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글은
온전한 회개를 하신 분들을
위한 글로서,
죄사함 복음중 죄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
(믿음3) 중풍병자를 통하여 본 예수님의 마음과 죄사함
마태 9장 1-8절
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디.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로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하나님은
우리와 마음을 나누고 싶어하신다.
그런데 우리가
그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은
중풍병자가 위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면서
그 친구들의
믿음을 보셨다.
'이 사람들은
병자를 데리고 오면
내가 틀림 없이 고칠 것을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지붕을 뜯고
병자를 내려보낸 거야.'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너무나 놀라운 이야기를 하셨다.
중풍병자는 너무 감사했다
'주님,
내 죄를 사해 주시네요!.'
옆에 있던 서기관들은
속으로 판단했다.
'저 사람 예수,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자기가 무슨 죄를 사한다고
죄사함을 받았다고 해?'
똑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예수님의 영역 안에 있는 사람과
예수님 영역 밖에 있는
사람의 생각은 너무 다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생각, 계획,
그 모든 것들이 올바른 것 같지만,
예수님의 영역 안에 들어가서
예수님의 마음에 비춰 보면
추하고 더러운 것이
너무나 많다.
우리가 그 영역을 떠나서
예수님의 영역 안에 들어갔을 때,
'예수님이 내 병을 고치실 거야.
예수님이 나에게 일하실 거야'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예수님의 영역 안에 들어갈 때
예수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통하니까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 영역 안에
들어가 있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서
우리 죄를 사했다고 해도
"에이, 그럴 리가 있어?
죄 없는 사람이 어딨어?"
하고 말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딱 들어 보면,
이 사람의 마음이
어느 정도 예수님 안에 있는지가
느껴집니다.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마음이
예수님을 믿는 영역 안에 있는 것을
주님은 아셨다.
'그래, 네가 이 믿음을 가지고
나를 믿는 믿음이 있다면
병만 고침받는 것이 아니라
죄사함도 받을 수 있겠구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 사람은
예수님이 자기 병도
고치시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서기관들은
예수님 곁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예수님과 다른 영역에 있으니까
그것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어떻게 사람이 죄를 사해?
말도 안 돼!"
비난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우리가 볼 때는 어떤지 몰라도,
예수님이 보실 때에는
"일어나 자리를 들고 가라"는
말이 하기 쉽다.
그것은 그냥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는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 할 수 있는 말이다.
십자가의 죽음을 각오해야만
예수님이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실 수 있으니까,
어느 것이
쉽겠느냐는 것이다.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그 말은 그냥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어려운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고
말씀하신 것은
믿음을 보고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일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도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우리가
도저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한계에 매여 있지 않고
우리 한계 넘어서
일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가 다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이 작은 머리를 가지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만
하나님의 일을
우리 마음에 받아들일 수 있다.
이해해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어떻게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것을
이해할 수 있겠는나?
어떻게 병든 사람이 일어난 것을
이해할 수 있겠는나?
어떻게 중풍병자가 일어나 걸어간 것을
이해할 수 있겠는나?
우리 논리로는, 우리 생각으로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
아무개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만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들의 이해 안에
구속되면,
하나님이
우리들 속에서
우리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일밖에 하실 수 없으시다.
그러면 우리들을
구원하실 수 없다.
이해를 넘어서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일하셨다.
이 이야기에서 '소자'란 말은
중풍병자를 가리키지만,
'소자'라는 대명사를
쓴 이유가 어디 있느냐면,
예수님이
그 중풍병자에게 하신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하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우리들 모두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이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다.
"소자야!"
그 '소자' 안에 우리가 들어 있는 것이다.
'소자'는
우리 모두를 위한 대명사이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일일이 이름을
거론할 수 없어서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신 것이다.
이 말씀을 읽을 때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하면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가 아니라
"철수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영희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로
읽어야 한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직접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셨다.
이 이야기는
병을 고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다.
병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고쳐주시면 되지만,
죄를 사하는 것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죽으실 것을 각오하고
우리 죄를 사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신 그대로
십자가에 못박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셔서
우리 죄를 사하신 것이다.
내 영역을 벗어나서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만 읽으면
자, 이제 신앙은 굉장히 쉽다.
내 영역 안에서 생각하면
굉장히 어렵지만,
내 영역을 벗어나서
예수님의 마음의 세계를 조금만 읽으면
예수님의 마음을 알수가 있다.
"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구나!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시는구나!
그래서 우리 죄를
사해 놓았다고 이야기 하시는데,
우리가
그 말씀을 안 받고
죄인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이 얼마나 답답해 하실까?"
예수님의 마음이
내 안에 들어오면 그런 마음이 듭니다.
'내가 지금까지 정말 엉터리로 믿었네.
이제 내 죄가 사해졌네. 아멘!
주님, 믿습니다.
당신이 내 죄 사한 줄을 믿습니다!
당신의 말씀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병 낫기를 간절히 원하는
중풍병자의 마음을 받아들여서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셨을 때
중풍병자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또 예수님께서
"네 상을 들고 걸어가라."
하신 말씀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고
옆에서 이러쿵 저러쿵
판단만 했다.
예수님의 능력이
중풍병자에게 흐르고,
예수님과 중풍병자 속에
예수님의 마음이 들어오면서,
예수님 안에 있는 능력이
들어오면서
병을 이길 힘을
예수님의 마음 안에서 전달받은 것이다.
전기는 전선을 통해 흐르고,
수돗물은 파이프를 통해 흐르듯이,
하나님의 역사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흐른다.
우리들의 마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서로 오갈 때,
우리들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교통할 때,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기쁨이
우리 안에 물밀 듯이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들이 전과 같은 삶을 살려고 해도
더 이상 살 수 없는 것이다.
기쁘고 복되고 정말 영광스러운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을 우리들이
마음으로 믿어야 하는 것이다.
참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세계를 모르고
그냥
'내가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시겠지,
연보하면 좋아하시겠지,
성경을 읽으면 좋아하시겠지'하는데
아니다.
마음의 흐름인 것이다.
예수님의 마음을 읽고,
예수님의 마음에 가까이 가서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서
여러분이 해결하지 못한 모든 죄를
십자가에 보혈을 흘리심으로
이 천년 전에
단번에 영원히 대속하신
그 은혜와 마음을 받아들여
영원한 속죄를 누리시게 되기를 바란다
히 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히 10: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히 10:17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히 10:18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