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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wa의 잠언

[예수님의 비유 (마태 13:31-35) - 겨자씨와 누룩 비유(쌍둥이 비유)] - 김명호교수(성경언어훈련학교. BLTS)

작성자fewa99|작성시간18.10.04|조회수376 목록 댓글 0

<하나님 나라에 대한 주님의 가르치심>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천국”, “하나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 말씀을 보면우리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실 때는항상 비유로 말씀을 하셨습니다.(34v)

이렇게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잘 깨닫고깨닫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깨닫고 마음에 새길 뿐 만 아니라순종하는 삶을 통해하나님 나라가 저와 여러분 안에 실제가 되고더 풍성히 누리도록 하기 위해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종말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복음을 향해 목마른 자들에게 진리가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그 진리로 인해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그렇게 비유로 말씀을 하셨습니다우리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0:10절에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런데 예수님의 여러 비유들은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실제 땅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그래서 한 번이라도 이스라엘을 방문해 실제 그 땅을 보고 또 그 문화를 경험한 사람은성경과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됩니다때로 도움을 넘어 우리가 놓치기 쉬운 중요한 진리의 교훈을 발견 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예수님의 여러 비유는 공관복음서에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요한복음에는 전혀 기록이 없습니다상대적으로 마가복음 보다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많이 기록되어 있고이 세 복음서 내에서도 성경을 기록한 저자 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의 비유를 연구했던 학자들의 말을 빌리자면

 

마태마가는 꾸밈없이 진솔하게 보고그대로 사실적으로 기록한 반면누가는 생동감 있게 묘사를 했는데우리가 사진으로 비교해서 말한다면마태나 마가의 비유는 마치 흑백 사진을 보는 듯하고누가의 비유는 칼라 사진을 보는 것 같다.(J. Macarthur)고 합니다.

 

 이 시간 우리 는 예수님의 비유를 복음서끼리 서로 비교해 가면서 볼 텐데우리가 자주 들어서 익히 아는 “아 그 비유그거 이런 의미 아니야!” 이렇게 말할 정도로 잘 아는그러나 어쩌면 중요한 교훈을 놓치고 있는,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를 함께 살펴보면서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본문 비교~

 

먼저마가 복음부터 보겠습니다.

 

마가 4:30-32,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마태 13:31-32,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마가복음 보다 짧고 단순하게 묘사를 했습니다).

 33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누가 13:18-19,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20-21.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대충 읽으면 다 같은 것 같지만자세히 보면 세 복음서에 나타난 차이점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우선 비유를 말씀하면서 서두에 마가는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비유할까?" 누가는 하나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하나님 나라로 표현을 했지만마태는 하나님” 대신 하늘을 사용하여 하늘나라” “천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우리 안에 질문이 생기겠지요왜 그랬을까바로 그것은 독자의 대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 (천국)는 대부분 마태 복음에서만 사용되고 있는데당시 마태 복음의 독자들이 유대 그리스도인들이였음을마태가 염두에 두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왜냐하면유대인들은 당시에 하나님이라는 신명(神名), 하나님의 이름을 읽는 것을 매우 꺼려했기 때문입니다.

 

 출 20:7 말씀을 보면십계명에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말씀이 있는데실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이름을 오랜 세월 동안 읽지도 부르지도 않아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는지 조차도자기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름도 잊어버렸습니다우리 성경에 번역된 여호와”(יהוה)란 이름이 바로 그 이름에 해당 됩니다우리는 자연스럽게 여호와라 읽지만유대인들은 그렇게 읽지 않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면아도나이 바꾸어 읽습니다이름을 잃어 버려서 그렇게 읽기도 하지만보다 중요한 이유는 바로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 때문이었습니다하나님이라는 이름도 히브리어로 엘로 힘인데지금도 유대인들은 엘로 킴이라, “을 으로 바꾸어 읽습니다심지어 영어로도종교인들은 하나님을 “God”라 쓰지 않고 “G-d”라고 쓴 것을 보면마태복음에 하나님 나라라고 쓰지 않고, “하늘나라라고 바 꾸어 기록한 것을 충분히 이해 할 수가 있습니다그래서 마태는 하나님 나라를 부드럽고 완곡한 표현으로, “하늘로 바꾸어서 하늘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그렇다고 해서 두 단어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나 하늘 나라는 동일하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천국하나님 나라를 알려주기 위해서 비유를 말씀하셨는데바로 그 비유는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다하나님 나라는 누룩과 같다,] 그렇게 표현을 하셨습니다.

 

 마가마태는 바로 그 겨자씨 한 알이모든 씨보다 작은 씨앗이라 말했지만누가는 마태나 마가가 사용한 표현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겨자씨가 식물의 씨앗 중 가장 작은 씨앗은 아니었지만어떤 작은 것을 설명할 때 격언처럼 겨자씨에 견주어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우리가 마태 17:20절 말씀을 보면 겨자씨가 작다고 하는, 같은 문맥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한 번 볼까요?

 

 이르시되 너희가 귀신들린 아이를 고칠 수 없음은너희 믿음이 작은까닭이니라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어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제자들의 능력 없음을 안타까워하시면서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하신 말씀은문맥에서 분명히 그들의 작은 믿음을 빗대어제자들에게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도 없었음을 꾸짖는 말씀입니다.

 

 마가는 겨자씨가 땅 위에 심겼다고 말하고마태는 자기 밭에 뿌리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그냥 땅 위에 심겨진 것하고 소유권이 분명한 자기 땅내 땅 위에 심겨진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좀 더 구체적으로 아무 땅이나 아무 밭이 아닌내 땅이어도 자기 채소밭이라 자상하게 표현을 했습니다마태의 자기 밭이라는 표현보다 훨씬 애착이 가는 표현입니다확실히 마태나 마가보다는 누가의 표현이 좀 회화적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채소밭에 그것이 심기어졌다면그것을 심은 주인이 어떻게 했을까어떻게 그것을 보살폈을까주인의 마음을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또 본문을 보면 마가는 누가 심었는지 기록을 안 했지만마태와 누가는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씨앗이라고 기록을 했습니다

씨앗이 저절로 떨어지지 않기에모두 다 어떤 사람이 의도적으로 씨앗을 갖다 심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누가복음의 기록을 보았을 때 씨앗을 갖다 심은 사람그 주인의 마음 안에 이 겨자씨가 항상 있겠구나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농사를 지어 본 사람이면또 농사는 아니어도 조그마한 땅이 있어 작물을 가꾸어 본 사람이면심지어는 땅이 없어 베란다 화분에다 상추나 고추가지나 깻잎을 가꿔 보신 경험이라도 있으시면이 겨자씨를 갖다 심은 사람의 이 마음을 조금은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겨자씨 한 알을 심은 결과에 대해서는 “자란 후에 커서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특별한 차이 없이 세 복음서에 적고 있습니다우리가 짧은 본문을 쭉 살펴보았는데역시 누가의 기록이 좀 자상하고 아기자기한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가장 짧은 비유인 누룩 비유는마가복음에는 없고 마태와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두 복음서에 나타난누룩 비유의 차이점은 없습니다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고 동일하게누룩과 가루 서 말을 대조하여 비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자비유의 대상이 되는겨자씨와 누룩여러분 누룩은특히 주부들은 다 아시지요제가 어렸을 때는저희는 빵 문화가 아니어서 누룩을 넣어서 빵을 만드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술 문화여서 집에서 주로 술을 만들었는데발효시키기 위해서 어머니께서 한 말이 더 들어가는 큰 항아리에 누룩(덩어리)을 넣는 것을 종종 보았습니다물론 고대 성경 시대와 지금 누룩의 형태가 다르겠지만 슈퍼에 가면 누룩(이스트)을 팝니다누룩은 한국에서 볼 수 있지요그러나 겨자씨는 한국에서 보기가 어렵습니다그래서 우리가 보기 어려운 겨자씨 비유를 중심으로 말씀을 보겠습니다.

 

~겨자씨란?

 

 자 그렇다면그 겨자씨는 무엇인가이스라엘을 가보지 않는 사람은 과연 이 겨자씨가 어떻게 생겼는지이 겨자씨를 굉장히 보고 싶어 합니다아마도 이스라엘에 오는 성지 순례객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첫 번째 식물이 있다면,겨자씨일 것입니다겨자씨는 헬라어 시나피”(σίναπι)이고히브리어는 하르달”(חַרְדָּל)이라고 하는데검은 겨자와 흰색 겨자(חַרְדָּל샤코르/라반) 두 종류가 있습니다겨자씨는우리 들깨 씨앗 같은 아주 작은 씨앗입니다어디에서 많이 파는가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가 열렸던 교회 앞에서 팝니다.

 

 사실 이 겨자는 이스라엘의 일년생 풀로볼품없는 잡초라고 생각하면 됩니다이스라엘 전역에서 볼 수 있지만 특히 이스라엘 갈릴리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방에 흐드러지게 널려 있는 풀로 3월 중순에서 4월 초에 노란 꽃이 만개하는마치 제주도 유채꽃 풍경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겨자는 우리가 먹는 채소갓과 거의 비슷해서 저희는 IMF어려운 때 정말 겨자 풀을 많이 먹었습니다이스라엘 사람들은 팔지도 않고먹지도 않습니다

겨자는 1년생 흔한 풀로 어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말씀 드린 대로 잡초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2월에 겨자 풀을 보면 그 어느 누구도 그 풀이 자라 나무가 될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설령 가르쳐주어도 관심도 없고 마음에 두지도 않고한 번 훌쩍 보고 지나갑니다또 관심이 있는 어떤 사람은, “아이고저게 겨자씨 나무라고?” 실망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그리고 3-4월에 보면 광야에 피어나는 노란 꽃의 아름다움 때문에 눈에는 들어오겠지요

그러나 그 이후에 겨자가 자라 커서 나무가 되어도감동이 되고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겨자 나무는 말씀 드린 대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 일년 생 겨자 풀이 자라서 어떻게 나무가 되는가?~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새가 깃들일 정도로 커서 나무가 되니 참 신기합니다우리가 생각을 달리해야 할 것이 있는데우리가 보는 풀과 나무의 개념과 유대인들이 보는 풀과 나무의 개념이 다릅니다유대인들은 싹이 나와서 바로 잎이 나면그것은 히브리어로 체맠” “데세, 풀이라 보았고지면에서 대가 나오고 가지가 생기고 잎이 나오면그것은 히브리어로 에츠,나무로 불렀습니다우리도 나무가 아닌 년생 식물들예를 들어 고추를 고추나무로토마토를 토마토 나무로 부릅니다고추가 식물인가요? 나무인가요사실은 나무가 아니지요? 1년 생은 아니지만 대나무 아시지요, “가 나무인가요


 고산 윤선도의 대나무에 빗대어 절개를 읊은 유명한 한시가 있습니다.풀도 아니고 나무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그리 시켰으며 속은 어이하여 비어 있는가저리하고도 사계절 늘 푸르니 

실제로 하르달겨자씨 나무는 군집을 이루어서 자라는데 거의 2m.이상 자라고어떤 것은 3m.까지 자라 서로 얽혀 군집을 이루어 있어서 새가 와서 깃들인다고 합니다

저는 이스라엘 살면서광야가 있는 곳(Jerusalem/Beersheva)에서 살았기 때문에새가 깃들여 있는 그렇게 큰 겨자 나무는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만약 그 시기에 갈릴리에 살았다면또 특별히 시간을 내어서 갔다면 보았을 것입니다어느 분이 사진을 찍어 놓은 것을 가져왔습니다. (문장 끝에~)

 

 ~겨자씨 비유의 의미~

 

자 그렇다면 겨자씨의 비유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대부분 겨자씨 비유를 사람들은 이렇게이해를 합니다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이는 모든 씨보다작은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커서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겨자씨가 모든 씨보다 작다는 것과 그것이 싹을 내서 자라면 풀이 되고 심지어는 3m. 넘게 커서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앉는다는 점에 주목을 합니다겨자씨 비유를 대단한 비유로겨자씨를 특별한 것으로 보고 우리 식으로 이해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이런 기대가 있기에 도대체 겨자씨가 과연 어떻게 생겼는가겨자씨를 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바로 겨자씨 비유를 씨의 작음과 풀이 나무로 자란 크기에 강조점을 두면서 그 결과에만 주목하여하나님 나라는 양적으로 커져가는 것에주로 외적인 큰 성장에 관심을 두고 이해하는 것입니다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겨자씨 큰 나무의 가지에 깃들이게 되는 모습만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물론 틀린 것은 아닙니다하나님 나라는 자라서 성장합니다하나님의 나라는 성장해야 합니다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리로 와서 평안과 쉼을 누리고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속성입니다그러나 많은 사람들 이 이해한 것처럼겨자씨나 누룩의 비유의 목적이 이것만이 다라면더 좋은 대상을 가지고 와서 비유로 들어 예수님께서 설명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예를 들어 에스겔서를 보겠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우뚝 솟은 산에 심되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요 각종 새가 그 아래에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살리라 (겔 17: 22-23)

 

얼마나 비유에 적합하고 좋은 말씀입니까!

 

 우리가 결과만 본다면 겨자씨보다 훨씬 좋은 비유가 될 수 있습니다백향목이 얼마나 멋있는 나무인가요겨자씨하고 비교할 수도될 수도 없지요!

그래서 카슨(D.A. Carson)이 겨자씨 비유에서 하나님이 정말 큰 것을 중시하시는 것만이 전부로 여기셨다면 세상에서 가장 작게 여겨지는 겨자씨를 예로 절대 택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커멘트를 하였습니다.

 

 만약우리가 예수님의 비유에서보다 중요한 초점을 놓치고한 방향만을 생각을 한다면현재는 미약하지만 그러나 나중은 그 끝은결과는 창대하리라마치 욥기 8:7에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고 욥의 친구가 말했던 것처럼실제 우리의 삶에 적용에 있어서 이렇게 만 기대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런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마치 끝이 크고 잘되는 것만이 다 성공인 것처럼 말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는 문제가 있는 것인가요하나님 나라가 아닌가요

말씀 준비하면서 어느 목사님의 고백이 생각이 났습니다주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핍박 받고말씀대로 사업하다 망하고말씀대로 하다가 문 닫는 교회 좀 보았으면 좋겠다마치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말씀처럼 말입니다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1:10)

 

 ~겨자씨 비유의 보다 중요한 의미~

 

  우리는 예수님의 매우 심플한 비유를 보면서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해 온 것 보다 더 중요한 교훈이 그 안에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이 교훈은이스라엘이라는 땅에서 일어나는일상생활의 모습을 잘 주의하여 볼 때 발견 할 수 있습니다바로 이 점을 놓치면 겨자씨와 누룩 비유의 참 의미를 놓칠 수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부분을 생각해보고 싶습니다커지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다 라는 사실을 나누고 싶습니다이 비유 안에는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나누고 싶습니다.

 

 마태 13:31-32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우리는 본문을 대부분 겨자씨 한 알을 두고 뒷부분에 강조를 두어서 읽었습니다그러나 그렇게 읽는 패턴을 바꾸어서거꾸로 앞부분을 강조해서 보면서당시 이스라엘 유대인의 농경 생활을 비교해 살펴보면 하나님 나라의 속성이 더 부각될 수 있습니다하나님 나라는 바로 이런 거구나와우정말 신기하네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마태 13:31절 만 다시 읽겠습니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겨자씨 한 알인데그것이 자라 나무가 된 겨자가 아니라 그 이전에 어느 누군가가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이 겨자씨를 따서 자기 집 채소밭으로 갖다가 심은 이 앞부분을 강조해서 보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 채소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 문장에 머물러서다음으로 가지 말고전에는 넘어 갔는데넘어가지 말고 생각을 해봅시다.

'천국은 마치' 직유 표현인데요저는 가정법이 스며들어 있는 직유로 보고 생각을 하고 싶습니다가정법은 언제 사용하나요가능성이 희박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 가정법입니다다시 말해일단은 이스라엘이라는 배경을 고려하면 자기 채소 밭에 겨자씨를 갖다가 심을 사람이 거의 없다는 말입니다왜냐하면이스라엘 사방 지천에 널리 흐드러져 있는 식물이 겨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겨자가 사방에 지천인데누가 그것을 자기 집 채소밭에 땅을 애써 파서 수고해 심겠느냐이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쉽습니다우리나라 사방에 지천인 게 뭐지요쑥입니다누가 쑥을 갔다가 밭에 심을 사람이 있습니까만약 필요하면나가서 자연산 좋은 쑥을 얼마나 캘 수 있는데…. 마찬가지입니다겨자 풀이 필요하면, 또 겨자씨가 필요하면 나가기만 하면 바로 얻을 수 있는데 누가 그것을 자기 집 채소밭에 애써 수고해서 심겠느냐 하는 것입니다겨자는 일종의 잡초라고 그랬지요먹지도 않을 뿐 아니라잡초는 있으면 오히려 뽑아주어야 할 성가신 풀입니다정원에 같다가 심어 놓으면 문제가 되고 일이 더 많습니다저는 이스라엘에 11년 살면서 정원에 하르달이 있는 걸 본적이 없습니다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 일을 한다그 일을 행한 사람이면… 좀 특이하다 이거죠왜 저런 어리석은 바보 같은 행동을 하지보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나가면 지천인데 왜 저런 수고를 하냐 이거죠.

 

 그런데 우리 주님은 우리의 상식을 넘어서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 같다고 말합니다그리고 그런 일을 하시는 분이 자신이라고 비유로 말씀하십니다여기서 어떤 사람은 주님을 의미하겠지요우리 하나님은 밖에 있는 겨자씨를자신의 집 채소밭으로 가져와 심으신 분이십니다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지요우리의 상식이나 지혜를 초월하여 일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당시 사람들의 생각에서 보았을 때 참 어처구니없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마치 바보 같은 행동을 하시는 분이십니다우리 하나님은 자기 채소밭에그것도 겨자씨 한 알을 갖다가 심으신 것일까나가면 사방에 지천인데… 왜 그 분은 그렇게 행동을 하시는 것일까그리고 이것을 하나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왜 그러실까요우리도 사실 다 이해할 수는 없지요.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겨자씨 한 알은 자신의 의도와는 아무 상관없이 주인의 밭에 심기어져 있지만공간을 달리하여 허허 벌판 광야에서 주인의 아름다운 정원에 옮겨 심기어져 있다는 것은분명 주인으로부터 은혜를 입었음이 확실합니다군집을 이룬셀 수 없는 수많은 겨자씨들 가운데 택함을 받아 주인의 아름다운 정원에 심기어진 한 알의 겨자씨는주인으로부터 특별한 보호와 사랑을 받으며 자랄 것입니다구약의 이스라엘처럼 말입니다.

 

출 19:4-6.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갈릴리 위쪽, 제 2의 맛사다 '감라'날개로(날개 위로)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벧전 2:9-10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우리가 읽은 이 두 본문 가운데 나타난중요한 단어가 하나 있는데출애굽기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을 잘 듣고 언약을 지키면 “내 소유가 될 것이다베드로전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얻은 백성들을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 말하고 있습니다같은 말이지요. 소유라는 말은히브리어로, “쎄굴라라는 말입니다.

 "내 소유그의 소유하나님의 소유로 표현된 히브리어 쎄굴라굉장히 귀하고 신학적으로 중요한 단어입니다.해석하면하나님의 너무 귀한 값진 보물, “PRECIOUS TREASURE”, 하나님의 소유가운데 하나님의 재산 보물1

란 뜻입니다우리 하나님에게 그의 은혜로 택함을 받은 저와 여러분이 그런 존재입니다.

 

겨자씨는말할 수 없는 한량없는 은혜를 하나님으로부터 입은 거죠아멘!

 

 오늘 겨자씨 비유에 묘사된 하나님의 이와 같은 행동은우리 편에서 정말 특별한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정말 은혜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입니다사방 지천에 널리 흩어져 있는 셀 수없는 수많은 겨자씨들 가운데그 중에서 한 알을 따다가 밭을 파고 정성스럽게 심으셨다니찬송가 가사처럼 '웬 은혜'가 아닌가요사람들의 눈에 띄지도 않을 잡초 같은 나를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셀 수 없는 수많은 잡초가운데볼품없는 나를 특별히 택하신이 하나님의 은혜야 말로가장 중요한 하나님 나라의 속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를 잘 기억해야 합니다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지독생자이신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죄인 된 나를 흑암의 나라에서 구원하셨는데은혜를 잊어버릴 수도 그 은혜를 잊고 돌아설 수도 없습니다자기 아들 내어주신 십자가의 사랑값으로 계산될 수 없는 이 선물이바로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이 은혜에서 시작됩니다그래서 이 은혜를 잊어버리는 순간 하나님 나라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은빼시?” '하나님 나라는 은혜 빼면 시체'입니다겨자씨가 겨자 나무가 될 수 있었던 것은어떤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었기 때문입니다긍휼히 여기고 심은 은혜가 주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어떤 사람의 어리석은 행동이 아니었다면하나님께서 머리 굴려서될 성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고이리 계산하고 저리 계산해 위 아래로 훑어보고, '아이고 너는 안 되겠다야,' 이렇게 우리를 골라서 택했다면겨자씨가 절대 겨자 나무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비유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바로 하나님의 바보스런우리에게는 은혜로운 주권적인 그 분의 행동에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밖에 지천 인 겨자씨 한 알을 같다가 심은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되며군집을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데 저걸 하나만 갖다가 달랑 심어놓았으니 그게 커도 가늘어서 넘어지기 쉽지제대로 지탱하기도 힘들지 않겠습니까

자라나 커서 나무가 되어 가지 위에 새가 깃들을 수 있을까요그 특성상 참 가능성이 거의 희박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주권적인 은혜 안에 있기에하나님의 인자한 돌보심으로 말미암아 싹을 내고대를 내고가지를 내고자라나 커서마침내 결국은 공중의 새들이 와서 앉아 쉼을 누립니다.

 

 우리는 이런 비유를 묵상하면저렇게도 하나님이 일하시는데와우 하나님 나라가 저런 것인가 보네정말 은혜네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 깊은 곳에서 정말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지만, 100% 불가능하지만주님이 하셨습니다, God has done it, 주님이 하십니다주님이 하실 것입니다이런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가능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경험하면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순종의 자리에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죄송하지만바보 같은 하나님, 어리석은 것만 같은 우리 하나님을 닮아가고세상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산 자로진짜 바보로은혜 입은 자로순도 100%의 믿음으로 살아가고 싶은 것입니다


 저도 말씀을 준비하고 말씀 앞에 먼저 서면서주님 앞에 섰다고 했지만그 동안의 삶을 돌아보니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주님을 신뢰하며 정말 믿음으로 하기 보다는 나의 어떠함으로 나의 최선의 열심으로 달려온 제 모습이 어찌나 부끄럽든지목사인 저로서 참 회개가 되고 이제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 입은 자답게 우리 하나님처럼 정말 바보로,믿음으로살아가야겠구나다시 제 자신을 돌아보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비유는다음 쌍둥이 비유인 누룩 비유에서이 비유가 바로 이런 의미였구나확실한 그 증거를 얻습니다

33절을 볼까요.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σάτον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누룩 비유도 겨자씨와 같이 일반적으로 이해하기로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적은 누룩이 밀가루 반죽 덩어리와 섞어졌을 때 결과로 나타나는 그 영향력은 대단한 것으로 해석했습니다여기서 가루 서 말은 적은 양이 아니라 족히150명 이상의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큰 양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누룩을가루 서 말이 아니라 그 이상의 양도 발효시킬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성을 가진 의미로 이해하고이 비유를 그냥 의심 없이 받아들이지만, 사실 가루 서 말에 이 많은 양의 밀가루에 적은 누룩을 넣어 발효를 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 누룩의 적음누룩의 양을 여기서는 정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지만분명 단수(ζύμη)로 기록되어 있고겨자씨 한 알과 병행되고 있어서문맥이 적음을 의미하기에사실 그 누룩의 크기로는 그 많은 양을 발효시키는 것이 불가능하였습니다.

 (2) 누룩의 발효 효과성경 시대에는 먹다 남은 빵 조각을 이용하여 누룩을 만들었기에 누룩이 정상적으로 발효되기 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당시 유대 문헌인 미쉬나라고 하는 자료에 보면약 일정도걸어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를 왕복하는 시간으로나와 있습니다누룩의 발효 효과가 느린 것이지요그런데 서 말이나 되는 그 많은 양의 밀가루에 작은 누룩으로 빵을 만든다는 것은사실 완전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비유를 말씀하셨을때 듣는 사람은 이상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말도 안 되는 저런 일을 누가 하지가루 서 말에 그 작은 누룩을 넣어 도대체 어떻게 한단 말인가되지도 않을 일을겨자씨 보다 더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이런 일은 정상적인 여인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만약에 그렇게 한다면 그 여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주부로서 초자일 것입니다.

 

 유대적인 문화 배경에서 보면, 유대 배경이 아니라 그냥 생각해도 이 일을 행한 여인은 분명 어리석은 여인입니다

상식을 벗어나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온 동네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고 이혼 사유에 해당되었습니다그래서 거의가 아니고 완전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어찌된 일인지 이 일을 하나님의 나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여러분 누가 맞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맞습니까우리의 통박이 맞습니까우리가 이스라엘의 생활 풍습을 이해하고 좀 더 생각해본다면 비유의 의미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하나님 나라의 확장성이 맞는 말이지만그 너머에는 겨자씨 한 알을 가져다 자기 채소밭에 심으시고또 가루 서 말에 작은 누룩을 넣으신 은혜의 주님이 계신 것입니다겨자씨 한 알을 누구도 자기 밭에 심는 사람이 없지만가루 서 말에 적은 누룩을 넣어 발효시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그러나 그 일을 주님이 행하셨다면 우리의 어떠함에 상관없이 주님이 행하신 그 일이 옳고그 행동을 통해 주님은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나가는 말~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이런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하나님 나라의 산 증인들을 종종 봅니다작은 겨자씨 한 알이지만비록 적은 누룩이지만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가 어떠한 은혜인지 알기에 은혜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음을 고백하며 은혜를 붙들며 살아가는 믿음의 산 증인들이 우리 주위에는 있습니다저는 가까이서 함께 하는저희 사역의 현장에서 이 시대에말씀대로 살고 싶어서 몸부림치며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 완성을 꿈꾸며주님이 오시는 그 날을 사모하며주님이 전부가 되어복음이면 충분하다고 외치며 살아가는 믿음의 동역자들의 모습을 보면정말 하나님이 하시는구나은혜구나하나님의 은혜의 장중에 붙들린 바가 되면하나님이 저렇게도 일하시는구나얼마나 감동적이고 힘이 되고 소망이 되는지 우리 주님의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우리에게 여전히 오늘도 변함없이 필요한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복음성가 가사처럼 말입니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호흡마저도 다 주의 것이니 세상 평안과 위로 내게 없어도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호흡마저도 다 주의 것이니 세상 평안과 위로 내게 없어도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크신 계획 다 볼 수도 없고 작은 고난에 지쳐도 주께 묶인 나의 모든 삶 버티고 견디게 하시네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나의 모든 것 다 주께 맡기니 참된 평안과 위로 내게 주신 주 예수 오직 예수뿐 이네.”

 

여러분월드컵에서 2006 년에 우리 대한민국이 4강까지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월드컵을 보면서 모두가 설마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설마가 실력인지홈그라운드 이점인지응원의 힘인지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도의 응답인지아무튼 기대를 넘어 4강에 오르는 놀라운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설마 어떻게 될까?”가 진짜 되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저 일이 어떻게 잘 될까혹시나 실패하지 않을까?” “마치 불가능할 것 같은 역사가 사람의 생각을 초월하여그 분의 은혜로 인하여 확실히 되는 역사입니다.

 

 여러분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어떠함을 드러내고 입증하는 역사가 아닙니다만약 겨자씨 비유에서 하나님 나라에 심기어진 겨자씨 한 알을새들이 깃들일 수 있는 큰 나무로 만 본다면어쩌면 겨자씨 비유의 진정한 의미가 없지 않을까 저는 생각을 합니다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신실한 은혜가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보잘 것 없고 연약한 한 죄인인 겨자씨와 누룩 같은 인간 위에, 끝의 크기에 상관없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펼쳐지는지를 보여주는 주님의 은혜의 역사라고 말해야 옳을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그의 나라에 들어가 여기에 지금 이렇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그 분의 은혜로 거룩한 교회가 된 나를세상의 눈으로 세상의 기본 상식을 가지고 아무리 보아도 설명할 수 없고내가 나를 보아도내가 누구인지 너무 잘 알기에 놀랄 수밖에 없는정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 바보스러운 우리 하나님은 한없는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다이 은혜의 하나님이 여러분을 붙드시고, 평생 이끌고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성경 말씀 몇 구절을 읽고 말씀을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딤후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골 1: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아래에서 겨자씨 사진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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