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산을 삶으로 가져가라
어느 교회에서 예배에 참여하여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교회 앞에서 버스를 타고 돌아가다가 버스 안에서 말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이유는 복잡한 차에서 발등을 밟고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다는 것입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입에 거품을 물고 싸우는 것을 지켜본 운전기사가 교인들을 향해‘하나님은 교회에만 있었구나’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은혜 받은 성도들이 돌아가는 버스 안에 하나님이 계셨다면, 교회에서처럼 찬송과 기쁨이 있고 양보와 이해, 협동이 있어야 할 터인데, 은혜만 받고 하나님은 두고 왔기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은 베들레헴의 어느 마구간이요, 누우신 곳은 구유였습니다. 냄새 나고 어둡고 더러운 곳이라도 주님이계시니 하늘의 천군천사가 찾아 왔고, 동방에서는 박사들이 찾아왔으며, 들에 있던 목자들이 찾아와서 천국을 이루었습니다.“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 디나 하늘나라”(찬송가 438장 3절)
어둠속에도 주님이 계시면 밝아집니다. 슬픔은 기쁨으로 변하고, 절망은 소망으로 변하며, 원망이 감사로 바뀌니 예수님 계신 곳이 천국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주님이 은혜 받던 집회에만 있고 삶의 현장에는 없기 때문에 은혜 받으려면 교회로 찾아 가서 집회에 참석해야만 한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시몬 베드로가“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신앙고백을 한 뒤 엿새가 지난 다음, 세 제자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서 빛나는 모습으로 변화되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너무나 황홀해서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기에 초막을 짓고 살자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내려오셨습니다. 산 밑에서 주님은 귀신에 사로잡혀 신음하는 사람들을 고쳐주셨고, 당황하는 제자들을 위로 하셨으며, 믿음 없는 자에게 큰 믿음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오히려 변화산 위에서는 아무 일도 행하시지 않고 변화 산의 능력을 산 밑에서 행하셨던 것입니다.
능력을 주시는 주님을 산 위에 두고 오는 사람은 버스에서의 싸움은 시작에 불과 할 것입니다. 견디지 못하고 또 다시 산 위에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변화 산의 주님을 삶의 현장으로 모시고 내려 올 때까지는 이 악순환이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다짐과 각오와 결심을 하게 됩니다. 바라기는 무엇보다도 금년 한 해를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주님만 모시고 동행함으로 승리하는 삶이되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