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글은
죄사함 받으신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
(율법해방8-3)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
로마서 6장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는지를 보았고,
7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율법에서
구원하셨는지를 보게 된다.
6장에서는
주인과 종의 설명을 통하여
죄로부터
구원받는 방법이 보여졌고,
7장에서는
두 남편과 한 아내에 대한
설명을 통하여
율법으로부터
구원받는 방법이 제시되었다.
먼저 바울이
율법으로부터의 구원을 예시하고 있는
로마서 7장
1절에서 4절까지를 보면,
남편이 둘이 있는데 반해
아내는 단 하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 두 남자 중
한 사람의 아내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 여인은
덜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그 여자와
결혼한 남자가
선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오해가 없기 바란다.
문제는 남편과 아내가
전적으로 서로 맞지 않는 데 있다.
그는 대단히 꼼꼼하고
정확한 남자이다.
이에 반해서 여자는
아주 게으르다.
그 남자에게는
모든 것이 분명하고 정확하다.
그러나 그 여자는
모든 일을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한다.
그 남자는
언제나 반듯하게 정돈해 놓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여자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놔둔다.
그와 같은 가정에
어떻게 행복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뿐만 아니라
그 남편은 굉장히 엄격하다.
그는 아내에게 항상 요구를 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비난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남편으로서 자기 아내에게
무엇을 기대할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요구는
완전히 합리적이다.
그 남자와 그의 요구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문제는
그가 그 일을
해낼 수 없는 아내를
가지고 있는 데 있다.
그 부부는
전혀 잘 지낼 수가 없다.
그들은 완전히 양립할 수 없는
성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 불쌍한 여인은
큰 번민 가운데 빠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남편과
살다 보면,
마치 그녀의 언행 전부가
잘못된 것같이 생각된다.
그와 같은 아내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만일 그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만 한다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그 남자는
그녀의 남편 못지않게 엄격하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많이 도와준다.
이 여자는 쾌히
그 남자와 결혼하기를 원하지만
본 남편이
아직 생존해 있다.
이럴 때 이 여자는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 여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어 있다.
그러므로 남편이
죽지 않는 한
이 여인은 다른 남자와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예화는 내가 아니고
사도 바울이 말한 것이다.
첫 남편은 율법이고,
둘째 남편은 그리스도다.
그리고 당신은 여자이다.
율법은 많은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요구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다.
주 예수님도 그만큼,
사실은 그 이상을 요구하신다(마 5:21-48)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일을
우리 안에서
친히 이루신다.
율법은
많은 것을 요구하며,
그것을 이룰 수 없는
무력한 상태에 우리를 내버려둔다.
그리스도는
많는 것을 요구하신다.
그러나 그 분은
자기가 요구하시는 모든 것을
친히 우리 안에서
이루신다.
그 여자가
첫 남편으로부터 해방되어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여자가 바라는 바,
첫 남편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그의 죽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대단히 끈기있게
삶을 지속하고 있다.
진실로
그가 앞으로
죽으리라는 전망은
조금도 없는 것이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 5:18)
율법은
영원히 존속할 것이다.
율법이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는가?
첫 남편이 죽기를
단호하게 거절한다면,
나는 어떻게 둘째 남편과
결혼할 수 있는가?
거기에는
단 하나의 방법이 있을 뿐이다.
만약 그가 죽지 않는다면
내가 죽을 수 있다.
그리고 만일 내가 죽는다면
결혼 관계는 끝난다.
바로 이것이 율법으로부터
구원받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로마서 7장의
이 부분에서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3절부터 4절에 있다.
1절부터 3절까지는
남편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지만,
4절에 보면
사실상 죽는 것은 여자이다.
율법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죽는다.
그리고 죽음으로 말미암아
나는
율법으로부터 해방된다.
율법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요구들은
영원히 존재한다.
그래서 만일 내가 살면
그 온갖 요구를 다 이루어야만 한다.
그러나 만일
내가 죽으면
율법은
나에 대한 권한을 상실한다.
율법은 무덤 저쪽까지
나를 따라올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죄로부터 구원받을 때와
똑같은 원리가
율법으로부터의
구원에도 작용한다.
내가 죽어도
나의 옛주인인
죄는
여전히 살아있다.
그러나
그의 종에 대한 세력은
무덤까지 미치나
더 이상은 미치지 못한다.
내가
살아있을 때
그는 나에게
아주 많은 일을 요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죽어 있는데
그가 나에게 요구한다는 것은
공연한 일이다.
나는 영원토록
그의 손에서 해방되었다.
그것은 율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여자는 살아 있는 동안
남편에게 매여 있다.
그러나 그 여자가
죽음으로써
결혼 관계는
끝나고
그 여인은
"남편의 법에서 벗어난다" (롬 7:2)
율법은 여전히
온갖 일을 요구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그것들을 강요할 수 있는
율법의 권한은
없어졌다.
그런데 여기서
극히 중요한 질문이 일어난다.
"나는 어떻게 죽는가?"
바로 여기서
우리 주님의 사역의
고귀함이 나타난다.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롬 7:4)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그의 몸은 찢어졌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그 안에 두셨기 때문에(고전 1:30)
나도 역시
찢어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나도 그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의 죽음은
나의 죽음을
포함한 것이었다.
갈보리 언덕에서
그것은 영원히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그 여인의 남편은
대단히 건강하고
힘이 셀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그 여자가 죽는다면
그가 아무리 많은 일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그 여인에게
요구한다 할지라도
그 여자에게는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죽음은
그 여자를
남편의 모든 요구로부터
해방시킨 것이다.
주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우리는 그 안에 있었다.
그리고 주님의
그 포괄적인 죽음은
우리를 율법에서
영원히 해방시켰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무덤 속에 머물러 계시지 않았다.
삼일째 되던 날
주님은 부활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해서
주님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 역시
부활한 것이다.
주 예수님의 몸은
그의 죽음뿐만 아니라
부활에 대해서도
말해 준다.
왜냐하면 그의 부활은
몸의 부활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다.
우리를
그리스도께 연합시키는
하나님의 목적은
단지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영광스럽게
적극적인 것이었다.
즉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롬 7:4)
죽음은
옛 결혼 관계를 종결시켰다.
그리하여 계속적으로
온갖 일을 요구하기만 하고
자기는 그 일을 도와주려고
새끼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
전 남편으로 말미암아
절망에 빠진 그 여인은
이제
자유로운 몸이 되어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다른 남자는
온갖 것을 요구를 하면서도
자기가
친히 그 여자 안에서
그 요구를 이루는
원동력이 되어 준다.
그러면 이 새 연합의
결과는 무엇인가?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롬 7:4)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그 어리석고 죄많은
여인은 죽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죽음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것처럼
부활에 있어서도
그와 연합이 되었다.
그리고 그 부활 생명의
능력 안에서
그녀의 삶은
열매맺는 삶이 된다.
이 여인 안에 있는
주님의 부활한 생명은
그녀에게
권능을 부여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이 요구하는
모든 일을 이룰 수 있게 해준다.
하나님의 율법은
소멸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완전히 이루어진 것이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주님이
이제 그 여자 안에서
그의 삶을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삶은 언제나
아버지께 참 기쁨을 준다.
여인이 결혼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 여인은 더 이상
자기 이름을 지니지 아니하고
남편의 이름을
따르게 된다.
그리고 그 여인은
남편의 이름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재산도 함께 공유한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결합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할 때
그의 모든 소유는
우리의 것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무한한 자원을
마음대로
쓸 수 있으므로,
다시는
그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을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