, 기차역 옆길은 검은 팥죽처럼 질퍽하여 새 운동화를 더럽혔다. 운동화에 신경 쓰랴 선생님 따라가는데 신경 쓰랴 정신없이 걸어갔었다.
째보 선창까지 걸어서 모퉁이를 돌아가니 드디어 연안여객선 터미널이 있었다. 배 출항 시간이 많이 남아서 담임선생님은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먹으라고 했다. 생전 처음 본 인근 수산시장 그리고 바다와 부둣가나 고깃배 돛대위에 앉아서 시골뜨기 중학생들이 신기해서인지 날아가지도 않고 노려보는 갈매기가 오히려 신기했다. 드디어 고군산행 배를 탔다. 그곳에 가는 일반 사람들도 같이 선실과 갑판에 나누어 탔다. 한참을 가니 물개들이 고개를 수면으로 내밀고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사람들은 신기해서 야∼하면서 소리를 쳤다. 나는 그 물개가 선창가 갈매기처럼 시골뜨기 나를 얕보며 약 올리는 것 같아서 싫었다. 고군산 가는 길에 작은 섬에 주민들을 내려놓거나 태우기도 했다. 그런데 군산에서 조금 먼 바다로 가니 파도에 배가 출렁거려 학생들 대부분은 뱃멀미로 점심때 먹은 밥을 여기저기서 토해내어 삽시간에 갑판이나 선실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버티니 고군산 선착장에 도착했다. 여기저기서 어른들은 흙냄새를 맡으면 뱃멀미는 가라앉는다고 했다. 친구들은 주위에 있는 흙 한 줌을 집어서 코에 댔는데 어느 순간부터 뱃멀미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선유도 여관에 도착하니 옆집 옆집까지 방을 비워놓고 학생들을 분산하여 잠자리를 정해주었다. 밥은 한곳에서 먹었는데 집에서 풋내나게 먹었던 푸성귀보다는 처음 본 해물 반찬이 대부분이었다. 저녁을 먹고 여관집 앞바다를 보니 바닷물이 멍석에 널어놓은 벼알을 고무래로 밀고 오듯이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기도 했다. 그리고 물결 끝쪽에는 엄청나게 큰 바위산 봉우리 2개가 내 눈에 처음으로 들어오더니 나갈 줄을 몰랐다. 그렇게 저녁 시간을 마치고 각자 정해진 방으로 가서 잠을 청하니 낮에 뱃멀미에 시달렸는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코골이 경쟁이 여름밤 개구리 합창처럼 이방 저방에서 한창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여관집 앞바다를 보니 저녁때 여관집 앞턱까지 넘실거렸던 바닷물은 모두 빠져나가서 갯벌 만 드러났다. 조그마한 게들이 개미떼처럼 기어 다니고 있어 처음 본 나는 그것도 구경거리였다. 성큼 다가가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렇게 많던 게들은 자기 집 구멍으로 쏜살같이 들어갔다가 인기척이 없으면 또 기어나왔다. 어젯밤에는 갯벌 저 멀리 물에 잠긴 듯 보였던 큰 바위산 두 봉우리가 아침에는 발목까지 보여 나에게 색다른 기억을 주는 것인 양 또 성큼성큼 다가왔다.
오전 한나절쯤에 배가 출항한다기에 모두다 승선 준비에 바빴다. 들어올 때 뱃멀미에 놀란 친구들은 흙 한 줌을 집어서 물에 적셔 아예 선실에 누워서 코밑에 올려놓고 연신 황토냄새 맞기에 바빴다. 그래서 그랬는지 벌써 면역이 생겼는지 군산에 갈 때는 멀미가 그리 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유도 하면 황토멀미약과 쌍둥이 돌산(망주봉)이 늘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게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국가의 새만금계획과 연계하여 고군산열도 개발계획으로 섬마다 연륙교가 세워졌다. 군산에서 자동차로 고군산 열도를 가 볼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연륙교 개통 직후에는 전국 자동차들이 몰려들어 길 위에서 옴짝달싹을 못 하고 돌아간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주중에 마음먹고 아내와 선유도 나들이에 나섰다. 해수욕 시즌이 아니고, 주중이라서인지 자동차라고 해야 심심하면 한 대씩 지나갈 정도로 너무 한산했다. 중학교 때 어린 가슴을 채워줬던 쌍둥이 산(망주봉)이 가장 보고 싶다. 교통통제도 없고 주차해도 무료이어서 오늘은 선유도 전체를 전세 낸 기분이었다. 망주봉이 제일 가까운 명사십리 바닷가 주차장에 주차해 놓고 망주봉 등산길을 백방으로 물어보고 찾아보아도, 망주봉은 바위산이고 급경사이어서 등산을 금지한다는 산 주위를 에워싸고 서 있는 시장과 경찰서장의 경고문 게시판이 보였다. 할 수 없이 나와 아내는 느린 걸음으로 망주봉을 샅샅이 훑어가며 한 바퀴 돌았다. 망주봉 중턱에는 여기저기 진달래꽃 무리가 연분홍 분을 바르고 웃으면서 속상해하지 말고 구경하시라고 달래주었다. 마지막 돌아 나올 때는 망주봉 바위를 쓰다듬으면서 올라가지 못했던 마음을 달랬다. 바다 저쪽에는 그 옛날 여관집터도 어렴풋이 눈에 보였다.
나와 아내는 명사십리 백사장을 걸으면서 자꾸만 시선은 망주봉과 수학여행 여관집 쪽을 보다가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 소년이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어 소년 시절을 회상하면서 선유도 망주봉이 백미러에서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어느덧 차창가에는 골리앗보다 몇 배나 큰 풍력발전 바람개비가 손짓하며 배웅해 주고 있었다.
(202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