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끝으로>
영국 시인 크리스토퍼 로그의 시가 있다.
"절벽 끝으로 오라."
"할 수 없어요. 두려워요."
"절벽 끝으로 오라."
"할 수 없어요. 떨어질 거예요!"
"절벽 끝으로 오라."
그래서 나는 갔고,
그는 나를 절벽 아래로 밀었다.
나는 날아올랐다.
학교 졸업 후 결혼을 하고 고정된 직업도 없이 수유리 북한산 밑에서 셋방살이를 했지만, 내게는 하나의 꿈이 있었다. 영적 스승들을 만나러 인도 여행을 떠나는 일이었다. 그곳에 가면 삶의 의문에 대한 몇 가지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완전한 깨달음은 아니더라도 영적으로 자유로워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문제는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왕드롭프스 깡통에 든 천 원짜리 지폐 서너 장과 동전 몇 개가 전 재산이어서 버스도 못 타고 걸어다니는 처지에 인도는 상상 속 나라일 뿐이었다. 당나라 현장 법사가 2년 동안 걸어서 천축국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앞세워 돈 대신 체력을 비축한다는 핑계로 산을 오르내렸다.
탈진해 체력은 오히려 바닥났고, 하는 수 없이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림잡아 내 정신세계를 이해해 주는 스무 명에게 손편지를 쓰기로 한 것이다. 여행 경비를 도와주면 인도에 다녀와 열심히 일해서 꼭 갚겠다는 심금을 울리는 편지였다. 의사와 교수도 있었고, 이름난 화가도 있었으며, 회사에 다니는 친구도 있었다.
전 재산의 상당 부분인 왕드롭프스 통의 동전을 쏟아 편지를 부쳤고 그날 이후 내 발길은 산이 아닌 은행으로 향했다. 날마다 입금 여부를 확인하는 그 하루하루 마음은 기대와 희망으로 날갯짓했지만, 돈이 넉넉히 들어오면 슬리핑백과 카메라도 사야겠다고 내심 미소 지었지만, 여비에 보태라며 돈을 보내 준 이는 한 사람이었다. 이제야 밝히지만 사실 그 한 사람마저도 아내에게 내 위상을 돋보이려고 꾸며낸 것이었다. 내 말을 믿은 순진한 아내는 그 돈을 어디에 썼느냐고 어려울 때마다 물었다.
편지 내용에 심금이 울린 사람은 스스로의 글에 도취한 나 자신뿐이었다. 받은 편지를 들고 와서 긴 훈계를 하고 라면을 먹고 간 이는 있었다. 결국 내 꿈을 이루어 줄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현실을 깨달은 나는 중단했던 번역 일에 다시 매달렸다. 그 이후 밤샘 작업을 밥 먹듯 했으며, 단 하루도 허투루 빈둥거리지 않았다. 다른 저자의 원고를 윤문해 주고, 대리 집필도 했다. 오로지 인도에 갈 경비를 모으기 위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꼼짝할 수 없는 수렁에 빠진 기분이었다. 출판사들은 지불을 차일피일 미뤄 포기하게 만들거나, 준다 해도 몇 달에 걸쳐 주었으며, 그렇게 받은 원고료는 생활비에도 못 미쳤다. 아내는 가난에 허덕이다 병에 걸렸고, 병이 완치된 후에는 아이가 생겼다. 당연히 더 죽어라 일해야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마흔 살이 넘고 쉰 살이 되어도 인도 여행은 불가능했다.
어느 날, 만삭의 아내에게 이해를 구하고 돈 되는 물건을 다 팔아 최소한의 생활비를 손에 쥐여 준 뒤 인도의 명상 센터로 떠났다. 여비가 부족해 가계부 쓰듯 매일 돈 계산을 해야 했다. 그래서, 한 달 뒤에 돌아와서는 영적 자유를 얻었는가? 아이를 키우기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했고, 또다시 인도에 가려고 더 많은 밤을 새워야 했다.
그때의 문장들이 나를 키웠다. 절실했고, 주위에서 미쳤다고 할 만큼 일에 몰두했다. 현실에서 살아남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길이 없었다. 영적 가르침이 담긴 책들을 번역했지만, 돈이 필요해서 죽어라고 일했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노동에 몸을 바치지 않으면 영적 자유에 근접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명작가였던 도스토예프스키를 세계적 문호로 만든 원동력은 돈이었다. 지주 계급 출신이어서 경제적으로 자유로웠던 투르게네프나 톨스토이와 달리, 도스토예프스키는 빈민구제병원 의사인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약간의 재산을 다 써 버린 후 한 푼의 원고료라도 더 받기 위해 글쓰기에 매달렸다. 늘 돈이 궁색해 글 쓰기 전에 먼저 원고료를 받았으며, 빚을 갚기 위해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글을 써야 했다. 그렇게 해서 『가난한 사람들』 『죄와 벌』 같은, 돈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다루는 것을 넘어 심리적 고찰의 대상으로 접근한 명작들이 탄생했다.
미국 작가 레이먼드 카버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에 결혼해 스무 살에 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제재소 일꾼, 배달부, 주유소 직원, 건물 수위, 도서관 사서, 화장실 청소부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일이 끝나면 집에 돌아와 차고에서 글을 썼다. 당장 원고료가 필요했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완성할 수 있는 단편소설을 주로 썼다. 그렇게 매일 글을 쓴 결과 20년 후에는 단편소설의 대가가 되어 있었다. 카버로 인해 1980년대 미국 문학은 단편소설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쉰 살에 세상을 떠나지만 않았다면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것이라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지난 2월, 인도 정부의 초청을 받았다. 비행기표와 숙소를 제공해 주는 특별 초대였다. 하지만 사양하고 다른 사람을 추천했다. 수상을 만나고 공식 행사들에 참석하는 일이 내게는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일해서 번 돈으로 여행하는 것이 나는 좋다. 만약 그때 사람들이 여행 경비를 대 주고 푹신한 슬리핑백까지 사 줬다면 내 삶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절벽 끝으로는 가지 않고 가짜 날개로 자유로운 시늉을 했을지도 모른다. 끝내 현실로 돌아오지 못했을지도.
힘든 시절이 행복한 결말을 가져다준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절실하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나 자신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이리라. 그러나 돈이든 그 무엇이든, 지금 '절벽 끝'에 몰려 있다고 꼭 불행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갑자기 절실하게 만든다. 그 중요한 순간에 생명력이 솟고 우리는 신이 토해 내는 숨결이 된다.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도망갈 곳은 없다. 그때 우리는 스스로 하늘을 만들고 자신도 몰랐던 날개가 돋는다.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갈구한 모든 순간이 날개였다. 날개를 잃었다면 떠올려 보라, 날개가 돋았던 그 순간을.
art credit_Huseyin Sa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