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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부방

열거법과 의미의 흐름

작성자참나무다리|작성시간04.07.24|조회수176 목록 댓글 0
열거법과 의미의 흐름


예시작품 [5] 초역분

나는 알고 있었다.
때로는 우거진 푸르름의
때로는 시들어버린
풀잎 위
이슬의 촉촉함.
빗방울.

해와 그늘, 달빛, 어둑어둑함.
땅 위에 새겨진 이파리들.
나무를 둘러싼 흙담들.


그 헤아릴 수 없음으로 그들을 에워싸며.

나는 수 없이 이렇게 해왔다.

집 담장들의 알록달록함,
검게 변해가는 벽의 페인트 빛.

난간의 풀잎들의 새싹.
신새벽 어스름에 난 그것을 알아챘다.

때로 나는 가까이
너무 가까이 땅을 밟는다.
사물에 귀기울이며,
때로 나는 달리는 기차
창밖으로 바라본다
건물들, 나무들, 집들, 언덕들,
인간들-
모두 그들 자신에 귀 기울이며,
수없이.

[참고]
열거법이 주로 쓰인 이 시는 매 행마다 단조로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건조함을 누를 길이 없어서 윤활유가 필요하다. 이러한 독자와의 단절을 잇게 하기 위해서는 번역할 때 개성적인 목소리를 가미해야 한다. 우리만의 우리 목소리로.

예시작품 [5]는 인도의 시인 프라양 슈클라Prayagn Shukla의 '땅 위에서'다. 그는 '어느 날' 등 2권의 시집과 3권의 단편집을 발간했으며 힌두어 주간지 '다이나만'의 편집장으로 근무중이다. 1941년생이다.
사물에 대한 세밀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수많은 사물의 열거로 인해 긴장을 놓치기가 쉬웠다. 허나 원작을 대조해 본 결과 복수형의 어미를 주목하고부터는 '풀잎들'과 같이 복수형을 도입함으로써 문제점을 해소하였다. 우리말의 '들'과 같은 복수형은 문장을 연결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또한 '나는 수없이 이렇게 해왔다'는 그 뜻을 풀되 제1행을 강조시킴으로써 효과적이었다. '가까이 땅을 밟는다'는 '땅에 엎드린다'로 '그들 자신에게'는 '스스로'라는 말로 바꿈으로써 의미의 흐름을 연속시킬 수 있었다.



예시작품 [5]의 수정분

나는 알고 있었다.
이슬에 젖는
풀잎들
푸르름이 우거지는 동안
어디선가 시드는 것들.
내리는 빗방울들.
해와 그림자. 달빛 어둑어둑한 것들.
땅에 새겨진 잎사귀들.
나무를 둘러싼 흙담들.
그들을 둘러싼 미지의
낮이며
밤들
나는 그 모두를 알고 있었다.

저 집의 담에 얼룩지는 것들.
이윽고 거멓게 바뀌어 가는 페인트 빛.
난간 위로 솟아오르는 풀잎들의 새싹.

나는 그 신새벽 어스름 속에서도 알 수 있었다.

때로 나는 땅에 엎드린다.
거기 귀를 대고
무엇인가 들으려 한다.
때로는 바깥을 바라본다
달리는 차창 너머로
건물들, 나무들, 집들,
언덕들, 사람들이
스스로에 귀기울이고
있는 것 바라본다.

헤아릴 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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