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뢰아가 사용하는 <하나님의 의도>라는 말은 베델성서연구 시리즈 구약편 제2과 제목을 모방한 것이다.
<베델성서연구 구약편 제2과 하나님의 의도>
1959년 미국 위스컨신 베델 루터교회 담임목사 할레이 스위감 박사가 시작한 베델성서연구는 1974년부터 한국베델성서연구원이란 이름으로 시작하였다. 필자는 고등학생 시절인 1974년 김기동씨가 베델성서를 공부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김씨는 베델성서연구에서 많은 것들을 모방하여 베뢰아를 창립하였는데 베뢰아 수료식 때 입는 가운과 모자 역시 베델성서연구 수료식을 모방한 것이다.
베델성서연구원 수료식 장면
오늘날 김씨는 자신이 소위 '광시체험'을 통해 하늘에 번쩍이는 빛을 보면서 하나님의 의도를 깨달았다고 말하는데 사실 이것은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1976년 장신대 신학생들을 중심으로 베뢰아를 창립할 당시에는 베뢰아 강의에
<하나님의 의도>라는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의도>라는 말은 1991년 베뢰아 사범반이 만들어지면서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말이다.
1975년쯤 장신대 신학생들은 매주 토요일 아침 10시경 김씨 집에 모여 성경을 공부하였다. 필자는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으며, 사택에 놀러갔다가 신풍시장에서 튀김과 음료수를 사다 주는 심부름을 한 적이 있었다.
필자가 대전 침례신학대학에 입학한 1976년, 성락교회 청년관 지하에서 베뢰아 창립식이 있었으며, 김씨 집에서 공부하던 신학생들과 여기에 일반 성도였던 한만명, 이명범 등 성락교회 집사들이 함께 참여하여 성가대석에 앉아 2시간 가량 베뢰아를 공부했다. 당시 필자는 성락교회 교육 전도사였기 때문에 1기 베뢰아 수강생들의 학적부를 관리하면서 함께 베뢰아를 수강하였고, 제2기로 수료하였다. 베뢰아 1기부터 20기까지 모든 수강생들의 입학과 수료는 필자의 손으로 진행된 것이다.
베뢰아 아카데미 1기 수료식/뒤에 보이는 현수막은 필자가 만들어 붙인 것이다.
이렇게 1기부터 20기까지 모든 베뢰아 강의를 수강했기 때문에 베뢰아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소상히 알고 있다. 평신도들은 6개월 과정으로 <일반 연구과>라고 하여 1기를 수료한 한만영씨가 가르쳤고, 목회자들은 <본연구과>라고 하여 김씨가 매주 토요일 강의했다. 본연구과는 교회에서 공부했지만 일반 연구과는 고속터미날 근처에 있는 빌딩을 임대하여 한만명씨가 강의하였으며, 여의도에서는 강성기(여)씨가 강의했다.
베뢰아 계보
1976년 창립된 베뢰아 아카데미는 많은 수강생을 배출하였다. 위 계보는 베뢰아 수강생들의 학적부를 관리했던 필자가 만든 것으로 지난 12년 동안 미주 베뢰아 이단세미나를 인도하면서 공개한 것이다.
김기동은 이용도와 위트니스 리의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한다. 33세에 요절한 감리교 목사 시무언(示無言) 이용도 목사의 호(號)를 따서 자신은 시무언(視無言)으로 짓고, 위트니스 리의 양태론을 그대로 모방하였다.
김기동씨는 당시 성락교회 장로였던 한만영씨의 처남이며, LA 세계아가페선교교회(담임 김요한 목사) 장로였던 김광신씨에게 LA에 직접 가서 베뢰아를 가르쳤다. 김광신 장로는 서울에서 목사안수를 받았고(필자가 직접 가서 김기동씨의 축하메시지를 전함) LA 은혜한인장로교회를 개척하였다. 현재 필자가 살고 있는 가까운 동네에 은혜교회가 있는데, 김광신씨는 이미 은퇴하였고 한기홍 목사가 담임하고 있다.
이초석(본명 이춘석)씨는 한만명씨가 고속터미널 근처에서 베뢰아를 강의하고 있을 무렵 그에게 베뢰아를 배웠던 사람이다. 원래 학원사업을 하던 자인데 목사안수를 받고 현재 활동 중이며, 필자도 개인적으로 아는 인물이다. 이용도, 김기동, 한만영, 이초석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살펴보았다. 다음 글에서 그 나머지 인물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베뢰아 아카데미’ (2) 2018. 2. 10.
1980년대 성락교회와 베뢰아 아카데미를 통해 김기동의 주장을 배우고 이를 추종하는 자들이 한국교계에 하나의 흐름을 형성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한만영과 이명범이다. 앞의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만영과 이명범은 1980년 5월, 베뢰아 제1기로 수료했으며, 이초석, 이태화(이갈렙)는 한만영이 인도하던 강남의 그레이스 아카데미 출신으로 베뢰아와 동일한 주장을 하는 자들이다.
연세중앙교회 윤석전, 인터콥의 최바울도 베뢰아 수료생이며, 하용조, 장경동, 나겸일, 김삼환, 김지철도 모두 자신의 제자라고 김기동이 스스로 주장한 바 있다.
물론 당시에는 베뢰아에 대한 이단규정도 없었고, 베뢰아 교리도 오늘 날처럼 정립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초교파적으로 많은 목사들이 잘 모르고 베뢰아 강의에 참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일부 목사들은 베뢰아와 유사한 사상과 교리를 가르친 적이 있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특히 김기동은 윤석전에 대해서 5년 동안 베뢰아를 배웠다고 말한 적이 있으며, 윤석전의 설교 가운데 김기동과 매우 유사한 귀신론, 양태론 등을 가르친 적이 있다. 인터콥 최바울은 CBA(대학생베뢰아아카데미) 출신으로,터어키 선교사로 파송되었던 적이 있으며, 그가 쓴 ‘하나님의 사정’이라는 제목은 베뢰아의 가르침과 동일하다.
베뢰아 계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그레이스 아카데미 한만영 계열
신사동 소재 그레이스 아카데미의 서울대 국악과 교수 출신 한만영은 베뢰아 1기생으로, 예수중심교회 이초석(본명 이춘석), 다락방 류광수에게 영향을 주었던 마산 소재 산해원 부활의교회 이태화(이갈렙), 미국 로스앤젤레스 벧엘교회 김요한, 은혜한인교회 김광신은 모두 한만영의 계열로 김광신은 한만명의 처남이다. 특히 김광신은 신사도운동 피터 와그너의 처음 열두사도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피터 와그너가 직접 은혜한인교회에서 축사를 한 적도 있다.
그러나 나중에 신사도연맹에서 피터 와그너가 발표한 열두사도 명단에서 빠졌다.
김광신 계열로는 열두제자선교회(G12) 김삼성이 있으며, 김삼성은 자신의 책 “셀 교회에서 G12교회로”에서 자신이 김광신을 만나 카자흐스탄 선교사로 파송되었다고 기록하며, 자신을 “사도적 사역과 예언적 중보기도 사역”을 하고 있다고 소개하였다.
한만영은 국립국악원장을 역임했으며, 한국 국악계에 널리 알려진 인물로, 성락교회를 떠난 후 그레이스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운영하였으며, 부활의 교회 담임목사로 활동하다가 순복음교단에 가입하기도 했다.
한만영은 2007년 사망하였으며, “내가 지옥에 가라고 하면 지옥에 가고, 저주를 받으라고 하면 저주를 받는다면서 사도는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다”는 말로 인해 말썽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한만영의 대표적인 제자가 이초석과 이태화로 알려져 있는데, 마산 산해원 부활의 교회 이태화(이갈렙)는 한만영의 그레이스 아카데미 5기 출신이다. 그는 1980년 총신대를 졸업하고 부활의 교회를 개척하여 담임 목회자로 활동했다. 1983년, 그가 속한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측)는 베뢰아의 귀신론을 추종한다고 하여 그를 제명, 출교시켰다.
그러자 이태화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 정통)에 가입해 목사 안수를 받았으나, 합동 정통 총회도 그의 귀신론을 문제시하여 제명하려고 하자, 1987년 교단을 탈퇴했으며, 공식 사과문을 게제하고 합동교단으로 다시 복귀하였다.
이태화는 한만영과 함께 GMA(Gospel Missionary Alliance) 신학교를 세워 운영하기도 했다. 1992년,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측) 경남노회가 그를 영입하자, 마산시 기독교 연합회를 중심으로 강력한 반대와 비판이 일어나기도 했다. 다락방의 류광수는 이태화로부터 베뢰아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2) 레마복음선교회 이명범 계열
레마복음선교회 설립자 이명범은 연세대학교 도서관학과,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기독교학과에서 수학했다.
이명범은 베뢰아아카데미 1기생으로, 중앙대학교 교수들을 중심으로 성경공부를 시작, 1981년 7월 20일 ‘레마선교회’를 설립했다. 외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기독교계 영성훈련 프로그램인 트레스디아스(Tres Dias)와 비다뉴바(Vida Nueva)를 도입해 교세 확장에 이용했으며, 렘(REM)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뜨레스디아스는 이명범 뿐만 아니라, 한만영, 김광신에 의해서도 운영되어 왔으며, 미국을 통하여 한국에 전파되었다.
레마선교회는 렘(REM) 프로그램의 비성경성과 베뢰아 김기동과 유사한 사상으로 기성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된 바 있다. 레마선교회는 깨닫게 되는 체험, 즉 레마를 체험하는 것이 신앙의 정수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로고스는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말한다. 로고스의 말씀이 내게 들어와 나를 감동시키고 살아 역사하는 말씀으로 체험될 때, 그것을 레마라고 한다. 이 역시 베뢰아아카데미 초기에 유행하던 사상이다.
레마선교회는 1988년 레마 엘리트 성경 공부반을 개설하고 선교회 명칭도 「레마 복음선교회」로 바꾸었다.
이명범은 트레스디아스, 비더뉴바, 렘과 같은 다양한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조직을 강화하고 「레마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이명범은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 제 77회 총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이명범은 김기동의 귀신론이 비성서적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성락교회를 떠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명범이 김기동의 베뢰아 사상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함께 베뢰아를 배운 바 있는 필자가 볼 때 매우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3) 예수중심교회 이초석(본명 이춘석) 계열
예수중심교회 설립자 이초석은 학원사업을 하다가 한만영을 통해 베뢰아를배운 후 1984년 경기도 광명시에 예루살렘 교회를 개척했다. 그러나 1984년 12월, 김기동의 ‘귀신론’을 추종한다고 하여 예장성합으로부터 제명되었고, 교회를 인천시 남구 숭의동에 있던 박태선의 전도관을 인수하여 교회명을 한국예루살렘교회로 개명하였으며, 강남고속터미널 부근에 '땅끝예수전도단'이란 선교단체를 만든 적이 있고, 전남 장성에 예루살렘기도원을 하였으며, 현재는 예수중심교회로 개명하였다.
이초석은 한만영의 그레이스 아카데미 8기 출신이다. 그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정통신학교를 졸업하고, 1984년 대한 예수교 장로회 S측 총회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러나 이초석은 1987년, 소속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받고 축출되었다. 그 이유는 그가 주장하는 귀신론이 김기동의 귀신론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이초석은 1985년 “땅끝예수전도단”을 조직해 교세 확장을 시도하면서, 1988년 5월 8일부터 6월 18일까지 천국에 다녀왔다는 미국 펄시콜레의 “천국성회 간증집회”를 유치하면서 세간에 관심을 받기도 했다.
4) 화사첨족(畵蛇添足)
위 계보를 보면 좌측에 허긴과 권혁봉이 있다. 허긴은 침례신학대학 총장 출신으로 필자의 은사이다.
허 긴은 필자가 워싱톤침례신학대학 교수명으로 베뢰아 이단 세미나를 워싱톤 순복음교회에서 초교파 적으로 인도할 때 필자의 등을 두드리며 베뢰아 이단성을 세계 만방에 알리는 일에 힘을 써달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허긴은 베뢰아 교단에서 목회자 성장대회 강사로 세미나를 인도하고 있었다.
이런 걸 뭐라 표현해야 하는지...(독자들에게 맡긴다)
권혁봉 역시 필자의 침신대 은사이다. 침신대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면서 조직신학 교수로서 베뢰아와 성락교회를 가장 많이 비판했던 인물이다. 이런 사람이 베뢰아 교단총회에 강사로 초빙되어 강의를 하였는데 도대체 그가 무슨 강의를 했는지 그날 참석했던 인간들은 말해보라. 비판하던 입으로 어떤 아부를 떨었을까....
필자는 1976년 전도사로 시작하여 올해까지 딱 42년간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오면서 이런 인간들을 생각하면 환멸과 구역질이 나서 견딜 수 없다. 필자에게 전혀 실수나 잘못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내 말인즉은 어떻게 그런 낯짝과 양심으로 강단에 설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도저히 나같으면 못할 것 같은데....돈 때문에 그랬을까? 아니면 명예? 아니면 존재하는 이유를 확인하려고? 아마 돈 때문이었을 것이다.
강성기와 최바울에 대한 이야기는 좀 길어서 다음에 다루기로 한다.♣
[출처] 베뢰아 아카데미(2)|작성자 Ez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