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中野重治 (1902-1979) 나가노시게하루
1902년11월25일 출생 ~ 1979년8월24일 사망. 소설가, 시인, 평론가. 후쿠이현 출신.
제4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단카(短歌), 시, 소설을 씀. 1924년, 동경제대 독문과에 입학.
재학 중 창간한 동인지 [나상(裸像)], [여마(驢馬)]에 [새벽이 오기 전에 안녕], [노래]와 같은
시와 평론들을 발표, 주목을 받는다.
1926년, 마르크스주의 예술연구회(마르예)를 만들었으며,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의 신세대로써
프롤레타리아 예술연맹에 참가. 후에, 프롤레타리아 예술연맹의 분열, 1928년 NAPF 결성에
있어서 중심적 역할을 하고, 같은 해, 쿠라하라 코레히토(藏原惟人) 와의 사이에서 예술 대중화 논쟁을 전개. 1931년, 일본 공산당에 입당, 1932년 검거되었으며, 1934년 전향 출옥.
*NAPF - '일본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 (Nihon Artist Proletarian Federation)
같은 해에, 평론으로, 혁명운동전통의 혁명적 비판에 동참하는 생애의 주제를 이야기 하며
전향자가 싸우는 저항선을 나타내고, 1935년, 전향소설의 백미라고 일컬어지는 [마을의 집]을
발표. 전후 곧, 일본 공산당에 재입당. 신일본문학회 창립. 아라 마사히토(荒正人),
히라노 켄(平野謙)등과 함께 [정치와 문학 논쟁]을 전개.
[五勺の酒](1947년)에서, 새로운 형태로 일본 공산당과 천황제에 접근했다.
같은 해 참의원 의원에 당선. 당원문학자로써 다망한 가운데 자전적인 장편 [むらぎも](1954년), [梨の花](1959년)를 발표. 1964년, 부분적 핵실험 정지 조약 문제로 일본 공산당으로부터 제명. 직후에 대작 [甲乙丙丁]을 집필. 치열한 당 비판을 하여,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생애에 혁명운동비판의 과제를 성취했다. [나카노 시게하루 전집] 전28권(1976년~1980년, 치쿠마쇼보) 이 있다.
<스스로가 지향하는 바>
프롤레타리아파의 작가라는 것을 알기 전에 이 시를 읽었을때는 남성적인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맨 첫줄에 나오는 歌(うた)うな는 금지형이 아닌 ~구나의 뜻으로 읽어 너는 노래하는 구나 라고
읽어내려갔지만 6~7째줄에 가서는 금지형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왜 아름다운 꽃이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잠자리의 얇디얇은 날개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지말라고 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잠자리로 보아 계절 배경은 가을로 보인다. 가을의 푸른 하늘 아래 살랑거리는 바람의 속삭임과
그 바람에 맞춰 흩날리는 여성의 머리카락. 그리고 감도는 향기를 노래하지말라고 한다.
歌(うた)う는 노래라는 뜻 뿐만이 아니라 시를 읊는 것도 칭한다. 이 화자는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가냘픈 것, 시의 운치를 살리는 자연을 배척하라 한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오로지 정직한 것을
마음에 보탬이 되는 것을 쓰라하며 가슴에 맺힌 한을 쏟아부어 맞서 싸운 것이 가슴에 절절히 울리는
격정적인 시를 쓰라고 말하고있다. 그러한 시로 인해 떠나가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주입될만큼 강렬함
을 원한다. 이것은 당시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정부에 의해 탄압받고 작가들이 감옥에 끌려가는 등
심한 압박으로 인해 전향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다시 불타오르게 하는 시를 쓰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行(い)く行(い)く를 지나가는 사람들, 걸어가는 사람들이라고 해석하게되면 프롤레타리아에서 전향한 작가들이 아닌 무심히 그 시대를 별 감각없이 살아가는 일반인들에게 동조를 원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정신적인 개혁, 깨달음을 강하게 바라는 마음에서 쓴 시라서 그런지 몰라도 한국말로 바꾸었을때 매우
격한 의미를 가지고있다. 운치를 배척하고, 가슴 끝까지 빠듯하게 조여오는 것을 느끼며 맞서 싸우고
그에 부딪혀 되울려 더욱더 타오르기를 원하는 바를 드러내거나, 치욕의 저 끝 바닥에서 퍼올려 목구멍
을 부풀려서 혹독하게 강렬하게 운율을 끊어 사람들의 가슴속에 때려박으라한다. 문장도 짧지만 강렬한 금지형과 남성적인 어조로 전체의 분위기를 압도한다.
세부적인 연으로 나누어서 보면 첫째줄부터 3째줄까지는 おまえ라는 청자에게 노래하지말라고
금지부터 시킨다. 둘째줄의 赤(あか)ままの花(はな)는 사전에도 나와있지않아서 꽃의 이름인가 하고
넘어가려다 꽃이라면 사진이라도 찾을수있겠다 싶어 찾아보니 개여뀌(いぬだて)라는 꽃을 의미한다는
글이 보였다. 赤(あか)まま란 원래 ‘찹쌀과 팥을 넣고 만든 밥’을 의미하는 것으로 어린시절 시골에서
살며 놀 것이 없었던 시절에 소꿉놀이를 하며 거기서 ‘밥’의 역할을 하는 꽃으로, 지천으로 널려있는 붉
은 빛을 띄는 꽃을 찧어서 밥이라 칭하고 놀던 것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즉, 어린시절의 아련하고
달콤한 추억에 관한 것을 떠올려 가냘프고 약함을 시로 읊지말라는 의미로 본다.

여기쯤이면 프롤레타리아란 무엇인지 어떤 문학인지 궁금해진다. 프롤레탈리아라고 하는 뜻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 이외에는 생산 수단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를 의미한다. 문학은 프롤레타리
아의 생활을 제재로 하여 그들의 사회·정치적 이념을 표현하는 것으로써 여기서는 예술을 계급적 존재
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으로 보고 계급적 이해를 위한 투쟁 형태로 인식한다. 사회주의 문학이라고도 한
다. 고로 투쟁하는 문학. 계급에 반발하고 자본주의의 불평등에 의한 차별을 투쟁으로 저항하려했던
파였다는 것을 강한 어조의 단어만 봐도 알수있다. 그렇다면 おまえ는 프롤레타리아 작가들을 의미하
는 것이라고 본다.
4째줄부터는 정확히 어떤 것을 배척하고 어떤 것을 지향할 것인지 명확히 밝힌다. 정직한 점을
시로 읊되 가슴 속에 쌓였던 한을 풀어내라 한다. 일본시기 때문에 ‘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어색하게 들릴지모르나 한국어로 표현하자면 가슴속에 부글부글 끓어올라 빠듯하게 아슬아슬하게
한도에 다다른 것을 때려넣듯이 노래하라고 한다면 역시 이 단어 말고는 의미가 딱 와닿는 것이
없다고 본다. 맞서 싸우는 것은 누구와 싸운 것일까. 역시 프롤레타리아 시이기 때문에 탄압하는
당시의 정부의 폭력과 맞서 싸워 가슴속에 있는 모든 열정을 쏟아내라는 이야기였을까. 거세지는
압박만큼 되울려 지치지않고 더 크게 튕겨나오는 노래로 치욕의 바닥에서 튀어올라 자유롭게 노래
하라고 한다. 나머지는 모두 배척하라고 강한 어조로 배타성을 띈다.
8연부터 마지막까지는 매우 고조된 분위기로 이 시를 쓰게된 주제를 강하게 드러낸다.
바닥에서 용기를 짜내어 퍼올려내기가 쉽지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 사회에서 신성화되었던
천황의 존재를 평등이라는 이름 아래로 끌어내려 계층 구조 자체를 뒤흔드는 프롤레타리아 사상은
사회붕괴를 초래할수도 있어 매우 위험했기 때문에 극심한 탄압을 받는 그 상황에서 용기를 짜내어
평등을 외치는 사회주의자로 살아간다는 게 과연 쉬운 일이었을까. 그러나 작가도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이후 전향 작가로써 활동하게 된다. 이렇게 정열적으로 금지시키며 확고히 보이던 시인도 나중에 전향하다니 씁쓸한 감이 있지만, 그만큼 이런 사람이 사상을 바꿀 정도라면 탄압이 보통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수있다. 아쉽게도 프로필 상으로 제명당해서 전향한 것인지 마음이 바뀐것인지 알수없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솔직히 이것을 바란다. 그러니 너희들도 이렇게 해라. 그리고 너희뿐만이 아니라
사람들도 변화시켜라. 라는 어조를 보고 카리스마를 느꼈다. 안타깝게도 일관성있는 자세는
아니었지만 이 시를 쓸 당시에는 전향은 꿈에도 생각하지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바뀌게 되었는가는 개인적으로 작가의 일생에 관해 연구를 해봐야겠지만 현재 구할수있는 정보로는 알아낼수
없다는게 안타깝다. 그렇지만 여성적인 시가 많은 반면에 남성적인 시를 읽고나면 어쩐지 속이 후련한
감이 있어 느끼는 바가 있다. 매일 똑같이 꿈꾸는 듯 얌전하게 자연을 그리고 꿈나라의 환상을 그리는
시에서 탈피해 솔직하게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진실을 털어 심금을 울리게만드는 시를 바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해도 매우 뜻깊게 다가오는 시이다.
*참고자료 - 네이버 지식 in : 赤(あか)ま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