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순
액자 속에서
그가 웃고 있다
이마의 주름살과
흰 수염 사이로 스며든 햇살의 윤곽에서
그가 이승에서 건너려 했던
강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분향소의 사람들이
액자 속의 그와 짧은 눈맞춤을 하는 동안
상주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다
그의 등 위에 내려앉는 촛불의 어룽거림 속에
잠시 극락의 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다
곡성군 목사동면 연화리
나는 그의 마지막 주소를 안다
물앵두꽃 환히 피고
물안개가 밥솥의 김처럼 솟아오르는 강마을이다
물안개 십리 길
조각배를 젓고 가며
그와 하루종일
죽순을 꺾었던 날이 내게도 있었다
숲길
숲은
나와 함께 걸어갔다
비가 내리고
우산이 없는 내게
숲은 비옷이 되어주었다
아주 천천히
나의 전생이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숲의 나무들은
자신들의 먼 여행에 대해
순례자에게 얘기하는 법이 없었다
세상의 길 어딘가에서
만년필을 잃은 아이가 울고 있을 때
울지 말라며 아이보다 많은 눈물을 흘려주었다
목적지를 찾지도 못한 내가
눈보라 속에 돌아올 때도
숲은
나와 함께 걸어왔다
분홍색과 파란색 별들이 반짝이는 이유
초록빛과
연보랏빛
반딧불이 두마리가 새로 태어났다
자신과 다른 빛의 반딧불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세상이라고
나이 든 별들이
어린 반딧불이들에게
밤새 얘기해주는 것이었다
― 『와온 바다』, 창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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