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마태 5:5~7 "온유..." "의..." "청결..."
* 마태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프라우스)
즉, 진리가 되어
율법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안식하게 할 수 있는 자가
복이다.
왜냐하면 땅(성전)을
기업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그랬습니다.
즉, "온유가
됐다는 것은
셋째 성전이
됐다는 것이다!"
그런 말씀입니다.
* 마태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의'(디카이오쉬네)에
대하여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다.
그런말입니다.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율법을
진리로
바꿔주실 것에 대하여
굶주리고
목말라 하고
사모하는 자가
복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콜타조,
실컷 먹여주시기 때문이다"
그랬습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풍성하게 채워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내 안에
진리의 말씀이 채워지면
하나님에게만 있던 의가
내 안에 부어져서
'의가 된 자'
디카이오쉬네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의'를
사모하고
갈급하고
목말라 하는 자에게
실컷 먹여주세요.
* 마태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한 자...(엘레에몬)
'진리가 된 자'가
복이다!"
그런 말씀입니다.
그런데, "긍휼한 자를
긍휼하게 하겠다"
즉, "진리 된 자를
진리 되게 하겠다!"는 말씀은
철저하게 우리를
언약의 말씀으로
이끌어 가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언약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미 언약하신 그 말씀...
그 진리의 기차에 올라타야만
진리의 목적지로
갈 거 아닙니까?
그것이 긍휼한 자를
긍휼되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모하고, 갈급해 하고, 목말라 하고,
그 말씀 안에
거하는 자가
진리가
되는 것이지...
말씀과는 상관없이
그저 자기 생활에만 바빠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절대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긍휼하지도 않은데
우리를
긍휼되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말씀의 의미가 뭔지를
부지런히 찾아서 알고,
깨닫고,
그 내용을 알아야만
피스토스 '믿음인 자'
다른말로
엘레에몬
'긍휼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