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9와 F31 너머의 얼굴
추서희(26.0.09)
서류 첫 장에는 F19, F31이라는 코드가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숫자들을 보는 순간 이미 그를 분류하고 있었다. 위험한 사람, 어려운 사람,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사람으로. 나는 한숨을 내쉬며 딱딱하게 굳은 마음으로 서류를 응시했다. 다른 동료들이 사무실에 있는 시간을 확인하려 달력을 들여다보며 다시 한숨을 쉬었다. 상담 일정을 잡는 내 목소리는 기계적이었다. 나는 이미 그의 가슴에 이름표를 붙이고 있었다. 그는 빨리 해결해야 할 과제이자 업무였고, 관리해야 할 사례였다.
기소유예 세 번, 교도소 수감 두 번. 그에게 유일한 가족은 누나뿐이었다.
“필로폰을 오래 하셨군요. 비용은 어떻게 마련하셨어요?”
“불법 도박 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했어요. 그때 진짜 신나게 돈을 벌었어요. 지게꾼을 고용해서 판매하기도 했고요. 저한테는 돈이 제일 중요해요.”
마치 아침에 계란프라이를 먹었다고 말하듯 담담한 얼굴이었다.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질감을 느꼈다. 도대체 이 이십 대 청년은 어떻게 살아온 걸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십 대부터 그렇게 살아오게 된 걸까.
그의 이야기를 온전히 수용하고 환대하는 일은 불편했다. 돈만 벌 수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말하는 그의 태도는, 가난하더라도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고 믿어온 나의 세계를 흔들었다. 그는 너무나 낯선 사람이었다. 그의 존재는 내 생각을 흔들고, 내가 세워 놓은 질서를 깨뜨렸다. 그의 현재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내 안의 높은 문턱을 넘어야 했다.
“돈이 왜 그렇게 중요해요? 선생님에게 돈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한테 매일 맞았어요.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었어요. 그런데 술만 드시면 그렇게 때렸어요. 너무 맞아서 학교에 못 간 날도 있었어요. 그때마다 누나가 말리면서 울었고요. 누나랑 둘이 아버지가 교통사고 나서 집에 못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한 적도 있어요.
어느 날은 아버지에게 대답을 안 했다는 이유로 허리띠로 맞았어요. 너무 억울하고 아파서 아버지를 밀었어요. 그런데 밀리더라고요. 그때 처음 알았어요. 내가 아버지보다 힘이 세졌다는 걸요.그날 대든다고 흠씬 두들겨 맞고 집에서 쫓겨났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나가라고 해서 나왔는데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그때 결심했어요. 돈을 많이 벌어서 누나를 데리고 나와야겠다고. 누나는 내가 지켜야 한다고. 그래서 돈이 된다면 뭐든 했어요. 내가 아니면 아무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제 꿈은 누나랑 둘이 잘 사는 거예요. 그것 말고는 없어요.결국 누나를 데리고 나오기는 했는데, 아무리 돈을 벌어도 계속 허했어요. 껍데기만 남은 사람처럼 살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러다 약에 손을 댔고요. 그렇게 여기까지 흘러왔어요.”
그는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오히려 그의 고통이 내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그는 한때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였다. 상처받은 청소년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어 하는 한 인간이었다. 그 순간 그의 얼굴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판단하지 말라고. 나를 설명하려들지말라고. 나를 고치기 전에 먼저 들어 달라고.
문제들로 유형화되고 분류된 그 사람 앞에서 나는 조용히 문을 열었다. 내가 세운 단단한 울타리와 기준의 문을 열고, 그의 생애를 맞아들였다.
“그러셨군요. 정말 많이 힘드셨겠네요. 그렇게 버텨 오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얼마나 외로우셨을까요.”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나는 잠시 윤리도, 분석도, 판단도 내려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문제로 가득한 서류 한 장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사연과 맥락을 가진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 앞에서 윤리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타자의 얼굴은 나를 불편하게 한다. 내가 가진 경험과 신념, 판단과 확신을 흔든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응답할 수 있게 된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 이해한다는 말 자체가 때로는 오만일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고통 앞에서 도망가지 않을 수는 있다.
그날 나는 상담을 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얼굴 앞에 머물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레비나스가 말한 환대의 시작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