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의도적으로 단락나누기를 하지 않고 담벼락에 남긴다. 내 속에 있는 어떤 생각을 속에 삭혀둘 수가 없으나 그렇다고 두드러지게 글을 쓸 수도 없는 복잡함을 담은 글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페이스북 이용이 활발한 시각이 아니라 미국 시각으로 토요일 낮 시간에 올리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 지난 해, 아마도 2월부터, 성서유니온에서 격월간으로 펴내는 목회자를 위한 묵상 주해서 <묵상과 설교> 3-4월호의 출애굽기 주해 내용을 살펴봤다. 출애굽기가 내가 즐겨 읽는 책이기도 했고, 관심있는 주해인 것이 큰 몫을 했다. 김경열 목사가 글쓴이였다. 주해글에 담긴 다른 누군가의 이름이나 자료를 언급하며 인용한 부분을 출처에 담긴 내용과 비교하며 읽었다. 인용하고도 출처를 밝히지 않은, 이른바 표절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누구의 글(주장), 어떤 자료에 담긴 내용과 글쓴이가 활용한 내용이나 주장이 적절한지를 보았다. 출처표기의 문제가 아닌 인용의 문제, 원문에 있지 않은 내용을 글쓴이가 자의적으로 첨삭하거나 원문에 담긴 내용을 왜곡한 표현들이 적지 않았다. 아마도 250쪽 정도 분량으로 모아서 관계자들에게 보냈다. 그러나 드러난 성과는 하나도 없었다. 문제를 문제로 받아들여진 것도 아니었다. 9-10월호 출애굽기 주해글도 같은 글쓴이의 글이었다. 그 글에 담긴 내용에 대해서도 급하게 몇 몇 주장에 대해 동일한 비판과 사실 확인을 담아서 보냈다. 이 글쓴이는 2016년 여름에도 출애굽기 주해글을 맡았다. <묵상과 설교> 출애굽기 주해글을 쓴이는 김경열 목사였고, 묵상과 설교 편집자는 박대영 목사였다. 오늘보니 박대영 목사가 폐절을 했던 모양이다. 출애굽기 주해글 다시 읽기 과정에서 평소 멀지 않았던 몇 몇 지인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나를 저격하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페잇,북 메신저로 공격적으로 글을 전해오기도 했다. 글쓴이를 적극 지지하면서 나온 파편이었다 싶다.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것인지 모르지만, 기획되었던 그러나 연기되었던 책의 출판이 없었던 일이 되었다. 저자인 나와 협의가 이뤄진 것이 아니라 출판사 대표의 결정이었다. 여전히 그들은 한국 기독교계 지식 생태계에서 나름의 목소리와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이들이다. 비주류, 경계인, 국외자로 살고 있는 나와는 존재감이 전혀 다른 이들이다. 어떤 이는 공개된 댓글에서, 이른바 내가 어그로를 통해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했을 정도이다. 그가 쓴 글에 담긴 문제를 아는 주변 학자들은 목회자들은 그저 지켜만 보고 있다. 성서유니온 관계자도 있고, 글쓰기 전문가도 있다. 아니 여전히 그의 글에 좋아요를 눌러 응원하고 있다. 해석의 영역은 글쓴이나 독자의 몫일 수 있다. 그러나 언급하거나 인용한 자료를 왜곡할 자격이나 권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있지 않은 내용을 있는 것으로 언급하거나, 하지 않은 말을 한 것으로 말하거나 그저 사실 왜곡일 뿐이다. 특정인 자체가 아니라 특정 글에 대해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것, 지적하는 것, 불편하기 그지 없는 일 맞다. 그렇지만 아닌 것 아니지 않나? 글쓴이가 될 때 글을 쓰면서 참고한 자료를 왜곡하지 않으면서 글을 쓰는 것이 그것이 엄격한 잣대인 것일까? 글이라는 음식에 담긴 원산지 표기를 정직하게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일까? 공정과 상식은 내편 네편에 따른 가치인 것일까? 특정인에 대한 비난과 특정인의 특정 활동에 대한 비판이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여전히 나이가 들어가도 관계를 좋게할 줄을 모른다. 조국 전 장관 이슈때, 차별금지법 이슈때, 이슬람포비아 이슈때, 그리고 기독 지성의 글 다시 읽기 이슈때, 가까왔던 지인들이 멀어져 갔고, 내 마음도 멀어졌다. (혹시라도, 묵상과 설교 3-4월호, 9-10월호에 담긴 서술에 대한 나의 문제제기의 적절성을 짚어줄 분들이 있다면, 메시지를 남겨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