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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해방8-2) 율법의 교훈

작성자참복음|작성시간26.06.07|조회수2 목록 댓글 0

【 이글은

죄사함 받으신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

 

 

(율법해방8-2) 율법의 교훈

 

 

죄사함을 받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갑자기 로마서 7장의 경험에

돌입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그 이유를 모른다.

 

그들은 로마서 6장이면

아주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것을 이해한 다음에

 

이제 실패의 문제는

더 이상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때

그들 자신도 아연 실색할 정도로,

 

로마서 7장의 경험을 하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첫째로, 로마서 6장에 묘사되어 있는

그리스도와 함께한 죽음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두자.

 

죽음과

그 죽음으로부터 오는

 

모든 사실에 대한 설명은

6장에서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아직까지

 

7장에 제시되어 있는

진리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로마서 7장은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고 한

 

로마서 6장 14절의

말씀을 설명하고

 

또 실현시키기 위하여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율법으로부터의 구원을

 

아직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율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은혜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율법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어떤 거룩하고

의로운 요구가 있다.

 

그것이

율법이다.

 

그런데 만일 율법이,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이루기 위하여

 

나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시는 것을 의미한다면,

 

율법으로부터의 구원은

하나님이

 

더이상 나에게

그것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다만 하나님 자신이

그것을 공급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내가

그를 위해

 

무엇을 하도록

요구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율법으로부터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나의 그 의무를

면제시켜 주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은혜 안에서

 

그 의무를

이행해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여기서 "나"는 7:14의 "육신에 속한 사람" 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무 것도 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율법으로부터의 구원이다.

 

로마서 7장의 문제는

육신에 속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할 때,

 

당신은

자신을 율법 아래 놓는 것이며,

 

로마서 7장의 경험이

당신의 경험이 되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이해하려고 할 때,

 

율법 자체에 잘못이 있지 않다는 것을

처음부터 분명히 해두자.

 

바울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롬 7:12) 라고 말하였다.

 

율법에는 잘못이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 있다.

 

율법의 요구는

의로운 것이다.

 

그런데 그 요구를

이루어야 할 사람이 불의하다.

 

문제는 율법의 요구가

부당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요구를

이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100만원의 납세를 요구하는 것은

정당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지불할 수 있는 돈이

 

10만원밖에 없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나는

"죄 아래 팔린" 사람이다 (롬 7:14)

 

죄가

나를 주관한다.

 

당신이 나를

그냥 내버려두는 한,

 

나는 훌륭한 사람같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시킬 때

 

나의 죄악성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만일 당신에게

아주 서투른 하인이 하나 있는데,

 

그가 그저 가만히 앉아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그의 서투름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가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당신에게 거의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소한 그가 그렇게 함으로써

손해를 끼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에게

"이제 시간만 허비하지 말고

 

일어나서 일 좀 해라" 라고 말한다면,

즉시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는 일어서느라고

의자를 넘어뜨리고,

 

발 올려 놓는 대에

발부리가 걸려

 

몇 보 비틀 비틀

걸어가다가는,

 

귀한 접시에 손을 대자마자

몇 개를 깨뜨릴 것이다.

 

당신이

그에게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았다면

 

그의 서투름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그에게

무엇을 하라고 시키자마자

 

그의 서투름이

즉시 보여진 것이다.

 

그 요구 자체는 정당하였지만,

그 사람에게 잘못이 있었다.

 

그는

일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가만히 앉아 있을 때에도

똑같이 서투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활동을 하든 안하든 간에

 

언제나 그에게 있었던

그 서투름을

 

명백하게 나타낸 것은

당신의 요구였다.

 

우리는

모두 출생할 때부터 죄인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시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무사하게

지나가는 것같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자마자,

 

우리의 죄악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율법은

우리의 약점을 폭로한다.

 

당신이 나를

가만히 않혀 놓는 동안에는

 

내가

별 잘못이 없는 것같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시킬 때

 

나는 확실히

그 일을 망쳐 놓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나에게

또 한 번 일을 맡긴다 하더라도

 

그 일 역시

망쳐 놓을 것이 분명하다.

 

거룩한 율법이

죄 많은 인간에게 적용될 때,

 

그의 죄악성은

완전히 노출된다.

 

하나님은

내가 누구인지 아신다.

 

또 하나님은

내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죄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아신다.

 

하나님은

내가 육신을 입은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아신다.

 

그리고 내가 아무것도 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아신다.

 

문제는 내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나도

죄인이 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어떤 사람들처럼

 

그렇게 절망적인 죄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주 연약하고

 

전적으로 무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지점까지

 

우리 모두를

이끌어 오시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그렇게 말은 하지만

그 사실을 전적으로 믿고 있지 않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그 사실을 확신시켜 주기 위해서

어떤일을 하셔야만 한다.

 

율법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지를

알지 못하엿을 것이다.

 

바울은 그 지점에 도달했다.

그는 이 사실을

 

로마서 7장 7절에서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 외에 나머지 율법으로

그가 어떠한 경험을 하였든지 간에,

 

그의 진상을

적발해낸 것은

 

"탐내지 말라"는

열번째 계명이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완전한 무능력을 직면하게 되었다.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의 연약함은

더욱 더 드러나게 되고,

 

우리는 로마서 7장의 경험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된다.

 

마침내 우리가

가망이 없을 정도로

 

연약하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명확하게 입증된다.

 

하나님은

그 사실을 항상 알고 계셨다.

 

그러나 우리는 몰랐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사실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우리로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게 하셔야만 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이

의심할 여지없이 분명하게

 

우리 자신에게

입증되게 하여야만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이다.

 

그래서 우리는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주시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율법을 어기라고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것을 지킬 능력이 없음을 아셨다.

 

우리가

너무 사악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으신다.

 

지금까지 율법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신약성경 어느 곳에도

믿음의 사람들이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씀은 없다.

 

그러나 율법이

주어진 것은

 

범죄가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씀은 있다.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롬 5:20)

 

율법을 주신 목적은

우리를 범법자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물론 나는

아담 안에서 죄인이다.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롬 7:7-9)

 

율법은

우리의 성품 그대로를

 

폭로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너무 교만하고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여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가를

입증해 주기 위해

 

우리에게

어떤 것을 주셔야 한다.

 

마침내 우리는 그것을 깨닫고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나는

아주 철저한 죄인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 힘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아니다

율법은 우리가 그것을

 

지키리라는 기대 속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율법은

우리가 그것을 위반하리라는 것을

 

완전히 알고 있는 가운데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율법을 완전히 범하여서

 

우리의

필요를 깨달을 때

 

율법은

그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 안에서

 

그 율법을

이루시도록 했다.(갈 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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