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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말씀]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6/12)

작성자저녁노을|작성시간26.06.11|조회수5 목록 댓글 0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6/12)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은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공경하며 그 마음을 본받고자 하는 날이다. 
이 대축일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다음 
금요일에 지내는데, 예수 성심이 성체성사와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예수 성심에 대한 공경은 중세 때 시작하여 점차 보편화되었다. 
1856년 비오 9세 교황 때 교회의 전례력에 도입되었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권고에 따라, 
1995년부터 해마다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에 
‘사제 성화의 날’을 지내고 있다. 
이날은 사제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복음 선포의 직무를 더욱
훌륭히 수행하는 가운데 완전한 성덕으로 나아가고자 다짐하는 날이다. 
또한 교회의 모든 사람이 사제직의 존귀함을 깨닫고 
사제들의 성화를 위하여 기도와 희생을 바치는 날이기도 하다.

오늘 전례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이며 사제 성화의 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의롭게 하십니다. 
사제들이,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찾고자 애쓰시는 예수님의 성심을 닮은 착한 목자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제1독서

<주님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시어 너희를 선택하셨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7,6-11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6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며,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선택하시어 땅 위에 있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너희를 당신 소유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7 주님께서 너희에게 마음을 주시고 너희를 선택하신 것은,
너희가 어느 민족보다 수가 많아서가 아니다.
사실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수가 가장 적다.
8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시어,
너희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시려고, 
강한 손으로 너희를 이끌어 내셔서, 종살이하던 집, 
이집트 임금 파라오의 손에서 너희를 구해 내셨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참하느님이시며,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진실하신 하느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10 또 당신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그를 멸망시키시어
직접 갚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 없이 직접 갚으신다.
11 그러므로 내가 오늘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명령하는
계명과 규정들과 법규들을 너희는 지켜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7-16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복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5-30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올리십니다. 
이 감사의 내용은 역설적입니다. 
하느님께서 어떤 이들에게는 “이것을”(마태 11,25) 감추시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공생활 안에서 이미 시작된 하늘 나라, 
곧 치유와 자비, 새로운 시대가 다가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 
세상을 맞이하는 것은 분명 낯선 일일 것입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11,25), 
곧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새로운 세상을 읽어 내지 못합니다.
켜켜이 쌓아 온 삶의 방식과 그에 따라 
이미 몸에 밴 자기만의 논리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철부지들”(11,25)이 그 세상과 가깝습니다. 
어린아이는 약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받아들이는 법을 본능적으로 압니다. 

이해가 아니라 신뢰가 먼저 일어나는 자리, 그곳이 철부지의 자리입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11,27). 
이는 단순히 권력 선언이 아닌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깊은 친교를 드러내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친교는 아들이 계시해 주려는 이에게만 열립니다. 
25절에 나오는 ‘드러내다’는 그리스 말에서 ‘계시’의 동사형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계시하시고자 하는 대상은 “철부지들”입니다. 
이들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서 밝히 드러나십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믿는 것은 더 많은 
지식을 가졌다거나 더 많이 노력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는다는 것은 관계의 문제로 보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아는 것은, 나아가 계시를 받아들이는 것은 
덧셈이 아니라 뺄셈으로 가능합니다. 
내 눈의 들보를 들어내 사람을, 세상을, 
그 고유함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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