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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1)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의미는

작성자참복음|작성시간26.06.14|조회수17 목록 댓글 0

(예배1)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의미는

 

 

 

예배를 통하여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하나님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되는

영적인 통로이다.

 

 

물론 인간은

예배를 드릴때

 

자신의 모든 열정과 마음이

하나님께 향해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예배는

죄에 대한 회개의 예배였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속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살려 두시고,

 

그리고 앞으로도

속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속적으로

사랑해 주신다고 생각을 하였다.

 

이것이 일반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의 방법이었다.

 

 

물론 그들이 늘 성전에서

제사만 드리는 것은 아니었다.

 

회당에서 율법서를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경청하기도 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가

그들은 회개를 하기도 하였다.

 

 

그들이

회개를 하였다는 것은

 

진심으로 하나님께 다시금

돌아가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의 토로였다.

 

하나님은 이런 마음의 상태를

기뻐여기셨다.

 

 

사무엘때에도 이런 일은 있었다.

그들은 미스바에 모여서

 

사무엘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친다.

미스바에

 

이스라엘 백성이

모였다 함을 들은

 

블레셋 군대는 그들을

모두 죽이기로 생각하고, 침략한다.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그들이 미스바로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그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듣고 블레셋 사람을

두려워하여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소서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패한지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을 따라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삼상/7:5-11

 

진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갈때의

이스라엘의 모습이다.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의지했다.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은

온전한 예배,

 

즉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던 이스라엘 백성은 점차적으로

그들의 신앙이 바뀌기 시작을 한다.

 

이방신을 섬기기도 하고,

제사를 드리지만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51:17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15:22

 

 

위의 내용은 사울이 아말렉을 치고

들어 올때에 많은 짐승을 데리고 들어 왔다.

 

본래 하나님은 아말렉을 치면서

어린아이로 시작을 해서

 

생기있는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명을 내렸지만,

 

사울은 이에 응하지 않고

좋은 것은 모두 살려서 데리고 들어 왔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다.

 

 

사울의 변명은

이것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살려서 데려 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사무엘이 사

울에게 이야기를 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순종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청종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제사를

많이 드린다고 할 지라도,

 

순종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찾는 진실한 마음이 없으면

 

그것은 거짓 예배라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사무엘때로부터 시작을 하여,

 

아니 사사 시대에도 늘 상

있었던 이야기이다.

 

예수님이 오셨을때에도

그들은 이러한 일상적인 제사의 형태,

 

즉 예배의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배를

 

반드시 성전에서

제사라는 의식을 통해서 예배를 드렸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기의 사역을 시작하면서

 

참된 예배의 의미를 가르쳐 주셨다.

 

 

오늘날 교회에서 드리는 형태의

예배는 아니다.

 

물론 예배의 형식을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예배를 개혁한 것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모습에서

명확히 나타나고 있다.

 

 

아마도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의 내용은

모두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을 한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는 몇가지의

아주 중요한 핵심적인 내용이 들어 있다.

 

생수의 의미와 생수는 솟아난다는 의미를

해석해 주었다.

 

 

오늘날은 하나님의 은혜는

위로부터 내려오고,

 

채워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예수님은 정 반대의 의미로서

이야기를 했던 부분이다.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3:14

 

 

생수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번에 하기로 하고,

 

예배에 대한 이야기 부터

다시금 들어가고자 한다.

 

우선 간단한 내용을 말하려고 한다.

<요4장을 참조>

 

 

예수는 사마리아 지역으로

통과를 하다가 우물을 만나고,

 

우물곁에 앉아 있을 때에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온다.

 

물을 길러 온 여인에게

수는 '물을 좀 달라'고 한다.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은

대뜸 '당신은 유대사람이고,

 

나는 사마리아 사람인데

왜 말을 건넵니까' 라고 하면서

 

부정적인 의사 표현을 한다.

 

 

이때에 예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니라"

 

고 이야기를 한다.

 

예수는 먹는 물대신에

생수를 주었으리라고 답을 한다.

 

 

그러자 사마리아 여인은

다시금 예수께 관심을 가지며,

 

이 우물은 깊고,

물을 길을 그릇도 없다고 말하며,

 

이 우물은 야곱부터 있었으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냐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자 예수는 먹는 물은

계속적으로 목이 마르지만,

 

자기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준다.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3-14

 

 

그러자 여인은

런 물을

 

내게도 달라고

이야기를 하며,

 

예수의 말씀에

더욱더 귀를 기울인다.

 

예수는 그 말씀은

네 혼자 들을 말이 아니라고 하면서,

 

그 여인의 남편을

불러 오라고 하자.

 

그 여인은

자신의 남편은 없다고 이야기를 하자,

 

예수는 그 여인의 현재에 대한 상황을

정확하게 이야기를 하여 주신다.

 

"네가

남편이

 

없다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이말을 들은 여인은

이 사람이

 

보통사람이 아님을

즉각적으로 간파를 하고,

 

'당신은

선지자이다'라고 말을 한다.

 

 

선지자라고 고백을 한 여인은

예배에 대한 언급을 한다.

 

선지자의 임무가 바로

예배의 임무도 있기 때문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항상 예배에 대하여

사모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면서 자신들과 조상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했다.

 

 

여기서 이 산은

'그리심산'이며

 

예전에 모세가 율법을

순종하는 자에게는 축복이요,

 

따르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를 선포했던 산이었으며,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 산에서 제사를 드렸었다.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러자 예수는

이 여인에게 아주 중요한 교훈을 준다.

 

21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4:21-24>

 

 

위의 말씀속에서

예배의 핵심이 숨어 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으면

 

위의 말씀을

한 백번정도를 읽으면서

 

의미 파악을 한다면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말은

당시에 제사를 드리는

 

모든 행위가

필요없음을 역설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반드시 예배를 드릴때,

 

즉 제사를 드릴때에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찾았다.

 

하지만 예수의 말은

 

그리심산도 아니요,

예루살렘도 아닌 곳,

 

전 세계 곳곳에서

예배할 때가 온다는 것이었다.

 

 

이말은 그 당시에는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사마리아 여인은

 

너무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본다.

 

그 여인은

이 말을 듣고선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메시아가 오면

예배의 장소가

 

파괴된다는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예수는

바로 자신이 그 사람이다.

 

'메시아'라고 밝힌다.

 

 

나는 아직도 예수의 개혁,

 

즉 예배에 대한 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위의 글 속에

모든 것이 숨어 있다.

 

예수는 말을 하기를 23절을

다시금 잘 읽어 보기를 바란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음~~

 

아직도 깨닫지 못했는가?

 

그러면

이런 말을 하고 싶다..

 

39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40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요12:39-40

 

 

그러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무엇인가?

 

나도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로 인해

 

많은 고민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말 그대로

신령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정은

진지한 자세라고 해석을 하면 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명확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내 자신의 우둔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의미는

 

바로 23절의 의미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면 예배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가 있다.

 

23절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잘 보시길 바랍니다.

바로 이때라는 것이다.

 

이 때가

어느 때인가?

 

바로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이

함께 있는 그 시점이라는 것이다.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는 이때라는 것이다.

 

 

무엇을 이야기 했는가?

 

바로 '메시아' 즉,

예수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이제 이해가

약간은 되었다고 본다.

 

더 정확하게 말을 하면,

"이렇게" 라는

 

단어의 의미를

파악을 해야 한다.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과

메시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예수는 예배에 대한

참의미를 전달하면서, 너와 나 처럼,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처럼 대화하는 순간,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이제는 이해가

좀 되었을 것이라 생각을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겠다.

 

오늘날의

많은 교회의 예배를 보면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는

사라진지 오래다.

 

좀더 쉽게 말하자면, 예배를 드리면서

'예수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예배는 예배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말을 했다.

 

'나와 너가 주고 받은 말' 속에

예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

예배가 참 예배라는 것이다.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는 것이다."

 

바로 이어지는 말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지니라"

 

 

물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때마다

 

목사와 청중간의 대화가

꼭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꼭 교회에서

주일 대예배만을 정식예배로 보고,

 

나머지 수요예배나, 새벽기도회는

좀 덜 중요한 의미로 본다.

 

그런데 예수가 말하는 것은

주일 대예배가 더 중요하고,

 

가정에서 모이는 가정예배는

덜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예배가 드려지는 속에서

우리의 구원자 이신

 

예수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과연 오늘날 드려지는

예배속에서 예수가 있는가?

 

난 가끔씩 기독교 방송을 통해서 나오는

예배를 보면 코메디를 보는 듯하다.

 

예배에서 웃고 즐길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올바른 예배는 아니다.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있다.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성도들의 모습이다.

 

"목사님

은혜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예배는

 

거의 대부분 웃기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의 일이다.

 

 

그냥 하나님의 말씀만 100% 전할때는

절대로 이런 이야기가 안나온다.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간다.

 

그럼 설교한 목사는

쥐구멍이라도 찾아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목사는

그 어떤 것에서도 흔들려서는 안된다.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는

예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배 속에, 제사 속에 예수가 빠져 있었다.

 

이 부분은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속에서

언급을 하고 있다.

 

 

만일에 예수 믿는 두 사람이

공원이나, 식당이나 ,

 

한적한 곳에서

예수의 이야기를 했다고 하자.

 

우리는 이것을 그냥 전도 아니면,

자신의 신앙 간증정도로 끝난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이야 말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라는 것이다.

 

예배는 반드시 주일낮 예배만

정석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배의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든지 만나서

 

예수의 하신 일과

성경 말씀이 나누어 지면

 

바로 그 장소가

예배의 장소며,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라는 것이다.

 

곧 이때라는 것이다.

 

두 사람이

예수의 이야기를 하는

 

그런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는 것이다.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18: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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