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0일 癸酉일
정인 병지, 정관 록지, 卯酉沖, 申酉戌 방합, 酉戌害, 寅酉 원진, 귀문관살, 공망, 망신살.
일진에 酉가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일들, 늘어놓고 보니 어마무시한 날이었다.
다만 그 작용을 의식하지 못했을 뿐.
계절이 바뀌고 익어가고 아침 저녁 생물이 자라나지만 다만 알지 못할 뿐.
단 한 순간도 에너지는 머묾 없이 흘러가고 흘러오고 변화한다.
텃밭 하나만 들여다봐도 자연이 큰 공부를 시킨다.
12운성. 12신살. 왕상휴수사 자연이 보여주는 이치는 다를 게 없다.
기다렸던 장날인데 아침부터 설왕설래할 일이 생겨 오후 늦게 달려갔다.
역시 오일장은 오전 개장발인가 보다. 달달이 커피차도 없고 강냉이 튀기는 소리도 없다.
할머니들이 쭈그리고 앉아 고소한 콩고물을 묻혀주던 쑥 인절미도 사라졌다.
어물전이며 옛날 과자 노점은 열었지만 이미 기운이 다 빠져 철시 분위기.
군밤 아저씨만 신나게 뜨거운 화로를 돌리고 있다.
맛보기로 준 군밤 한 알 입안에 까넣고 바로 한 봉지를 킵했다. 군밤을 시작으로
1+1 단팥빵과 보리카스테라를 챙기고, 주전부리 혹은 반찬 만들 요량으로 미역귀도 샀다.
사과 산지에 와서 제대로 맛이 든 사과를 못 먹어본 원한을 풀어야하는데, 오늘도 할머니의 호객에 끌려
덥썩 사과를 한바구니 샀다. 씻어보니 벌레 먹고, 흠집 나고 성한 게 없다. 역시 쇼핑엔 꽝손 임을 또 한 번 입증했다.
오늘의 득템은 이제 철이 끝나간다는 산딸기. 선생님 드리려고 한 그릇 샀다.
자주빛 짙은 색이 아니라 너무 예쁜 다홍이라 의심 했어야했는데,
할머니가 본인은 꿀에 재워먹는다고 할 때 한번 더 생각했어야 했는데...아무튼 신맛 그 자체, 그 뿐이었다.
애가 선 것도 아니고 몸 속에 회충이 사는 건지 떡볶이며 만두, 찐빵도 먹고 싶었는데 오늘은 발길을 돌려야했다.
“나는 숙명적인 방랑자다. 나는 고향이 없다”는 첫 구절로 유명한 소설 ‘방랑기’의 작가 하야시 후미코.
실제로 가방 4개만 들고 무작정 여행을 가고 돈이 떨어지면 글을 쓰거나 닥치는 데로 일해서 다시 여행을 떠났던
그녀는 말했다. “나는 너무 많이 먹고 너무 적게 쓰고 있다”
오늘도 이런 구절을 적어둔 예전 메모에 훅 걸려 넘어진다.
웨이트에서 유산소, 요가, 필라테스, 스피닝까지 하루 4-5시간씩 매일 운동하다
체계적인 움직임을 멈춘 지 2주.
단 2주 만에 근육은 촛농처럼 흘러내리고 사라졌던 체지방은 어느새 배 둘레부터 두둑하게 정착했다.
영원히 같은 강도와 시간을 들여 운동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운동 금단현상은 참 엄혹하다. 집행을 유예해주거나 지나가주는 법이 없다.
그래도 그뿐.
한 시절 원 없이 운동했다. 운동이라면 숨쉬기와 새마을 운동 밖에 모르던 책상 앉은뱅이가
머리가 아닌 몸을 쓰며 그 과정에서 순수한 희열을 느끼고 정직한 결과물을 얻었다.
죽을 힘 다해 원 없이 이룬 성취는 자신감이란 보상을 준다. 그리고 그 마저도 버릴 수 있는 자유를 준다.
하지만 이런 저런 부연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 많이 먹고 너무 적게 쓰고 있다.’
그건 자명하다. 그건 좀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