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다
자화상(自畵像)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숯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었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우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트린
병든 수캐만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10년째 자화상만 그린 서양화가 강형구는 "자화상은 '나'라는 고유명사를 그린 게 아니고 남들 속에 같이 존재하는 '나'라는 대명사를 그린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후설이 "너 자신 속으로 들어가라. 진리는 인간의 내면에 존재한다"라고 말하자 "인간의 내면 같은 것은 없으며 인간은 '세계-에로-존재'이고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세계 내에서이다"라고 대응한 메를리 퐁티와 같은 발언이지 싶다. 두 상반된 발언이 어떻든지 간에 미켈렌젤로가 "화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주장한 이래 많은 화가들이 자화상을 그렸는데, 누구보다도 고흐는 여러 장의 자화상을 통해서 자신의 내밀하고 과민한 욕구에 따른 자기확인을 거듭하곤 했다.
이런 자화상은 자기 내면의 순결성에 바탕한 것이건, 세계 내에서의 존재확인을 위한 것이건 대개는 부끄러움에 대한 고백의 미학을 추구한다. 우리나라 자화상 시의 양대 푯대는 윤동주와 서정주의 것이다. 알다시피 윤동주의「자화상」은 일제 말기라는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의 자기 내면을 응시하고 성찰하는 과정에서 쓰여진 부끄러움과 고독의 시이다. 물론 "바람에 이는 잎새에도 나는 괴로워했다"할 정도의 부끄러움과 성찰, 그리고 도덕적 순결성 등은 모두 시대의 암울함이 개인에게 가한 무게와 고통의 시적 표출임엔 틀림없다.
반면 위의 서정주의「자화상」은 '세계 내 존재'로서의 시인의 숙명을 예감케 하는 작품인 바, 저주받은 시인의 죄의식, 가난, 떠돌이의 '바람'과 '피'와 '이슬' 등을 격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우선 1연에서 회억되는 그의 집안은 모순된 사회 제도와 가난에 시달린다. 갑오년에 집 나가 돌아오지 않는 할아버지, 종인 까닭에 주인의 일에 매이어 밤 깊도록 돌아오지 못하는 아버지,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 그리고 아이를 가져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고 하는 어머니가 대추꽃 한 주와 흙벽에 일렁거리는 호롱불을 배경으로 가난에 찌들대로 찌들어 사는 모습이, 때가 낀 까만 손톱을 한 어린 아들, 곧 '나'의 눈에 포착된다.
그러다 여기서 갑자기 그는 시상의 흐름을 바꾸어 '나'의 지난 생애를 몇 마디 말로 요약한다. 스물세해 동안 '나'의 생애를 지배한 것은 8할이 바람이었다는 것이다. 바람은 즉 끊임없는 방랑, 세상 속에서의 시달림, 흙먼지와 추위 같은 것이란 걸게다. 그 속에서 '나'는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고, 어떤 이는 그런 '나'의 고통을 죄 값이라 하는가 하면 또 천치로 여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라고 감히 말함으로, 개인적인 괴로움과 역사의 시련이 겹친 자신의 초라한 삶 혹은 아픔을 뉘우침 없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고통은 되레 찬란히 트여 오는 아침 그의 이마에 얹힌 시의 이슬로 탄생되고야 만다. 비록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왔어도, 뜨겁고 사나운 동물성으로서의 `피'가 시라는 '이슬'에 이르는 조건이 되었으니, 이는 곧 괴로운 삶 자체가 창조의 열매가 될 수 있음을 상징한다.*
자화상(自畵像)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숯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었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우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트린
병든 수캐만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10년째 자화상만 그린 서양화가 강형구는 "자화상은 '나'라는 고유명사를 그린 게 아니고 남들 속에 같이 존재하는 '나'라는 대명사를 그린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후설이 "너 자신 속으로 들어가라. 진리는 인간의 내면에 존재한다"라고 말하자 "인간의 내면 같은 것은 없으며 인간은 '세계-에로-존재'이고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세계 내에서이다"라고 대응한 메를리 퐁티와 같은 발언이지 싶다. 두 상반된 발언이 어떻든지 간에 미켈렌젤로가 "화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주장한 이래 많은 화가들이 자화상을 그렸는데, 누구보다도 고흐는 여러 장의 자화상을 통해서 자신의 내밀하고 과민한 욕구에 따른 자기확인을 거듭하곤 했다.
이런 자화상은 자기 내면의 순결성에 바탕한 것이건, 세계 내에서의 존재확인을 위한 것이건 대개는 부끄러움에 대한 고백의 미학을 추구한다. 우리나라 자화상 시의 양대 푯대는 윤동주와 서정주의 것이다. 알다시피 윤동주의「자화상」은 일제 말기라는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의 자기 내면을 응시하고 성찰하는 과정에서 쓰여진 부끄러움과 고독의 시이다. 물론 "바람에 이는 잎새에도 나는 괴로워했다"할 정도의 부끄러움과 성찰, 그리고 도덕적 순결성 등은 모두 시대의 암울함이 개인에게 가한 무게와 고통의 시적 표출임엔 틀림없다.
반면 위의 서정주의「자화상」은 '세계 내 존재'로서의 시인의 숙명을 예감케 하는 작품인 바, 저주받은 시인의 죄의식, 가난, 떠돌이의 '바람'과 '피'와 '이슬' 등을 격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우선 1연에서 회억되는 그의 집안은 모순된 사회 제도와 가난에 시달린다. 갑오년에 집 나가 돌아오지 않는 할아버지, 종인 까닭에 주인의 일에 매이어 밤 깊도록 돌아오지 못하는 아버지,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 그리고 아이를 가져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고 하는 어머니가 대추꽃 한 주와 흙벽에 일렁거리는 호롱불을 배경으로 가난에 찌들대로 찌들어 사는 모습이, 때가 낀 까만 손톱을 한 어린 아들, 곧 '나'의 눈에 포착된다.
그러다 여기서 갑자기 그는 시상의 흐름을 바꾸어 '나'의 지난 생애를 몇 마디 말로 요약한다. 스물세해 동안 '나'의 생애를 지배한 것은 8할이 바람이었다는 것이다. 바람은 즉 끊임없는 방랑, 세상 속에서의 시달림, 흙먼지와 추위 같은 것이란 걸게다. 그 속에서 '나'는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고, 어떤 이는 그런 '나'의 고통을 죄 값이라 하는가 하면 또 천치로 여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라고 감히 말함으로, 개인적인 괴로움과 역사의 시련이 겹친 자신의 초라한 삶 혹은 아픔을 뉘우침 없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고통은 되레 찬란히 트여 오는 아침 그의 이마에 얹힌 시의 이슬로 탄생되고야 만다. 비록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왔어도, 뜨겁고 사나운 동물성으로서의 `피'가 시라는 '이슬'에 이르는 조건이 되었으니, 이는 곧 괴로운 삶 자체가 창조의 열매가 될 수 있음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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