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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죄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작성자참복음|작성시간26.06.07|조회수6 목록 댓글 0
5. 죄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성경은 우리 마음의 거울

 

 

성경에는

고상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야기는 얼굴이 뜨듯하여

읽어나가기가 민망한 내용도 없지 않다.

 

시아버지가 며느리하고 관계를 가지고,

딸이 아비와 관계를 가지는 등

 

거룩한 책에

별 해괴망측한 이야기까지 써 놓았다.

 

유다가 자기 며느리인 다말과 관계하여 아이를 낳고,

롯이 자기 딸들하고 관계를 가지고, 오빠가 여동생하고…등등,

 

세상의 다른 책은 비교적 좋은 이야기를 쓰지

나쁜 이야기는 쓰지 않는다.

 

나쁜 것은 가능하면 숨가려 한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 마음의 거울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들추어낸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음탕한 생각이 있어도 점잖은 척하며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어도

간사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성경 속에는 갖가지 이야기, 음탕하고 추한 이야기도 있다.

우리 마음에 바로 그런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그것을 들추어내어

우리에게 깨닫게 하려고 기록되었다.

 

우리 마음에 더러운 것이 없다면

더러운 이야기 는 안 썼을 것인데,

 

우리 마음에 추하고 더러운 것이 많기 때문에,

성경은 그런 것을 다 들추어내어 우리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먼저 우리가 생각하는 나쁜 것들,

다시말해서

 

우리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죄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죄란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죄를 본 사람은 없다.

 

때문에 ‘이것이 죄다.’하면서

딱 들추어내지는 못하지만 죄라는 것이 있다.

 

 

 

죄로부터 벗어나는 길

 

 

마음의 죄를 그려볼 수 있다면

아, 죄가 이렇게 생겼구나 하고 쉽게 알겠지만

 

죄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려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죄를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장티푸스에 걸린 사람은

피를 빼내어 현미경으로 보면,

 

장티푸스 병균이 움직이며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죄는 끄집어내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엑스-레이(X-Ray)로 찍어도,

피를 뽑아서 검사를 해도 보이지 않으니까

 

죄가 치료되어도

나았는지 안 나았는지 증거할 수도 없다.

 

그래서 증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다.

 

오늘날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죄가 씻어진 것을 확인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려고 하지 않는다.

 

산기도나 방언이나 예언이나 하면

죄가 씻어진 줄 알고 있고,

 

또 눈물이 흐르고, 마음이 뜨거워져야 죄가 씻어진 줄로 생각하는

미신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날 교회 안에 미신이 성행하고 있다.

기분이 좋으면 죄가 씻어졌고,

 

기분이 나쁘면

죄가 씻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다.

 

사람의 기분과 상관없이

확실하게 죄가 씻어지는 방법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씻어주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을 뿐 아니라,

우리의 죄가 씻어지는 과정을 자세히 가르쳐주고 있다

.

하나님은 사람이 ‘이렇게 되어 우리의 죄가 씻어지는구나.’

하고 깨닫게 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구약 66권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런데 사람들이 성경을 잘 모르니까,

어떻게 하면 죄를 사함받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죄도 해결되지 않은 사람에게

“죄를 짓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십일조 내라” “성경 읽어라” 하면

부담만 되는 것이다.

 

확실하게 죄를 씻음받은 사람은

하룻밤을 지내 보면

 

자기 마음에 성령이 들어와서

자신이 변화된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깨닫는 일이다.

 

죄 사함을 받는 것은

환자가 병에 가는 것 과 같다.

 

병원에 가면 의사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청진기를 대고 진찰을 한다.

 

“증세가 어떻습니까?” 하고 물으면,

환자는 그대로 이야기를 해 줘야 한다.

 

거기에 맞는 처방이 나온다.

영혼의 병원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각 사람의 상태가

어떠한 것인가를 의사가 진단하고

 

그에 맞는 약을 처방하는 것과 같이

영혼의 병 또한 자신이 어떠한 병(죄)인가를 고하면

 

의사(하나님)는

그에 맞는 처방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의사는 약을 처방하지만 하나님의 처방은

신구약 성경의 말씀으로 처방을 하신다

 

죄를 사하는 이야기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굉장히 많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것이

‘죄 사함 받는 법입니다.’라고 쓰여있지 않다

.

하여튼 성경에는

죄 사함을 받는 이야기가 참 많은데,

 

그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고

한 가지만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여러분이 이 이야기를 잘 읽고

죄 사함 받게 되기를 바란다.

 

 

 

성소의 피흘리는 제사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들은 성막을 만들었다.

 

히브리서 8장 1절에서 5절 말씀을 보자.

 

이제 하는 말이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이러므로 저도

무슨 드릴 것이 있어야 할찌니라.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좇아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여기에 두 개의 장막이 나온다.

1절 아랫부분에,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2절에

성소와 장막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참 장막이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다.

 

다음 5절을 보면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그러니까 장막에는

두 개의 제단, 두 개의 성소,

 

두 개의 장막,

두 개의 성전이 있다는 것이다.

 

두 개의 장막과 두 개의 성전이 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성소가 있는데,

 

하나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지은 것이 아닌

하늘 나라에 있는 성소라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하늘 나라에도 제단이 있고 성전이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광야에서

이 땅에 또 하나의 성소와 제단을 만들었다.

 

그 제단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하늘 나라에 있는 성막을 보여주시고 만들게 하였다.

 

거기에는 제단이 있고,

떡상이 있고, 법궤가 있고,

 

물두멍이 있는

그 모든 것을 다 보여주시고

 

너에게 보여준 그대로

이 땅에 모형을 하나 만들어라.고 하셨다.

 

히브리서 8장 5절에서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라는 말이 이해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늘 나라에 있는 성전과 법궤와 제단을 보고

 

그 모양 그대로

이 땅에 지으라고 한 것이다.

 

하늘에 있는 제단의 모양을 그대로 본따서

이 땅에도 인간들이 제단을 만들었는데

 

원본은 하늘 나라에 있고

이 땅에 있는 것은 모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지을 때마다

그 모형 앞에서 제사를 드렸다.

 

제사장들이 법복을 입고

양이나 소를 잡아서 피를 뿌렸다.

 

그러면 그 제사를 어떻게 드려야

죄가 씻어지는지를 보겠다.

 

구약 성경 레위기 4장,

구약 성경 150페이지, 27절부터 보자.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 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에서 잡을 것이요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고,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희생의 기름을

취한 것같이 취하여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여기에 번제소, 번제단,

단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모두 성막에 있는 것들이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이

죄를 지어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데

 

아무 곳에서나 드리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제단 앞으로 나와야 한다.

 

제단 앞에 와서

어떻게 죄를 사함 받는지 보자.

 

만일 한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하자.

레위기 4장 27절부터 보자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 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죄 사함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은

첫\째로 죄를 지어야 한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죄에서 용서를 받지 못했다.

 

두 번째는 죄를 깨우침 받아

내가 죄인임을 깨달아야 한다.

 

바로 이런 사람만이

죄 사함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

 

그런데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본래는 자신을 죽여 드려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기를 대신해서 죽어줄 한 생명,

흠 없는 암염소를 한 마리 끌고 오라고 했다.

 

여기 한 죄인이 있다고 하자.

지금이 구약시대라면

 

이 사람이 죄를 용서받으려면

흠 없는 암염소를 한 마리 끌고 와야 한다.

 

흠이 없다고 하면

이 염소는 죄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염소를 끌고 온 사람은

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의 진노는

염소를 끌고 온 죄인에게 임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분은

 

“염소(양)야, 미안해.

내 죄를 대신해서 네가 좀 죽어 줘.”

 

하고 염소를 끌고 온 것이다.

하나는 죄인이고, 하나는 깨끗한 염소이다.

 

이 염소(양)가 이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려면

이 사람의 죄가 염소에게로 건너가야 한다.

 

죄가 건너가지 않으면 벌을 받을 수가 없다.

그럼 죄가 어떻게 넘어가는가가 중요하다.

 

죄가 볼펜 이라면 쑥 빼내면 되고,

죄가 양복이라면 벗어버리면 되는데,

 

죄는 만질 수도 없고

들어 옮길 수도 없다.

 

그이처럼 우리 눈에는 죄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죄가 보인다.

 

레위기 4장 28, 29절을 보면,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라고 되어 있다.

 

속죄제 희생이라는 것은

양이나 염소를 말하는데,

 

그러니까 죄인이

이 양의 머리에다가 안수를 한다.

 

왜 안수를 하는가.

 

우리가 쓰고 있는 전기는 발전소에서 만들었다.

그 발전소로부터 전기를 끌어오기 위하여 전선을 연결한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죄를

염소로 넘어가게 하는 것이 안수라는 방법이다.

 

 

 

염소의 피로 제사하는 것은 모형

 

 

안수를 함으로 죄가 넘어간다고

레위기 16장 21절에 기록되어 있다.

 

안수를 하여 죄인의 죄를 넘겨야

염소(양)가 대신 죽을 수가 있다.

 

그러면 죄인이 죄를 넘기는 예식을 보자.

제사장이 말한다.

 

“그대는

그대의 죄를

 

염소(양)에게

넘기기 위하여

 

염소(양)의 머리에

안수를 할지어다.”

 

이제 죄인이

깨끗한 염소(양)의 머리에 안수를 했다.

 

그럼, 이 죄인의 죄가

염소(양)에게 건너갔다.

 

건너가는 걸 보지도 못했는데….

죄인이 안수를 했는데,

 

죄가 건너갔는지 안 건너갔는지

우리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죄가 건너가는 것을

눈으로 똑똑하게 보고

 

믿음을 가지려고 하면

절대로 가질 수가 없다.

 

돋보기를 갖다 놓고 봐도

죄가 건너가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안수하면 건너간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안수할 때 죄가 건너가는 것이다.

 

여러분이 믿든지 믿지 않든지 그것은 자유이나

성경에는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죄인이 염소(양)에게 안수를 했는데,

안수하면 죄가 건너간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까

 

죄가 건너간 것이다.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시지 않는 분이다.

 

손가락만한 물고기를 잡아놓고

팔뚝만한 고기를 잡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말하는 사람에 따라

물고기가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마음에

이런 것이 있으면

 

이런 것이 있다고 이야기하지

다르게는 말씀하지 못하신다.

 

그러니까 죄가 건너가기 때문에 건너간다고 하지

건너가지 않는데 건너간다고 하실 수가 없다.

 

일단 안수가 끝났으면

죄가 건너갔다

 

죄을 진 사람에게 죄가 남아 있지 않다.

염소에게 모두 건너 갔다.

 

하나님의 말씀은 안수를 한 뒤

죄를 진 사람에게는 죄가 없고

 

안수한 염소(양)가 죄인이 된다.

죄인이 아니라 죄염소(양)이다.

 

이제 제사장은 허리춤에서 시퍼런 단도를 꺼내

염소(양)의 목덜미를 잡고 동맥을 찔러서 피를 받는다.

 

염소(양)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죽는다.

 

그러면 제사장은

염소(양)의 피를 가져다가 제단에다 뿌린다.

 

제단의 뿔에 벌겋게 칠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이다.

 

죄를 위하여 죽은 증거로

피를 칠하고 남은 피는 제단 밑에다 쏟아 버렸다.

 

그 다음에 똥이나 내장 같은 찌꺼기를

전부 불태워 버리면 제사가 끝난다.

 

그러면 이 사람은 죄를 씻은 사람이 된다.

 

이것이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속죄제사이다.

이제 이 사람은 죄를 씻었고 의로운 사람이 된다.

 

죄가 없다.

이 사람은 거룩해졌고 깨끗해졌다.

 

그런데 거룩한 생명이 한 시간, 두 시간,

한 열흘 동안은 무사하게 잘 지냈는데

 

열흘이 지난 뒤에

대대로 벼르던 원수를 만났다 하자.

 

“너 잘 만났다.” 하고 욕을 하고 싸움을 했다.

이 사람이 이제 의롭고 거룩한가?

 

아니다.

정신없이 싸우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아이고, 그 비싼 염소(양)를 잡아 가지고

  제사를 드려 씻은 죄인데…

 

  의가 다 깨어졌네. 에이-

  그 놈의 원수를 만나 가지고….”

 

괴로워하며 눈물을 흘리다가 할 수 없이

또 가서 염소(양)를 한 마리 사올 수밖에 없다.

 

시장에 가서 염소(양)를 보고

머리도 만져 보고 왼쪽 다리도 들어 보고

 

가슴도 보고 꼬리도 보고

흠이 없으면 가져와서 제사를 드려야 한다.

 

이런 제사가 구약 시대에 계속되었으며

제단에는 피가 강물처럼 흘러간다고 했다.

 

솔로몬은 1천 번제를 드렸다.

돈 많은 사람은 천 마리씩 제사를 드리지만,

 

염소(양) 한 마리에

10만 원 해도 1억이나 되는데,

 

우리는 제사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할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편에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인간을 참 사랑하시는데,

죄가 가로막혀서 인간을 사랑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마음이 안타까우신데

이 사람이 염소(양)를 잡아 제사를 드렸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뻐하셨는데

두어 시간 지나서 또 죄를 짓는다.

 

하나님이 사랑하려고 하면 또 죄를 짓고,

사랑하려고 하면 죄를 짓는다.

 

그 제사는 아무리 드려봐도

그때 죄밖에 씻지 못하기 때문에 안 된다.

 

그러니까 염소(양)를 잡아서 드리는 이 제사는

실제가 아니고 모형이라는 것이다.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형을 주셨는가 하면,

 

하늘 나라 성전에 있는 제단에서

양이 죽어 우리 죄를 사하는데,

 

그것을

우리에게 깨우쳐주기 위해서

 

구약의 많은 제사장들이

수없이 염소나 양을 잡고 제사를 드린 것이다.

 

 

 

 

주님의 피로서 영원한 속죄제사를

 

 

 

하나님께서는

실제의 하늘 나라 성전에서

 

영원히 죄를

사하는 제사를 드리기 원하셨다.

 

그 영원한 제사는

이런 양이나 염소 새끼로는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양으로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그렇다면 우리의 죄가

예수께로 건너가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우리의 죄가

예수님께로 건너갈 수가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을 모른다.

 

내 죄가 예수님께로 넘어갔는지,

남아 있는지 아느 사람이 드물다.

 

또, 마귀는 우리를 얼마나 잘 꼬이는지

죄가 눈에 안 보이고 하니

 

마귀가 살그머니

우리에게 와서 이렇게 속삭인다.

 

너 죄 있잖아, 그날 죄 지었잖아, 거짓말했잖아.” 하면,

“아이구, 그렇지. 주여, 죄인입니다. 엉엉” 하고 운다.

 

매일 새벽마다 울어대니까

예배당 근방의 집값이 자꾸 떨어져서

 

예배당 주위 사람들이

예배당을 아주 싫어한다.

 

그러면 우리의 죄가 예수님께로 건너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건너갈 수가 있는가?

 

구약 시대에 양을 잡아 제사할 때는

안수를 해야 죄가 건너간다.

 

그럼 이 땅에 있는 수십억,

이 세상에 태어난 수백억의 인간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머리에다

안수할 수 있겠는가?

 

할 수 가 없다. 만일, 여러분이 모두 안수하게 되면

예수님의 머리는 닳아 없어질 것이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 보면,

 

한 사람이 죄를 지을 때는

자기가 양의 머리에 안수하지만,

 

온 국가나 회중이 죄를 지었을 때는

다 하지 않고 대표자 한 사람이 안수를 하도록 되어 있다.

 

구약 레위기 4장 1절부터 보면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로 넘기기 위해

한 사람의 대표자가 안수를 해야 한다.

 

마태복음 3장 13절을 보자.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푸는데

 

예수님이 가까이 왔다.

 

그때 요한은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라고 말했다.

 

그 다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고 하셨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데

 

의를 어떻게 이루는가?

 

의인은 죄인의 반대이니까

 

모든 의를 이룬다는 말은

우리 죄를 사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요단강에 내려가서

요한은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푼다.

 

세례를 베풀 때 머리에 안수를 한다.

 

이 안수가

전 인류의 죄를

 

세례 요한(요한은 마지막 대제사장)이 대표해서

예수님께 넘기는 그 과정이다.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났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셨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내려보내셔서

 

예수님에게 이 세상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해 죽으라고 하셨는데,

 

이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시니까

내 기뻐하고 사랑하는 아들,

 

내 말에

순종하는 아들인 것이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머리에 안수하고 세례식을 베풀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은 모든 인류의 대표자니까

모든 죄가 예수님께로 건너간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확실하게 대답해 주시길 바란다.

 

여러분의 죄가

언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넘어갔는가?

 

믿을 때 넘어갔는가?

 

만약 믿을 때 넘어갔다면 나는 지금 믿고,

예수님은 2천년 전에 죽었으니까

 

내 죄가 예수님께로 넘어가서

예수님이 죽은 것이 아니지 않는가?

 

예수님이

2천년 전에 돌아가실 때

 

우리 죄가 넘어가서 돌아가셔야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에게 효과가 있다.

 

우리 죄도 건너가지 않았는데

예수님이 돌아가시면

아무리 돌아가셔도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

 

내 죄 때문에 죽었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믿을 때가 아니고,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려고 생각도 하기 전에

 

예수님에게

우리의 모든 죄가 넘어갔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자녀들, 또 손자들까지

모든 인류의 죄를 영원히 짊어지고 가셨다.

 

여러분이 그것을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건너간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요한복음 1장 29절을 보자.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첫날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에

예수님이 오셔서 세례를 받고 가셨다.

 

이튿날 예수님이 요한에게 오셨다.

요한이 여기서 세례를 베풀며, 또,]

 

“회개하라.

세례를 받으라.” 고 외치고 있는데,

 

예수님이 저쪽에서 오셨다.

그때 요한이 뭐라고 했는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하기에,

 

보니까 죄를 지고 가는 것이

하나도 안 보였다.

 

어제 물에 빠져 세례를 받으시고

젖은 옷을 말려

 

좀 후줄그레한 것을 입으신 것 외에는

어제와 다름없이 예수님이 오셨다.

 

우리의 눈은

우리의 죄가 예수님에게로 옮겨진 것을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의 눈은 그 사실을 보실 수가 있었다.

세례 요한도 그것을 보았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 죄 속에 여러분의 죄는 빠지고

다른 사람의 죄만 들어갔는가.

 

구약시대에 안수를 함으로

양이 죄를 짊어지고 갔는데,

 

하나님의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짊어지기 위하여 오셔서 다 지신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예수님이 벌을 받아야 했다.

 

세상에 제일 죄가 많은 분이 누구냐 하면,

십자가에 못 박힐 때의 예수님이다.

 

온 세상 죄가 거기에 다 넘어갔으니까

죄가 너무 많고 더러워서

 

하나님도

얼굴을 돌리셨다고 하였다. 이사야 53장에는,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우리의 허물과 우리의 죄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되어 있다.

 

예수님께 내 죄가 건너간 것을

눈으로 확인해 볼 수는 없다.

 

죄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기를 가진 부인이 애기를 낳으면

해산한 것을 알 수가 있다.

 

몸은 물질이기 때문에

있다가 없어지면 눈에 띈다.

 

그러나 죄라는 것은

있든지 없든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마음속에 죄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기억이 나니까 사단은 우리의 기억을 이용해서

죄가 있는 것처럼 속인다.

 

기억이 나서 죄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기억이 나지 않으면 죄가 없어진 것인가.

 

그렇다면 기억상실증에 걸리면

다 죄 사함 받은 것이 되는가.

 

그것은 아니다.

기억이 나고 때로는 내 마음에 가책도 오지만,

 

그 죄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에게 건너갔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 죄는 예수님께 건너가서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심판을 받을 것이 없다.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물어보지도 않고

예수님이 다 받아 버렸다.

 

우리에게 허락도 안 받고 말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사랑하는 그분의 사랑이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도

여러분의 죄가 그냥 남아 있다면,

 

우리 주님은

너무 가슴 아파 하실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서

 

 

 

이제 성경을 찾아가면서

이야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해 보자.

 

히브리서 9장 11절 말씀을 보자.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그러니까 예수님은 인간이 만든

구약시대의 성막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참 성소에

들어가셨다는 이야기이다.

 

다음 12절,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여기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하는 말씀이 나온다.

 

구약시대에 모형에다가

제사를 드릴 때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했다.

 

그런데 하늘 성소에는 그것으로 하지 않고

예수님 자신의 피로 단번에 성소에 들어갔다.

 

양이나 염소로 하는 모형으로 드리는 제사는

죄가 씻어지기는 해도,

 

그때 죄밖에 씻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죄를 지을 때마다 계속하여 양을 잡고 염소를 잡아야 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그때

죄만 씻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영원히 씻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필요가 없다.

만일 죽을 필요가 있다면,

 

예수님은 지금이라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이다. 13절,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염소나 송아지를 잡아 제사를 드릴 때도

죄가 씻어지고 거룩해졌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도

죄를 씻을 수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죄를 왜 못 씻었겠는가?

 

저는 여러분이 믿도록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위해 피를 흘리셨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여러분을 주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죄를 씻은 것을 믿는다고 하는데,

“죄가 있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죄야 있지요.”

 

그건 믿는 게 아니라 아는 것이다.

 

완벽하게 주님이 죄를 씻어놓으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여러분의 마음이 죄에서 해방받을 수 있다.

 

죄 사함에 관한 것은 확실해야 한다.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의심이나 문제가 있어서는 안 된다.

 

히브리서 10장 10절을 보자.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우리가 무엇 때문에 거룩한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거룩한 것이다.

 

이걸 모르기 때문에

내가 거룩하려고 노력하나 가당치가 않다.

 

죄를 좋아하는 우리가

어떻게 거룩할 수 있는가?

 

거룩할 수가 없다.

다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셨기 때문에

우리는 거룩하다.

 

11절,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그건 그때 그 순간

나의 죄만 씻는다.

 

12절,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무슨 제사? 영원한 제사,

제사의 효력이 영원한 것이다.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영원히 거룩하게

또 영원히 온전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를 거룩하게 한 사실을 믿음.

 

내가 죄를 위하여

아무것도 할 일이 없도록

 

완벽하게 씻어놓으신

그 십자가를 믿으시게 되기를 바란다. 16, 17절,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와 여러분의 불법을

 

다시 기억지도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셨다.

 

만일, 여러분이 제게 나쁜 짓을 했는데,

제가 그것을 알고 있으면

 

저한테 오기가 좀 불편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다 잊어버리면 어떠한가? 괜찮다.

 

아내와 같이 살아오면서 제 아내가 잘못할 때가 있다.

그러면 그거 왜 그랬느냐고 나무란다.

 

그러다가 또 잘못하면

지난 번에도 그랬는데

 

자꾸 그러느냐고 그런다.

그때는 잊어버린다 해 놓고서 또 기억한다.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다.

잊어버린다고 하고서도

 

다시 그런 경우를 당하면

또 기억에 떠올린다.

 

우리는 기억을 안 하려고 해도

안 할 수가 없고,

 

어떤 때는 또 기억을 하려고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날 때가 있다.

 

그게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억을 안 하려고 하면 안 하고,

 

하고 싶으면 하고

하나님 마음대로 하신다.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면

아예 잊어버리는 분이다.

 

컴퓨터에서

프로그램을 빼내듯이 말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 죄를 전혀 기억지 아니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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