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디밴드가 내 시를 노래로 만들었다며 허락을 구하는 메일을 보내 왔다. 첨부된 파일의 노래를 들어보니 보컬의 목소리가 잘 다듬어진 미성이고, 드럼이나 기타 연주도 듣는 이의 감성을 적절히 건드렸다. 무엇보다 가사가 좋고(내 시이니까!) 의미 전달이 나쁘지 않았다. 처음 듣는 노래에 익숙해지기 위해 이어폰을 꽂고 스무 번 넘게 들었다. 역시 가사가 심오하고, 노래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나쁘지 않음'이 마음에 걸린다. 그 '적절함과 다듬어짐'이. 노래를 들을수록 왜 더 나아가지 않을까, 이 대목에서 왜 더 폭발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듯한 그 미성과 무난함이 불편하다. 혹시 내 시 탓은 아닐까?
시인 앨리스 워커는 '사랑받으려고 하지 말라'고, 가슴 뜨끔하게 썼다. 예쁘게 보이려 하지 말라고. 스스로 추방자가 되어야 자신만의 색깔을 가질 수 있고, 다발에 묶이지 않는 한 송이 꽃으로 고고하게 피어날 수 있다고. 인디밴드의 의미가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그룹이라면, 무엇보다 사랑받지 않을 용기, 사람들에게 좋아해 달라고 구걸하지 않을 '낯섦과 거칢'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어디 음악뿐이랴.
고흐에 관한 일화가 있다. 고흐의 동생 테오는 형의 그림이 한 점도 팔리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한 남자에게 돈을 주면서 가서 그림 하나를 구입하라고 시켰다. 온종일 굶으며 뙤약볕 아래서 그림을 그리는 형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기 위해서였다.
아무도 고흐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 눈에는 그가 미친 사람으로만 보였다. 원근법도 무시한 채 나무들은 별들 높이만큼 자라고, 거칠고 황량한 하늘에서 소용돌이치는 별들과 어지럽게 불타는 밑밭은 그들이 원하는 '무난한 액자 그림'이 전혀 아니었다. "당신의 나무들은 왜 항상 별들 높이만큼 자라지?" 하고 물으면 고흐는 말했다.
"나무들은 별에게 가닿으려는, 별을 느끼려는 대지의 갈망이다. 나는 그 갈망을 이해한다. 대지는 내 그림을 이해할 것이고, 당신이 이해하든 말든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남동생 테오가 보낸 사람이 그림을 사러 왔을 때 고흐는 무척 행복했다. 드디어 누군가가 자신의 그림을 사러 온 것이다. 그러나 그 행복은 곧 절망으로 변했다. 남자는 고흐의 방을 둘러보고는 아무 그림이나 하나 골라 돈을 주었기 때문이다.
고흐가 말했다.
"당신은 내 그림을 이해하는가? 수백 점이 넘는 내 그림들을 들여다보려고도 하지 않고 당신은 그저 우연히 당신 앞에 있는 그림을 골랐다. 아무래도 당신은 나한테 위안을 주기 위해 내 동생이 보낸 사람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남자가 놀라서 물었다.
"당신은 나를 처음 봤는데 어떻게 그 사실을 눈치챘죠?"
고흐는 말했다.
"그림을 고르는 것을 보고 알았다. 당신은 너무 대충 그림을 골랐다. 그 그림은 그럴 만큼 대충 그린 그림이 결코 아니다. 부탁인데 그 그림을 제자리에 갖다 놓고 돈은 가져가라. 나는 내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림을 팔 수는 없다. 내 동생 또한 진정으로 내 그림을 이해한다면 당신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훗날 테오는 고흐에게 와서 사과했다. 상처를 주어 미안하다고.
며칠 전 또 다른 인디밴드가 연락을 해 왔다. 부디 시 사용을 허락해 달라고. 첨부된 음악 파일을 열기도 전에 노래가 나한테 호소한다.
'내 목소리는 거칠고 미성이 아니지만 나는 갈망을 가지고 있어. 별들 높이로 올라가려는 이뤄질 수 없는 갈망을. 나는 사랑받으려고, 텔레비전 드라마 OST로 채택되려고 부르지 않았어. 당신이 내 노래를 이해하든 말든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야. 이것은 내 노래이고, 나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이니까.'
부디 환청이 아니기를.
art credit_빈세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