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서 내 곁에 앉아, 리디아, 이 강가에.
말없이 강물을 바라보며 깨닫자.
삶이 흘러가고 있음을,
그런데도 우리가 손깍지를 끼지 않고 있음을.
그러고 나서 생각하자, 어른이 된 아이로서, 삶은
그저 흘러갈 뿐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다만 멀리 바다로, 운명 가까이로,
어쩌면 신들보다 더 멀리 사라져갈 뿐.
이제 손깍지를 풀자, 우리 자신을 마냥 지치게 할 필요는 없으니.
우리가 기쁘든, 혹은 아프든, 우리는 강처럼 흘러간다.
고요히 흐르는 법을 아는 것이 좋겠지.
크나큰 불안 없이.
사랑하든, 미워하든, 격정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든,
쉼 없이 두 눈을 굴리며 질투하든,
조심하든 혹은 조심하지 않든, 강은 여전히 흐르고
결국에는 바다를 향해 나아갈 것이니.
우리 조용히 서로를 사랑하자, 우리가 원한다면
입 맞추고 어루만지고 껴안을 수도 있음을 생각하면서.
하지만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서로의 곁에 앉아서
강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는 것, 또 강을 바라보는 것.
우리 꽃을 따 오자, 그래서 꽃 몇 개를 너의 무릎에
놓아 두자. 향기가 그 순간을 감미롭게 감싸도록.
우리가 말없이 아무것도 믿지 않는 이 순간을,
순진무구한 이교도의 타락한 순간을.
만약 내가 먼저 그림자가 되어야 한다면, 훗날 너는 나를 기억하겠지.
기억한다 해도 나는 너를 불처럼 타오르게 하거나 상처 주거나 혼란스럽게 하지는 않을 거야.
왜냐하면 우리는 한 번도 손깍지를 낀 적도, 입 맞춘 적도 없으니까.
우리가 어린아이들 이상인 적은 없었으니까.
또 만약 네가 나보다 먼저 강을 건너기 위해 어둑어둑한 뱃사공에게 은화를 건넨다 해도
나는 너를 기억하며 고통스러워할 일은 없을 거야.
만약 내가 너를 기억한다면 너는 언제까지나 달콤할 거야, 내 기억 속에서, 그 강가에서.
무릎에 꽃을 얹은 슬픈 이교도 처녀로.
- 페르난두 페소아 <와서 내 곁에 앉아> (류시화 옮김)
사랑하면 우리는 이교도가 된다. 손깍지를 끼는 순간, 꽃을 따다 무릎에 놓아 주는 순간, 우리는 어른인 아이가 된다. 불행하게도 생의 흐름은 멈출 수도 없이 흘러가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뒤에 남지 않고 언젠가 이 순간을 기억한다 해도 불에 데이는 일은 없겠지만, 우리가 손을 잡고 생의 강가에 앉아 서로를 사랑하는 이 순간은 향기로 감싸일 것이다.
삶의 시련들에 지쳤거나 무감각해졌거나 혹은 생의 속도에 열심히 발맞춘다 해도 가끔은 그렇게 강가에 앉아 같은 심장 박동으로 손을 잡고 조용히 사랑해야 한다. 그렇게 하든 하지 않든 삶은 변함없이 흘러가겠지만, 세상의 소란스러움과 멀어져 서로의 존재 옆에 고요히 있으면 우리가 같은 심장을 지녔음을 알게 될 것이므로.
이리 와서 내 곁에 앉아, 나의 리디아. 우리 함께 강을 바라보며, 강이 부르는 저녁 노래에 귀를 기울이자. 눈을 깊이 마주치기도 전에, 혹은 넘치게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너를 알아볼 거야. 너의 갈망과 내면의 빛을. 너의 무릎에 올려놓을 꽃을 나는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이 순간 나 자신이 너에게 바치는 꽃이기를. 다시 망각의 어둠 속으로 떠밀려 들어간다 해도, 이 순간을 대신할 순간은 없으니까. 삶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그 순간이니까. 우리가 어린아이 이상이었던 적은 사실 없으니까.
포르투갈 문학사에는 최고의 서정시인, 리스본의 영혼으로 불리는 이름들이 있다. 페르난두 페소아, 리카르두 레이스, 알베르투 카에이루, 알바루 드 캄푸스. 이 이름들 모두 동일 인물이다. 페르난두 페소아는 자신 안의 여러 자아에게 각각의 이름을 부여해, 최소한 72개의 이름으로 시와 글을 발표했다. 그는 그 이름들을 ‘필명’이 아닌 ‘이명(다른 이름)’이라 불렀다.
생존했을 때는 그의 시를 이해한 사람이 없어 출간 시집은 단 한 권뿐이었으나 사후에 엄청난 양의 글이 담긴 궤짝이 발견되었다. 사후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분류와 출판이 진행되고 있다. 그는 썼다. ‘마치 모든 입맞춤이 작별 키스인 것처럼, 우리 사랑하며 입 맞추자.’ ‘나는 옛날의 나를 후회하지는 않아. 여전히 그게 나이기에. 단지 그때 너를 사랑하지 않은 것만 후회될 뿐.’
art credit_Anne Mag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