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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차

동다송(2)

작성자다소롬|작성시간02.03.12|조회수150 목록 댓글 0


제 6 송 百珍雋永

巨唐尙食羞百珍이나 沁園唯獨記紫英이라
法製頭綱從此盛하야 淸賢名士誇雋永이로다

당나라 음식숭상 온갖 진미 바쳤지만
공주에게 하사한 음식에 자영차만 기록됐네
茶를 만드는 요령 그때부터 성행하여
청현 명사들은 음미하고 그 맛 좋다 자랑했네



唐德宗이 每賜同昌公主 饌與茶에 有綠花紫英之號하다
茶經에 稱茶味 雋永이라 하니라

당 덕종(唐 德宗)이 동창공주(同昌公主)에게 반찬과 茶를 하사할 때에는 녹화 차(綠花茶) 자영차(紫英茶) 이름이 끼어 있었다.
다경(茶經)》에서는 "차맛(味)을 준영(雋永)"이라 하였다




제 7 송 一染失眞

綵莊龍鳳團巧麗하야 費盡萬金成百餠이라
誰知自饒眞色香고 一經點染失眞性이로다

용과 봉을 잘도 그려 둥글고도 아름다워
만금을 허비하며 온갖 떡차 만들었네
누가 알랴 스스로 풍요로운 참빛깔 참향인 줄
한 번 물들고 나면 참성품 잃어 버리네



大小龍鳳團은 始於丁謂나 成於蔡君謨하고 以香藥合而成餠하고 餠上에 飾以龍鳳 紋하야 供御者는 以金莊(粧)成이라 東坡詩에 紫金百餠費萬錢이라 하니라
萬寶全書에 茶自有眞香, 眞味, 眞色이어늘 一經他物點染이면 便失其眞이라 하니라

크고 작은 용단(龍團) 봉단(鳳團)이 만들어진 것은 정위(丁謂)가 처음 시작했 으나 채군모(蔡君謨)에 의해서 완성되었고, 향약(香藥)을 넣어 병차(餠茶)를 만 들고 병차(餠茶) 위에 용과 봉황의 무늬를 장식하여 임금께 바칠 것은 금색으로 꾸몄다. 소동파(蘇東坡)의 시(詩)에 "수많은 붉은 금색 병차(餠茶)는 수만금을 허비하였다"고 하였다.
만보전서(萬寶全書)》에 "차는 그 자체에 참된 향과 맛과 빛깔을 지니고 있 는데, 한 번 다른 물질에 물들고 나면 곧 참됨을 잃게 된다"고 하였다.




제 8 송 手栽全嘉

道人雅欲全其嘉하야 曾向蒙頂手栽那라
養得五斤獻君王하니 吉祥 與聖楊花로다

도인이 평소에 차맛을 온전코자
몽산 정상 오르시어 손수 차를 심으셨네
다섯 근을 길러 얻어 군왕에게 올렸나니
길상예와 성양화 그것이었네



傅大士 自住蒙頂結庵하고 植茶凡三年에 得絶嘉者를 號聖楊花, 吉祥 라 하고 五斤을 持歸供獻하니라.

부대사(傅大士)는 몽산정(蒙山頂)에 암자를 짓고 살면서 茶를 가꾸어 3년이나 결려 가장 좋은 차를 만들어 성양화(聖楊花), 길상예(吉祥 )라 이름지어 5근을 가지고 들아와 임금께 바쳤다.




제 9 송 雲澗月

雪花雲 爭芳烈하고 雙井日注喧江浙이라
建陽丹山碧水鄕에 品製特尊雲澗月이로다

설화차 운유차 짙은 향기 다투고
쌍정차 일주차는 강절에서 이름 높다
건양 단산 물푸른 고을에서
만들어진 운간차 월감차 질도 좋아라



東坡詩에 雪花兩脚何足道아 하고 山谷詩에 我家江南採雲 라 하니라 東坡 至僧 院하니 僧梵英이 葺治堂宇嚴潔하고 茗飮芳烈이어늘 問此新茶耶아 하니 英曰 茶性 은 新舊交면 則香味復이라 하니라 草茶는 成兩浙이어늘 而兩浙之茶品은 日注爲第 一이라가 自景祐以來로 洪州의 雙井, 白芽 漸盛이러니 近世에 製作尤精하야 其品 이 遠出日注之上하야 遂爲草茶第一이라
遯齋閑覽에 建安茶 爲天下第一이라 孫樵 送茶焦丹部日 晩甘候 十五人을 遣侍齋 閣하니 此徒乘雷而摘하고 拜水而和라 하니 盖建陽, 丹山 碧水之鄕의 月澗雲龕之 品은 愼勿賤用이라 晩甘候는 茶名이라
茶山先生의 乞茗疏에 朝華始起에 浮雲이 於晴天하고 午睡初醒에 明月이 離 離於碧澗이라 하니라

소동파(蘇東坡)의 시에, "설화(雪花)를 양각(兩脚:註解)으로 어찌 말할 수 있 을까?"라는 싯구가 있고, 황산곡(黃山谷:黃庭堅)의 시에서도 "강남 우리 집에서 는 운유차(雲 茶) 잎을 딴다"라고 하는 싯구가 있다.
소동파가 어느 한 사원(寺院)을 찾으니, 범영(梵英:宋僧) 스님이 사원을 잘 단 장하여 말끔히 하고 향기 어린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에 "이 차는 햇차입니까" 하고 묻자 범영이 "차의 성질은 햇차와 묵은차를 섞으면 차의 향기와 맛이 되살 아난다"고 하였다.
초다(草茶)는 양절(兩浙:浙東과 浙西) 지방에서 만들어졌는데, 양절 지방의 차 중에서는 일주차(日注茶)가 으뜸이었다. 그러나 경우(景祐:宋仁宗 연호, 1034∼ 1037)년간 이후로 홍주산(洪州産) 쌍정차(雙井茶), 백아차(白芽茶)가 점차 좋아 졌는데 근세에는 더욱 더 정제(精製)되어 그 품질이 일주차(日注茶)보다 훨씬 뛰 어나 마침내 초다(草茶) 가운데 제일이 되었다.
《돈재한람(遯齋閑覽)》에 "건안차(建安茶)는 천하 제일이다. 손초(孫樵)가 초단부(焦丹部)에게 茶를 보내면서 말하기를 '만감후(晩甘候) 15인을 재각(齋閣) 에 보내노라. 이 무리들은 번개를 타고서 잎을 채취하였고 정성껏 물에 절하고 서 법제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건양(建陽), 단산(丹山) 벽수(碧水)의 월 간차(月澗茶), 운감차(雲龕茶) 품질이 천하게 쓰여서는 안됨을 말한 것이다. 만 감후(晩甘候)는 茶 이름이다.
다산 선생(茶山 先生)의 《걸명소(乞茗疏)》에 "아침 햇살에 일어나니 맑은 하 늘에 구름이 둥실거리고, 낮잠에서 깨어나니 푸른 시냇물에 밝은 달이 어른거리 네"라고 하였다.




제 10 송 味藥兼兩

東國所産元相同하니 色香氣味論一功이라
陸安之味蒙山藥을 古人高判兼兩宗이로다

우리 차는 중국차와 원래 같으니
색깔 향 느낌 맛 한가지라 말해오네
육안차는 맛이요, 몽산차는 약효라하지만
우리 차는 둘 다 겸했다 옛사람 칭송했네



東茶記에 云或疑東茶之效는 不及越産이라 하나 以余觀之컨대 色香氣味 少無差 異로다 茶書에 云陸安茶는 以味勝하고 蒙山茶는 以藥勝이라 하나 東茶는 盖兼之 矣라 若有李贊皇, 陸子羽면 其人이 必以余言爲然也리라 하니라.

《동다기(東茶記:丁若鏞 著述》에 이르기를 "어떤 이는 우리 나라 茶의 효능이 중국 월주(越州)에서 생산된 茶에 미치지 못한다고 의심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색(色), 향(香), 기(氣), 미(味)에서 모두 별다른 차이가 없다. 다서(茶書)에 육안차(陸安茶)는 맛으로 뛰어나고 몽산차(蒙山茶)는 약효가 높다 하였으나, 우 리 나라 茶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겸하고 있다. 만일 이찬황(李贊皇)이나 육우 (陸羽)가 살아 있다면 반드시 나의 말을 그들도 수긍하리라 믿는다"라고 하였다.




제 11 송 八牲還童

還童振枯神驗速하야
八牲顔如夭桃紅이라
我有乳泉하야 把成秀碧百壽湯하니
何以持歸大覓山前獻海翁가

마른 가지 되살아나듯 동안되는 영험 있어
여든 노인 양빰이 도화처럼 붉어지네
내 사는 곳 유천(乳泉:石間水) 솟아
수벽탕 백수탕 그 물로 끓이었네
목멱산 앞 해옹에게 어이 갖다 드릴거나



李白云 玉泉眞公이 年八十에 顔色如桃李라 此茗香淸이 異干他하야 所以能還童 振枯而令人長壽也라 하니라
唐蘇 의 著 十六湯品에 第三曰 百壽湯이니 人過百忍하고 水逾十沸니라 或以 話阻하고 或以事廢에도 如取用之湯이면 已生性矣이라 敢問하노니 蒼顔之老 夫還少하고 執弓扶矢以取中乎아 還少雄 步以邁遠乎아 第八曰 秀碧湯이니 石凝天 地秀氣而賦形者也라 琢而爲器라도 秀猶在焉이니 其湯不良은 未之有也라 近酉堂 大爺 南過頭輪이라가 一宿紫芋山房할새 嘗其泉曰 味勝 酪이라 하니라

이백(李白)이 말하기를, "옥천진공(玉泉眞公)은 나이 여든에 얼굴빛이 복사꽃 오얏꽃처럼 불그스레하였다. 이 차의 맑은 향기가 다른 지방에 비해 특이한 까 닭에 동안(童顔)으로 다시 돌아오고 시든 나뭇잎이 되살아나듯 장수를 누리도록 만든 것이다."고 하였다.
당(唐) 소이(蘇 )의 저서 《16탕품(十六湯品》 제3은 백수탕(百壽湯)이니, 사 람은 백 번의 인내를 겪고 물은 열번 넘게 끓여야 한다. 혹 말더듬이나 반신불 수된 사람까지도 이 차를 마시면 본성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감히 묻거니와 흰 머리가 성성하고 얼굴빛이 창백한 노인이 다시 젊어져서, 활을 들어 화살을 쏘면 적중하고, 젊은이처럼 활보하여 먼길을 갈 수 있는 것일까? 제8은 수벽탕(秀碧 湯)이니, 돌은 천지(天地)의 수기(秀氣)가 엉겨 모여 형상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을 쪼아서 그릇을 만들어도 천지의 수기(秀氣)가 담겨 있으니, 그 탕(湯)이 불량함이 있을 수 없다. 얼마 전에 유당어른(酉堂大爺)께서 남쪽으로 두륜산을 지나는 길에 자우산방(紫芋山房:一枝庵)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유천(乳泉) 물을 마시고 "물맛이 소락( 酪)보다도 훨씬 좋구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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