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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왜 나를 좋아하는가> - 류시화 4.26. '19

작성자fewa99|작성시간20.11.02|조회수66 목록 댓글 0


뭄바이 근처 명상 센터에 유대인 가문의 여성이 한 명 있었다. 부친의 유산을 물려받아, 삼십 대 초반인데도 명상 센터의 국제 홍보 담당을 자원해 자비로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닐 정도로 백만장자였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도 한국까지 찾아와 연락을 했기 때문이다.

큰 부에 영적인 성향까지 갖춘 부족함 없는 삶이었지만, 한 가지 불만은 몸이 뚱뚱하다는 점이었다. 아주 비만은 아니어도 인도 여성들의 평상복인 살와르 카미즈(헐렁한 바지와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상의)를 입으면 풍만한 몸매가 더 두드러졌다. 특히 비단으로 만든 옷이어서 태가 더 났다.

긍정적인 성격에 돈이 많기 때문인지 그녀의 관심과 애정을 받으려는 남자들이 줄을 이었다(나 역시 그녀에게 끌렸으나 결단코 그녀의 재력 때문이 아니라 살짝 웃을 때의 매력 때문이었다). 그 명상 센터에서는 만나면 서로 허깅을 하곤 했는데, 다들 그녀와의 포옹 시간은 다섯 배나 길었다. 뒤의 사람은 두 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고.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인기가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다르샨(스승과 제자들의 만남) 시간에 그녀는 스승에게 질문했다.

"많은 남자들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부를 사랑합니다. 내가 진실한 사랑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요?"

스승이 말했다.
"그대는 남자들이 재력을 보고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슬퍼한다. 그들의 사랑이 진실하지 않다고 의심한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그대의 재력이 아니라 그대의 코가 예쁘기 때문에 사랑한다면, 그것은 진실한 사랑인가? 그대의 눈과 미소가 매력적이기 때문에 그대를 사랑한다면 진실한 사랑인가? 혹은 그대의 긍정적인 성격 때문에 사랑한다면?"

잠시 침묵했다가 스승은 말을 이었다.
"재력이든 아름다운 눈이든 혹은 긍정적인 성격이든 사랑의 조건이라는 점에서는 아무 차이가 없다. 그리고 조건에 의한 사랑은 오래갈 수 없다. 모든 조건은 필연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대는 재력을 잃을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미소가 매력을 잃고 눈에서는 반짝임이 사라질 것이다. 긍정적인 사고도 정반대의 면을 드러낼 것이다. 그때 그 조건들을 바탕으로 한 사랑도 떠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스승은 말했다.
"그대가 가진 재력 대신 다른 조건으로 그대를 사랑해 줄 사람을 기대하지 말라. 그 무엇이든 조건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조건 없는 사랑을 찾으라. 어떤 조건도 없이 존재 자체로 그대를 사랑하는 사람을. 그대 또한 존재 자체로 사랑하는 사람을. 단지 함께 있는 자체를 깊이 갈망하는 사람을."

그녀뿐 아니라 스승의 말을 듣는 우리 모두 숙연해졌다. 그 후 나는 아열대 새들이 졸음을 깨우는 그 명상 센터를 아주 떠나고 스승도 세상과 작별했기 때문에 그녀의 삶에 어떤 변화가 찾아왔는지 모른다. 지금쯤은 나이가 많고 육체도 필연적으로 변화했을 것이며, 영원한 것은 없으므로 삶의 부침에 따라 재력과 매력적인 미소와 긍정적인 사고도 달라졌을지 알 수 없다. 그 모든 조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존재와 존재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있는지도.

빠알리어 경전에서는 '깔야나 미따'를 이야기한다. 인생의 의미를 함께 발견해 나가는 좋은 벗이라는 뜻이다.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관계를 넘어 우리가 누구인지 온전히 알게 해 주는 친밀하고 깨어 있는 만남이다. 이때 외부적인 조건과 상관없이 우리 안의 온전한 존재가 밖으로 드러난다. 누군가에게 그의 내면에 존재하는 사랑스러움을 비춰 보여 주는 것만큼 큰 사랑은 없다.

당신은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왜 나를 좋아하는가? 내가 쓰는 글이 마음에 들어서인가, 내 삶이 그럴듯해 보여서인가? 아니면 내 존재가 당신의 존재에 반영되기 때문인가? 나는 당신을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왜인가? 당신의 매력적인 미소 때문인가, 당신이 내 글을 좋아하기 때문인가? 소유할 수 없는 당신을 소유하고 싶어서인가? 혹은 맑은 물이 담긴 깊은 호수 같은 당신의 존재에 내가 비치기 때문인가?

당신은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다. 당신과 나 사이에는 탁자와 그 위에 놓인 찻잔, 따뜻한 차, 찻잔을 든 손의 흰 빛, 잔잔한 호흡, 그것이 전부이다. 이 순간 우리를 치장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서로에 대한 소유 의식도 없다. 우리는 순수한 존재 그 자체이다. 그래서 서로를 더 투명하게 볼 수 있고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다. 얼마나 소중한 순간이고 경이로운 '있음'인가.

페르시아 문화권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까이스라는 청년 시인이 부족의 소녀 라일라와 사랑에 빠졌다. 까이스가 라일라의 이름을 넣어 연애시를 읊자, 라일라의 아버지는 집안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이유로 구혼을 거절하고 딸을 부유한 상인에게 강제 결혼시킨다. 라일라는 사랑하는 이와 남편 사이에서 괴로워하다 결국 쇠약해져서 죽는다. 연인을 잃은 슬픔에 사로잡힌 까이스는 라일라의 환영을 쫓아 사막을 헤매고, 부족 사람들은 그를 '마즈눈(광인)'이라 부른다.

부족의 족장이 하루는 마즈눈을 불러 말한다.
"자네는 어리석어. 내가 라일라를 잘 아는데, 아주 평범한 처녀에 불과했어. 자네는 훌륭한 청년이고 미래가 걱정돼서 말하는데, 인생을 낭비하지 말게."
그는 마을의 아름다운 처녀들 이름을 대며 말했다.
"이들은 좋은 가문 출신들이고 외모도 뛰어나다네. 이름만 대면 내가 적극적으로 중매를 서 주겠네."

마즈눈은 슬픈 눈을 들어 부족장에게 말한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이들은 라일라와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라일라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려면 오직 저의 눈으로 봐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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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credit_Wakatet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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