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본문 47,48절)
거지 바디매오의 이 말이 오늘의 나의 기도이다.
아니 오늘 뿐 아니라 요즈음 나에게 다가오는 예사롭지 않은 세상적인 여러 가지 복잡함과 불편이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라’는 기도를 올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러나 감사하는 것은 나의 기도에 즉시에 또는 나중에라도 반드시, 어떤 방법으로라도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 항상 계시기 때문이다.
다급하고 속이 많이 아플 때에 기도보다 걱정과 염려가 앞서는 때에 뒤돌아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음을 깨닫게 하시기도 하신다. 그러나 어쩌다 누구에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믿음이 좋을 수 있습니까?'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참으로 낯이 붉어지고 무안하고 부끄러웠던 것은 나의 믿음 없는 참 모습을 주님은 아시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김용의선교사님 어록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말로 “나도 아침마다 일어나면 온갖 걱정되는 일로 마음이 심히 힘이 듭니다.”고 말씀 하신적이 있는데 그런 말씀에서 오히려 저런 믿음의 대인 같은 이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에 큰 위안을 받은 적이 있다.
오늘의 바디매오의 이 호소를 나는 ‘절박한 자의 외침’이라고 묵상하며 나는 이 바디매오아 같은 절박함으로 주님께 매달리고 있는가 하고 되돌아 보면서 나의 기도생활이 심히 부족함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대강 대강 기도라고 제목만 던져 놓고 응답만 기다리는 나의 모습이 이 바디매오의 모습을 통해서 나에게 거울처럼 투영되어 오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이 상한 나에게 오늘도 변함없이 주님이 메신저를 통해서 또 말씀하신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시오. 예수께서 당신을 부르시오.”(49절 下)
그래, 주께서 나를 부르신단다.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주님께 나의 전 재산인 겉옷을 벗고 달려가 보자.
가서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51절 下)하고 간구하여 보자.
지금 내가 처해 있는 현실 너머 주님께서 계획 하시고 예정하신 모든 것을 바라 볼 수 있는 영의 눈을 뜨게 해 주시라고 바디매오처럼 외쳐보자. 그러면 주님께서는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52절)고 바디매오를 칭찬 하셨던 것처럼 동일한 칭찬 받기를 원하는 나에게 아직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하시고 꾸짖으실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바디매오가 간 길을 나라고 가지 못할 소냐' 하고 다시 한 번 말씀에 의지하여 힘을 내어 본다.
“그러자 그 눈 먼 사람~바디매오라고 하지 않았다. 은혜받은 모든 눈 먼 사람 아닌가?~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섰다."(52절 하)
참 제자 바디매오여! 제자로의 부르심.
“Take heart, Get up, he is calling you.”(49절 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