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죄사함의 확신
율법은 참 형상의 그림자
히브리서 10장에 있는 이야기를
같이 상고해 보기로 하자 .10장 1절,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율법은
그림자라고 했다.
불빛에 생기는 손의 그림자는
실상이 아니라 허상에 불과하다.
구약에 있는 율법대로
제사드리는 모든 것들은
앞으로 올 어떤 일의 그림자이지
그 자체가 참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그림자가 있다.
햇빛 아래에 자동차를 세워 놓으면
자동차의 그림자가 생긴다.
내가 서울 가고 싶다고
그 자동차의 그림자를
자동차인 줄 알고
타고 앉아 있다면 갈 수 없다.
그림자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림자는 참 형상이 아니므로
구약 율법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일들은
실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림자로써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구약에 보면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법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나왔다.
물론 그 일은
그 당시에 있었던 사실이지만,
참 형상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참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린양이 되어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다는 사실에 관한 그림자로
유월절에 양을 잡은 것이다.
그 당시 사람들은 그것이 참인 줄 알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또, 구약성경에 안식일에 대해 나오는데,
그 안식일도 하나의 그림자이다.
엿새 동안 힘써 일하다가 제칠일이 되면 쉬듯이,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괴로워하던 우리가
안식일의 주인되신 예수 안에 오면
참된 쉼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수 안에 와서 참된 쉼을 누리지 못하고
안식일을 아무리 잘 지킨다 해도
그것은
그림자에 매여 있는 것밖에 안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그림자에 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안식일에 밀밭에 가서 밀이삭을 잘라 먹을 수가 있었다.
그들은 예수 안에서 이미 참된 안식을 누리고 있었다.
그림자를 보고 실물을 깨닫듯이,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뜻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 율법에는
여러 가지 법이 있지만,
히브리서 10장에서는 특히 양이나 소를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부분에 대해 상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이 말은
율법에서 양을 잡아 드리는 그 제사가
그림자가 아니라
확실하게 죄를 씻어주는 온전한 것이었더라면
죄 때문에 괴로워할 필요가 없을 터이지만,
어디까지나 그림자였기 때문에
그 죄를
온전히 씻을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한다. 3절, 4절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하지 못함이라'
구약시대 제사는 능히 죄를 씻지 못하고,
없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만일 율법대로 양을 잡고, 소를 잡아 제사를 드려서
죄를 온전히 씻을 수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었다.
만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온전히 씻지 못했다면,
우리는 다시 양을 잡아
우리의 죄를 위해 제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온전하게 씻었기 때문에
다시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5절,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절,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하나님이 번제나 속죄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신다는 이유가 무엇인가?
구약에 양을 잡아드리는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7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 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두루마리 책이라 함은 구약성경을 의미하는데,
두루마리 책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이 이미 예언되어져 있고
그 말씀대로
예수님이 그 뜻을 행하러 왔다는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만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은 바보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할 줄을 아시면서
그렇게 살도록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살 것을 요구하시지 않았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이라고 믿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내 말을 지키고 행하면
너희들에게 복을 주겠다"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다 지키겠습니다" 하니까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다.
그러나 모세에게
그것만 주신 것이 아니라
"가서 성막을 짓고, 거기 제단을 만들어서
너희들이 죄를 짓거든 제사를 드려라" 고 하셨다.
그들이 말씀대로 살겠다고
아무리 굳게 결심을 한다 해도
안된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믿지 않으신다.
우리에게는 하나님 당신을 믿으라고 하시면서
왜 우리를 믿지 않으시는가?
저는 하나님이 우리를 믿지 않으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만일, 하나님께서
제가 정말 죄를 짓지 않고
훌륭하게 살 줄로 믿으신다면,
제가 얼마나 부담스럽겠는가?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넘어지고
쓰러질 것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에
성경말씀대로 사는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세우지 않으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
인간들의
죄를 해결하시는 것이다.
"인간들은 말씀대로 못사니까 내 아들 예수야,
가서 인간들의 죄를 사해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치실 때,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하셨다.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졌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선 이미 정해졌다는 것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는 말은
하늘에서 정한 그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소서' 라고 하셨다.
그러나 다음에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고 하셨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제일 마지막에 하신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었다는 뜻이다.
히브리서 10장 7절에도,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행할 수 있었다면,
구태여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오실 필요가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행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오신 것이다. 8절, 9절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 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여기서 첫 것을 폐하셨다는 말은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하여
양이나 소를 잡아 드리는
그 제사를 폐했다는 것이고,
둘째 것을 세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제물이 되셨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10절 말씀을 살펴보자.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여기서 우리가 거룩해지느냐, 거룩해지지 않느냐는
무엇으로 말미암아 되어진다고 이야기하는가.
'이 뜻을 좇아 우리가
죄를 짓지 아니하고 잘 살므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고
되어 있는가?
우리가 거룩함을 얻는 것은
우리의 손에 달려 있지 않고,
예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이
만일 우리가 행한 것에 의해 좌우된다면,
우리는 지옥 가기에 합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을
우리의 손에 맡기지 아니하시고,
예수님의 손에 맡기셨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느냐에 따라
우리가 거룩하게 되느냐 않느냐,
천국에 가느냐,
지옥에 가느냐가 판가름되어진다.
히브리서 9장 11절, 12절 말씀을 보자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구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 제사를 드렸지만,
예수님은 모형이 아닌 참이기 때문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예수님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염소나 송아지의 피는 그 순간밖에 못씻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이를 자세히 설명을 하겠다.
하늘나라에 가면 성전이 있다.
그 성전에도
제단, 물두멍, 법궤, 등대가 있다.
그 성전에 예수님이 들어가셔서
예수님 자신을 제물로 드려
우리 죄를 씻게 하시겠다고
하나님이 약속을 하셨다.
그런데 하늘나라 성전에서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피를 흘려 죄를 씻어 놓을지라도,
이 땅에 있는 우리들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늘 죄 때문에 고민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늘나라 성소에서 우리의 죄를 속하실 것을
창세 전에 정해 놓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하늘나라 성소에서 우리 죄를 사했을 뿐 아니라
죄가 사해진 것을 우리들에게
깨닫게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셨다.
하나님은
어느 날 모세에게,
"시내산 꼭대기에 좀 올라오너라" 고 하셨다.
모세가 시내산 꼭대기에 올라가니까
하나님의 계시로
하늘나라에 있는 성전을 보여주셨다.
모세의 눈 앞에 제단, 등대, 법궤가 있는
성전의 광경이 휘황찬란하게 나타났다.
"모세야, 다 보았느냐?""그러면 빨리 내려가서
이것과 똑같은 성소를 하나 만들어라"고 명하셨다.
하늘 에 있는 성전의 모형을
하나 만들라고 하셨던 것이다.
모세는 산에서 내려온 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이나 금, 동이 있는 사람들은 가져 오라 하여,
하늘에 있는 성전의 모양 그대로를 본떠서
성소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광야에 있는 성막이다.
광야의 성막이 하늘에 있는 성전의 모형이니까.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의식대로
모형인 성막에서도 제사를 드려야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했을 때,
그 죄를 씻기 위해서는
양이나 소를 잡아 제사 드리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지을 때마다
성막에 와서 제사를 드리곤 했다.
하나님이 왜 그 모형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겠는가?
모형인 성막에서 제사를 드려 죄를 씻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있는 성소에 들어가서
우리 죄를 그렇게 씻어주신다는 사실을
깨우쳐주기 위하여 보여주신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1절에,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하는 말씀이 이해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히9:11)
손으로 짓지 아니하고,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이라는 것은 모형이 아닌
하늘에 있는 참 형상의 성소를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하여
이 땅에 있는 모형인 성소에서 피를 흘리신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성소에서
피를 흘리셨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있는 성소에서
피를 뿌리신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땅에서 죽지 아니하시고,
십자가 위에 들려서
죽임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땅에서 모형으로 해마다 드리는 제사는
계속해서 드려도 여전히 인간의 죄를 다 씻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형이 아닌
참 형상인 하늘에서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완벽하게 씻으신 것이다.
여러분이 알든지 모르든지,
믿든지 믿지 않든지 간에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여러분의 모든 죄가 다 씻어 졌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예수님이 못 박히시는 것을 보셨다.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하실 때,
하나님도 마음이 아프셨다.
어쩌면 하나님은 속으로,
'조금만 더 참아라. 인류의 죄가 씻어지는 순간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 하시고 죽으셨다.
바로 그 때에 전 인류의 모든 죄가 십자가에서 다 씻어진 것이다.
완벽한 속죄제사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그 보혈은
구약에 양이나 소를 잡아 드리는 것처럼 모형이 아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하늘나라 법대로 우리 죄를 씻으셨다.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 속에 죄가 있지만
죄가 없다고 봐주는 것이 아니고
정당하게 죄가 남김없이 깨끗하게 처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식당의 식권을 누가 샀던 그것을 가지고 들어가면
식당주인이 돈을 내지 않아도 가만히 있는 데는 이유가 있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죄 없다 하실 때에도
다 이유가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의 대가를
예수님께로부터 충분히 받았기 때문에 죄 없다고 하신 것이다.
우리 속에 죄가 있는데도
없다고 하실 리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은 것이다.
내가 한국사람이 된 것은
돈을 많이 내거나 시험을 쳐서 된 것이 아니다.
운전면허증 딸 때는 땀을 흘리며 연습해서 합격되었지만,
한국사람이 된 것은 '응애' 하고 태어나자마자 자연스럽게 된 것이다.
제 실력으로 한국인이 된 것이 아니라
저의 아버지가 한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니까,
저는 자동적으로
한국사람이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면허증을 따는 것이나
자격증을 따는 것은 실력으로 되지만,
죄사함 받는 것은
실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라야 된다.
여러분, 나는 돈도 안냈지만,
누군가 뒤에서 식사비를 냈기 때문에 떳떳하게 밥을 먹고,
"밥 좀 더 주세요." "김치 좀 더요!" 하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은 배짱이 있어서도 아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고 구원받기 위해서
막대한 대가가 지불되었음을 알아야한다.
우리는 구원을 받을 때
당당하게 받았지 어정쩡하게 받은 것이 아니다.
우리 죄의 대가로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귀한 피가
뿌려졌기 때문에 당당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헛된 것이 아니다.
이 피는 너무나 소중하고 고귀한 것이다.
추하고 악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의 보혈을 흘리기는 너무 아깝지만,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 보혈을 흘려서
우리의 죄를 사해 놓으신 것이다. 10장 11절,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제사장이 매일매일 드리는 제사는 모형이어서,
그 때 그 순간만 씻을 수가 있었기 때문에
죄를 지을 때마다
자꾸 같은 제사를 드려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한번 자신을 드려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으므로 그럴 필요가 없다. 9장 12절,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예수의 피로
언제까지의 죄를 사해 놓으셨는가?
영원까지.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놓았다.
언제까지가 영원인가? 3672년까지? 4632년? 9928년?
영원은 그냥 영원이다.
끝이 없는 것이다. 9장 13, 14절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구약에 양이나 염소를 잡아도 죄가 씻어지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들의 죄를 못씻겠느냐는 것이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고
죄사함 받은 이전과 이후와의 차이가 무엇인가?
내가 죄사함을 받기 이전에도
내 마음속에서부터 죄가 사해지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하나님편에서는
죄가 이미 사해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죄사함 받는 그 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10년후에 죄사함 받거나
100년 후에 죄사함 받는 사람도
2,000년 전에 흘리신
십자가의 피로 받은 것이다.
구약시대의 다윗이나 아브라함도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흘린 피로
죄사함을 받았고,
예수님 당시의 베드로나 야보고, 요한,
디엘 무디나 마르틴 루터도
이 십자가의 피로 죄사함 받았듯이,
저도 그 십자가의 피로 죄사함 받았다.
내 뒤에 후손이
증손자, 고손자, 32대손까지 번성한다 해도
그 십자가의 피 외에는
그 죄를 씻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죄사함 받았다는 것은
지금 내 마음에 이루어진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2,000년 전에 이미
죄가 하나님 앞에 사해졌다.
죄를 위해 다시 제사드릴 것이 없다.
주님은 우리에게,
'너의 모든 죄는
다 해결해 놓았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이 사실만 믿으라'고 말씀하신다.
10장 12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사람들이 보기에는 온전하지 않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온전하게 했다면 온전한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틀린 것 같아도,
그 분이 맞다고 하면 맞는 것이다. 10장 15절∼17절,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여러분은 여러분의 죄를 기억하지만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 죄를 기억지 아니하신다고 하셨다.
만일 기억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우리 죄를 기억하신다면 하나님은 자격이 없는 분이시다.
제가 하나님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저는 누가 내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잊어버렸다가도
그 사람이 나중에 또 잘못하면,
'저 사람, 그 때도 그랬는데 또 왜 그러지?'하고
그가 잘못했던 것들이 기억난다.
잊어버리려고 해도 저는 그 때 생각이 나는데,
하나님은
우리와 이런 부분이 정말 다르다. 17절, 18절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이제 우리 죄를 위해서 해야 할 모든 일은
예수님이 끝을 내셨다.
우리 죄를 위해서 해야 할 모든 일은
십자가에서 끝이 났다. 19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말하고 있다.
죄를 적게 지어서 거룩하게 된 것이 아니다.
나쁜 일을 적게 해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저를 대신해서
저의 죄에 관한 모든 문제를 책임지셨다.
그 분이
온전하게 이루어놓은 사실을 믿는다.
제가 하나님 앞에 나가 보니,
하나님은 정말 저를 죄 없다 하시고 기쁨으로 영접하셨으며,
지난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저의 아버지가 되셔서,
순간순간 능력으로 인도하시고 역사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우리 죄를 사할 수 있었는데,
왜 이 땅에 성막을 만들고
제사드리는 법을 만들었는가?
그것은 양의 피로 제사하는 것을 통해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영원히 씻었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함이다.
그것을 알고 깨달을 때,
여러분의 마음이
죄에서 해방을 받고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전혀 거리낌없이 교통하며
사랑을 나누기를 바라셨기 때문에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셨다.
그리스도는 여러분이 저지른 죄보다
훨씬 더 큰 값을 치르셨다.
여러분이 어떤 죄를 지었든지
능히 깨끗해 질 수 있도록
2,000년 전에
피를 흘려주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