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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1) 육체와의 싸움

작성자참복음|작성시간26.06.16|조회수13 목록 댓글 0

이 글은

죄사함을 받았으나

 

십자가 죽음을

통과하지 못하신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육체1) 육체와의 싸움

 

 

성령께서

 

첫 번째로

일하시는 것은

 

육에 속한 사람으로 하여금

죄에 대하여

 

'스스로

책망하게 하는 것'이다.

 

만일 죄인이 성령을 통해

죄를 알지 못한다면

 

그의 눈은

결코 자신의 죄됨을 볼 수 없고,

 

이로써 장래의 진노를 피하여

그리스도께 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두 번째로

 

죄의 본성을

알아야 하는데,

 

그리스도인은 또한 마땅히

자신의 죄의 본성에 대하여

 

스스로 유죄 판결을

내려야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육신의 특별한 상태가

 

얼마나 가증스럽고

사악한 가를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영

영에 속한 사람이 될 수 없다.

 

사람마다 범하는 죄들은

다를 수 있겠지만

 

우리가

육에 속한 자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지금은 우리가

죄사함을 받은 상태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무릎을 꿇을 때이고

 

우리가 다시

성령의 책망을 받을 때이다!

 

 

죽어야 할 필요성

 

 

이러한 죄사함 받은 이가

성령의 비춤을 얻으면 얻을수록

 

그는

육에 속한 그의 상태의

 

가련함을

알게 된다.

 

그가 육체와

투쟁하면 할수록

 

그의 육은

더욱 강해진다.

 

또한 그의 실패는

더욱 빈번해지고

 

더욱

드러나게 된다.

 

그가 실패할 때

성령은

 

더욱 그의 육체의

죄와 약함을 드러내 보이셔서

 

이로 인해 그가

자신을 한탄하고

 

육체 안의 죄와 싸울

결심을 하게 한다.

 

이러한 연속된 고뇌에

소모되는 시간은 적지 않다.

 

그러나 결국 십자가의

더 깊은 역사를

 

깨달을 때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성령께서

이러한 죄사함 받은 이를

 

이런 식으로

인도하여

 

많은 실패와 탄식을 하게 하는 데에는

성령의 깊은 뜻이 있다.

 

이는 십자가가

더 깊이 운행하기 전에

 

사람 편에

어떠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사람이

아무 장애 없이

 

십자가의 일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이렇게 죄사함 받은

 

이들을 인도하시는 것은

바로 예비 작업을 위한 것이다.

 

이러한 죄사함 받은 이의

체험에 의하면,

 

비록 하나님은

육체를,

 

구원할 길이 없는

형편없이 부패한 존재로 여기시지만

 

죄사함을 받은

이 자신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혹 그가

생각 속에서

 

하나님의 판단이

이런 것인 줄은 알겠지만,

 

그에게는

육체가 참으로

 

더럽고 부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영적인 안목이 결여되어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참이라고

여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보시는

자신의 과오는 알지 못한다.

 

따라서 죄사함 받은 이는

육체를

 

개선하려는

행동을 취한다.

 

이것을 입으로

밝히 드러내어 말하지는 않지만

 

사실상은

그런 것이다.

 

대부분 이런 부류의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모르기 때문에

 

싸우는 방법으로

육체를 이기려고 결심한다.

 

그들은

승부의 결정이

 

능력의 크고 작음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들의 육체를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더욱 큰 성령의 능력을

 

그에게

주시기를 구한다.

 

이러한 싸움에

얼마의 시간이 소모될지는 모르나

 

승리할 때가 적고

패할 때가 많으며

 

완전히 육체를 정복할

가능성은 없다.

 

이럴 때 믿는 이는

한 면으로

 

육체와

싸움을 진행하고,

 

또 한 면으로는

육체를 개선하거나

 

순종하도록

육체를 다루려고 한다.

 

그들은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많은 규정을 세우며,

 

육체를 정복하고

개선하며

 

극복하기 위하여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는 등의

 

많은 규례를 정한다.

 

또 그들은(무의식중에)

육체가 악한 것이

 

규칙과 문화와

교육의 결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육으로 영에 속한 훈련을 받게 할 때

 

육체의 피해로부터

해방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규례들이

육체를 제어하는 데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골 2:21-23)

 

*골 2:21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22 (이 모든 것은 쓰는대로

부패에 돌아 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

지혜가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믿는 이가 한 면으로는

육체를 제하려는 것 같고

 

다른 면으로는

그들의 행위로

 

육체를

개선하려는 것 같기 때문에

 

성령은 부득불

믿는 이의 실패를 허락하사

 

씨름과 괴로움과

송사를 허락하신다.

 

성령은 이러한 상태를

여러 차례 거치게 하신 다음,

 

육체가

구제불능이고

 

그들 자신의 방법이

쓸모 없으며

 

다른 방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들은 이로써

전에 생각 속에서 알고 있던

 

육체의 형편없음을

체험에서 알게 된다.

 

죄사함 받은 후의

육체와의 싸움의 결론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롬 7:24)

 

라는 탄식이

나오는 절망시점에 이르러야

 

사망의 몸인

나의 육신을

 

예수와

 

함께 죽는

십자가에

 

매달아

죽을 수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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