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사람은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로 뱀을 만들어서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에, 물린 사람은 구리로 만든 그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8~9절)
이스라엘백성들의 광야생활도 거의 끝나간다. 마치 나의 누더기 같았던 일생이 거의 끝나가는 것과 비슷한 심정으로 요즘의 말씀을 묵상한다. 단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광야생활에서 입은 모든 은혜를 망각하고 또 다시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저들과는 달리, 지금까지 어떤 형편에서든지 주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영적 가나안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
“그래서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다. ‘어찌하여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왔느냐? 이 광야에서 우리를 죽이려고 하느냐? 먹을 것도 없다. 마실 것도 없다. 이 보잘것없는 음식은 이제 진저리가 난다.’” (5절)
이런 백성들의 끝없는 악행에도 또 다시 하나님께 중보하는 모세의 모습을 본다. 얼마나 귀한 참된 지도자의 모습인가, 아니 지도자가 아니더라도 모든 성도들은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이웃들을 위해서 늘 중보의 끈을 놓지 않아야할 것이다.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구하였다. ‘주님과 어른을 원망함으로써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이 우리에게서 물러가게 해 달라고 주께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모세가 백성들을 살려 달라고 기도하였다.” (7절)
끊임없이 기도하는 모세도 그렇지만 그때마다 한 없이 응답하시는 우리 하나님도 정말 대단하시다. 그러기에 나 같은 극악한 죄인이 늦게라도 주님의 은혜의 날개 안에 들어올 수 있지 않았겠는가. 그러는 하나님께 일생동안 단 한 번도 원망하지 않고 살아 온 것을 하나님께서 기특하게 보셔서 오늘의 은혜받은 내가 된 것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가, 지난주의 부친보다 30년 일찍 돌아가셨을 때도 나의 불효를 탓했지 감히 하나님께 원망은 해보지 못했다. 앞으로도 원망이나 불평보다는 감사와 찬송을 더 많이 할 것을 원하시는 주님이시다.
그래서 백성들을 구원할 구리뱀을 만들게 하시고 그것을 보는 자는 죽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을 본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죄인들에게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그를 믿기만 하면 영생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불뱀을 쳐다보기만 하면 살 것이라 해도 믿지 못하고 쳐다보지 않아서 죽는 인생이 있는 것처럼 주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말을 믿지 않아 영원한 사망에 빠지는 자들을 생각하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할 것을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본다.
이후의 여러 곳을 거쳐 드디어 가나안 입성의 관문 비스가산 기슭에 이르렀다.
나도 이제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둔 인생여정의 끝부분에 다다른 것을 깨달으며 매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하는 마음을 품으며 살고 있다. 하여 오늘이라도 하나님나라에 들어오라면 기쁘게 가겠지만 한 번도 복음을 듣지 못한 네팔의 내 친구들과 그들의 이웃을 생각하면, 주님이 어떻게 명하실지를 알지 못하니 주님의 음성을 더욱 구하며 오늘도 하루를 시작한다.
“바못을 떠나서는 비스가산 꼭대기 부근, 광야가 내려다보이는 모압 고원지대의 한 골짜기에 이르렀다.” (20절)
<Moses and the Brazen Serpent>-Bourdon Sebastien (165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