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쟁점이 된 북핵, 계기와 의도는?
문경환 기자 | 기사입력 2026/06/23 [15:23]
■ 이란전쟁에서 참패한 미국이 세계의 관심을 북한으로 돌리려는 듯
■ 북한 비핵화 요구의 계기는 미중정상회담과 북중정상회담
■ 북한 비핵화 요구는 미국이 구상하는 한반도·대만 전쟁의 전조
이란전쟁 참패 후 미국의 시선이 북한으로 향하다
이란전쟁이 종전 양해각서 체결로 일단락되자, 미국의 전략적 관심이 빠르게 북한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유럽 순방 결과 브리핑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면서 자신이 올렸다고 먼저 얘길 하더라. 그러면서 북한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될 때가 됐다고 말씀하셨다”라고 소개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핵무기를 현실적으로 보유하기 이전 단계에서 뭔가 가능한 조치를 했어야 하는데 못 해서 아쉽다”라고 언급했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해결 방안이 마땅치 않아 고민인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이 동결→감축→폐기의 단계적 접근법을 설명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충분히 고민해 보겠다”라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이 북한으로 관심을 돌린다고 해서 북미대화가 성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이 상정하는 대화의 핵심 의제가 ‘비핵화’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핵문제는 대화의 의제가 될 수 없다고 못을 박은 상태다.
거기에 더해, 북한이 미국과 서둘러 대화에 나서야 할 현실적 유인도 마땅히 없다.
지난 북중정상회담을 통해 러시아에 이어 중국도 대북 제재 무력화에 사실상 동참하게 됐다.
미국 주요 언론조차 북한을 “지금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경제 성공담”으로 평가할 정도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기존 태도를 접고 비핵화 논의에 응할 이유는 없으며, 이는 단계적 접근이라는 방식으로 포장을 바꾼다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점을 미국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북한으로 관심을 돌리는 데는 다른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한다.
6월 들어 갑자기 쏟아진 비핵화 요구
최근 북핵 문제를 둘러싼 흐름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가 감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집권 초반,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지칭하며 비핵화 요구에서 한발 물러서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1월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나”라며 “그건 아주 엄연한 현실”이라고 인정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북한이 ‘비핵화를 요구하면 대화란 없다’는 원칙을 거듭 천명한 결과, 한미 양국도 한때 한 걸음 물러서는 자세를 취했던 것이다.
그런데 6월에 접어들면서 분위기가 돌변했다.
비핵화 요구가 곳곳에서 일제히 분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발단은 5월 14일 열린 미중정상회담이었다.
회담 직후 백악관이 공개한 공식 결과에는 한반도 관련 내용이 없었지만, 사흘 뒤인 17일 배포한 팩트시트에 “북한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를 확인했다”라는 문구가 추가됐다.
그러나 중국은 이를 인정하는 반응을 내놓지 않았고,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총무부장은 “상투적인 거짓 정보 유포 놀음에 지나지 않는다”라며 미국이 가짜뉴스를 퍼트렸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이를 보면, 미국이 미중정상회담 결과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북한 비핵화 문제를 쟁점으로 부각한 정황이 뚜렷하다.
6월 들어 본격적인 전선이 형성된 시점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평양을 방문한 8일이다.
8~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미일 확장억제대화(EDD)에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라는 성명이 나왔다.
성명에는 “양쪽 대표단은 중국의 급격하고 불투명한 핵무기 증강을 논의했으며 북한의 핵무기 추구가 종결된 사안이라는 러시아의 주장을 거부했다”라는 문구도 포함돼, 북·중·러 연대를 겨냥하는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9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에서 하워드 솔로몬 빈 주재 유엔 국제기구 미국 대사대리는 “우리는 북한의 도발을 저지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 여타 국가와 긴밀히 협의하고 있으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전념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10일 한-EU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재확인하고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상 핵보유국으로 결코 인정될 수 없다”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이재명 대통령이 유럽 순방 중 굳이 비핵화 이야기를 꺼내 북한을 자극하는 게 부자연스럽고 기존의 노선과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11일 서울에서 열린 제6차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 언론성명에는 지난해 12월 열린 제5차 회의 때와 달리 북한 비핵화 목표가 명시됐다.
12일에는 한·미·일 외교 당국자들이 일본 도쿄에서 만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이행 노력을 다시금 확인했다고 한다.
17일 프랑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발표한 ‘G7 정상들의 지정학적 현안에 대한 성명’에는 사전 의제에도 없던 한반도 문제가 주요하게 언급됐는데 여기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재천명한다”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이 성명에는 이재명 대통령도 초청국 정상 자격으로 이름을 올렸다.
18일 데이비드 윌레졸 미 국무부 한국·일본·몽골 담당 부차관보는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 전략산업 및 안보 포럼'에서 “북한 문제는 정책 우선순위 목록에서 매우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라면서 “어떤 행정부에서도 그러겠지만, 우리 행정부에서 이뤄지는 북한에 대한 논의는 비핵화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비핵화 요구의 본질: 전쟁의 전조인가
이러한 일련의 흐름 가운데는 연례적이고 통상적인 수준의 발언도 없지 않다.
그러나 불필요한 맥락에서 굳이 비핵화를 강조한 사례들은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미국이 의도적으로 이 문제를 쟁점화하려는 기획의 결과물로 읽힌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이 흐름의 계기와 시점이 미중정상회담 그리고 북중정상회담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중국을 통해 북미정상회담을 추진하다 실패하고, 북미대화를 활용한 북중 이간책도 실현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북중정상회담으로 양국 관계가 전략적으로 더 밀착하자, 미국이 구상하는 한반도·대만 전쟁 구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다급함이 작용했을 것이다.
미국이 북한 비핵화를 쟁점으로 밀어붙일 때 나타나는 작용은 세 가지다.
첫째, 북한이 반발함으로써 대화의 여지가 원천 차단된다.
둘째, 한국·일본·유럽 등 동맹을 반북 전선에 결속할 수 있으며, 특히 한국이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내세워 동맹 전선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셋째, 북한이 대화를 거부한다는 명분까지 더해 미국의 대북 침공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될 수 있다.
핵개발 의혹만으로도 이란을 침공한 것이 미국이다.
비핵화 거부를 침공의 구실로 삼으리라는 전망은 결코 비약이 아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15일 한겨레 칼럼에서 “미국이 조선[북한]의 핵무기 폐기에 진심으로 나올수록 우리의 이익과 안전도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라면서 “이제는 우리가 ‘비핵화 프레임’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라고 촉구했다.
미국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비핵화 소동에 휩쓸리지 않는 냉정한 판단력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