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주*
오늘 밤에는 나도 눈처럼 녹을 것이다. 눈 그치고, 고즈넉한 윤회, 계절의 끝은 절박하다. 미친 사람도 단 한 번, 마지막엔 제정신으로 돌아오듯 너를 보내던 새벽길이 그러했듯 웅웅웅 다시 별들이 하늘을 돌고 갑자기 생각난 듯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근처 공원에서 며칠씩 같은 사람을 만나기도 했지만 한 번도 그의 별자리를 묻지 못했다. 죽은 나무들과 한참 이야기하다보면 문득 먼저 간 시인이 그리워 쓸쓸한 시구에 더러워진 발을 헹군다. 퉁퉁 부어 있는 그대 정신이여 오오, 쇳내 나는 마지막 광대뼈여.
활자들의 날카로운 화살촉에 찔려 잠드는 밤, 천렵의 끝에는 늘 살 그을린 석유 냄새가 달게 밀려든다. 맹수의 이빨 사이에 낀 꿈의 살점들이 선명하다. 맨 뒷장 ISBN 번호처럼 암호로 떠돌다가, 천천히, 나도 언젠가 저 별의 윤전기 밑에 깔려 생을 마칠 것이다.
* 이연주(1953~1992). 시인. 시집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세계사, 1991) 『속죄양, 유다』(세계사, 1993)가 있음.
갈라파고스, 서울
이정표가, 무성한 갈대처럼 돋아 바람의 향방을 읽어보지만
따라가보면 모두 한곳이다. 화살의 직관을 버리고 고향을 물어보면 사람들,
다 파도처럼 살았다. 밤을 밀며 가거나 혹은 저기 밀려오는
취객들의 출렁이는 이마 아래 곤한 갈매기, 숨은 그림처럼 아득하다.
또륵또륵 알등은 모의(謀議)처럼 빛나고, 춥다. 회빛의 거대한 숲이
검은 구름들을 목젖 아래까지 당겨 덮는다.
온몸이 휜 저녁의 빗줄기가 한바탕 환한 우산꽃들을 몰고 간다.
은밀한 피리 소리가 제 안의 짐승들을 불러내면
철벅거리는 밤의 우듬지에 모여 어른들, 서럽게 알을 슬고
멧새 부리 같은 당신의 입술은 꾹꾹 낡은 비애를 되씹는다.
비릿하고 촉촉한 슬픔이 유전된다. 입에서 입으로 건너온,
경계에서 피고 진 이곳의 오랜 기원에 관해서는 서로 모른 체하기로 한다.
변종(變種)의 사이렌 소리가 급히 창밖 도로에 금 긋는다. 놀라 갈라서는,
군상의 섬 사이를 실뱀처럼 미끄러져 가는 바람, 바람에게 빌린
한 칸의 방에선, 당신도 너무 멀다.
― 『서봉氏의 가방』, 문학동네,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