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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칼럼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24.05.19)

작성자하늘민|작성시간24.05.18|조회수77 목록 댓글 0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수요일 임우택 권사의 소개와 대접(점심)으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을 방문하면서 깊은 울림이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5킬로도 안 되는 곳을 향하여 차 두 대에 12명이 나누어 타고 15분여 만에 도착하여 안내자의 인도로 2층 영상 실에 도착하였습니다. 영상 실에는 환영이라는 글과 함께이곳은 한국교회의 성지입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해 주십시오라는 글이 띠워져 있었고, 다른 4-5곳의 교회에서도 10여명 안팎의 인원과 외국인 한 팀도 눈에 보였습니다. 10시부터 시작한 영상은 20여 분간 성지 화하는 작업과 묘원을 세우게 된 이유와 안장된 선교사들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이어 다른 안내하시는 분을 따라 40여 분간 안장된 묘지를 다니면서 설명을 들었으며, 홀에서의 시간 등 1시간 20여분 동안이 큰 감동으로 다가 왔습니다.

 

선교사 묘원에는 구한말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친 외국인 선교사와 그의 가족 145명이 다른 이들 217명과 함께 안장 되어 있었고, 또 다른 분의 안내로 들어간 양화진 홀은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선교사들의 삶을 기리고 재조명하는 공간으로 그들은 어떤 이었으며, 왜 조선을 찾아 왔는지, 그리고 양화진은 어떻게 변해왔는지 등을 주제별로 소개해 주고 있었습니다. 이 지면에 묘지에 안장된 분들을 몇 몇 분 소개해 봅니다.

 

J.W.헤론 양화진에 최초로 안장된 의료 선교사.

H.G.아펜젤라 감리교 최초로 내한한 선교사로 한국근대교육과 감리교회의 초석을 놓은 선교사. 아들 내외와 딸이 안장됨.

H.G.언더우드 한국 개신교 선교의 개척자인 장로교 선교사. 자신과 아내를 비롯 47명이 안장.

E.T.베델 구한말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여 억눌린 한국인들의 대변인 역할. 37세에 별세.

R.A.하디 의료 선교사로 25세에 도착. 대부흥운동의 주역. 두 딸도 안장됨.

J.E.P.캠벨 한국 여성들을 위한 선교사. 배화학당과 종교교회, 자교교회 등을 세움.

H.B.헐버트 한국 사람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외국인으로 칭송받은 선교사.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 한국에 붇히고 싶다는 뜻대로 안장됨.

M.위더슨 한국 고아들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구세군 선교사.

S.F.무어 백정 전도자의 개척자, 백정 해방 운동의 조력자로 불리는 인물.

W.D.레이놀즈 성경번역에 헌신. 42년 동안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일에 헌신한 선교사.

O.R.에비슨 우리나라 근대의학 발전에 크게 공헌. 세브란스병원과 의학교를 설립. 42년간 선교.

소다 가이치 일본인으로 1921년부터 해방 될 때까지 천명 이상의 고아들을 돌보며 복음전함.

 

조용히 둘러보면서 대한민국은 큰 축복을 받은 나라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묘원이 서울중심에 세워진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성경이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부터 밖에서 번역이 되어 들어왔고, 이 땅의 불쌍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복음을 들고 의사, 교육자 등의 높은 신분으로 자신이나 가정, 자녀도 돌보지 않고 당시 가장 생소한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낯 설은 곳에 찾아와 헌신과 순교적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복음으로 큰 복을 받고 누리게 하였으니 우리나라는 복 받은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땅에서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에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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