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꽃의 시인의 길 2
김남주시인, 혁명운동가를 실천하다 10여년을 옥중 생활을 했고
그 긴 옥바라지를 해준 동지이자 연인인 박광숙씨와 결혼,
1994년 부인과 아들 토길을 남긴 채 긴투옥생활의 후휴증과 지병으로 48살의 나이로 타계한 혁명시인.
"나는 놓는다, 그대 가슴 위에 나의 칼 나의 피를" 그는 전사였고 시인이였고 민중의 살아있는 영원한 벗이였다.
창살을 뚫고 전해진 그의 말과 이야기들은 우리의 가슴을 항상 뜨겁게 달구고 끓게 했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16년 김만옥시인과 마주보며 지금은 무슨 노래를 하고 있을까?
노래 : 노래를 찾는 사람들
(김남주 시/ 김경주 곡)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진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녁 웃녁에서 울어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들불이)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반란이)
청송 녹죽 가슴에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
청송 녹죽 가슴에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이 길을 걷다보면 가슴이 싸아해서 깊은 통증을 느낍니다. 그래도 차꽃은 양쪽 시인에게 예의를 갖추어 안부를 전합니다.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었다
살아남아 대지와 민중의 가슴에 뿌리를 내리고 다시 한번 사랑을 껴안는 것이었다.'
그의 시(전향을 생각하며 중)한쪽 떠올려보며 이 환한 철쭉 길을 걷습니다.
이영미님의/『노래 이야기 주머니』중 해설로 시인의 노래에 대한 글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노래는 동학농민혁명을 노래한 김남주의 「노래」라는 시에 광주 지역의 화가 김경주가 곡을 붙인 작품으로,
일명 「죽창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 이 노래는 우리가 시나 노래를 대하고 사랑하면서 느끼게 되는 노래와 시에 대한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우리는 처음엔 흔히 노래와 시를 '꽃'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대한다. 시와 노래는 아름다운 것, 아름다움을 보는 즐거움을 주고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을 꽃처럼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는 것이다.(여기에서 '날라와 더불어'는 아마 '나와 더불어'라는 뜻으로 쓰인 것 같다. 원래 '날라와'의 '라와'라는 조사는 「청산별곡」의 '널라와 시름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노라'에서처럼 '∼ 보다'라는 비교의 뜻을 가진 조사여서 쓰임이 적절하지는 않다. 그러나 시인은 '나와 더불어'보다는
음악적인 율격을 강화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려면 '나'에 고어적인 'ㄹ 첨가'를 하여 '날과 더불어'라고 썻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새'이다 자신 혼자 꽃으로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였던 시와 노래에 대한 생각이 발전하여, 시와 노래로서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울부짖고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자하는 것이다. 다음 구절에서 시상은 '두메'나 '산골'에서 갑자기 너른 '들판'으로 발전한다. 인식의 지평, 세계에 대한 태도가 넓어진 것이다. 그럼으로서 시와 노래는 '들불'이 되어 '어둠을 사르'고자 한다. 그리고 '들판'보다 인식은 인간사회의 느낌을 주는 '고을'로 넘어오고 시와 노래는 '반란'이 된다. 그리고 결국 그것은 무기인
'죽창'이 되는 것이다. '꽃'으로부터 '죽창'에 이르는 시와 노래의 의미는 자못 감동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