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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현대시

<발표>与謝野晶子 - 君死にたまふことなかれ

작성자조유미|작성시간07.06.03|조회수281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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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노 아키코 (与謝野晶子, よさのあきこ, 1878-1942)


  요사노 아키노는 단가 작가이자 시인으로 결혼 전의 성은 호(鳳)이며, 사카이(堺)에서 유서있는 생과자점인 스루가야(駿河)에서 태어났다. 1899년에는 칸사이(関西)청년 문학회에 가입하여 잡지에 시가를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1900년에 도쿄에 올라가서 신시사(新支社)에 가입하여 단가 작가 요사노 텟칸(与謝野鐵幹, よさのてっかん1873~1935)의 제자가 되었다. 함께 단가(短歌, だんか)를 익히고 있던 친구 야마카와 토미코(山川登美子, やまかわとみこ)와 자주 텟칸을 만나면서 이들은 급속도로 삼각관계의 양상을 띠기에 이르렀다.

 당시 텟칸은 처자가 잇는 몸이었으며, 더구나 아키코의 집안은 봉건적인 기질이 무척 강한 가문이었기 때문에 이 둘의 결혼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1900년 11월 이들 세 사 람은 교토에서 하루 밤을 보내게 되면서 그 관계는 절정에 이른다. 그 후 먼저 토미코가  부모의 지시에 순응해 후쿠이 현으로 시집을 가고, 또한 텟간도 이혼함으로서 이들의 삼각 관계는 자연 해소된다. 마침내 아키코는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을 뛰쳐나와 도쿄로 올라가 텟칸의 집에 들어가는데 이 때가 1901년 6월이었다. 이렇게 집을 나와 당시 일본   가단(歌壇)의 중심인물이었던 텟칸과 결혼해 5남 6녀를 낳을 정도로 현모양처의 길을 걸었다.


 아키코 남편 텟칸은 교토출신으로 본명이 히로시 이고 1892년 도쿄에 올라와 오치아이 나오부미(落合直文1861~1903)의 제자가 되어 평론 「망국의 소리」(1894)를 써서 전통주의  와카 작가의 의고적 문체와 여성적 가풍을 비난하며 시가의 혁신을 위하여 활약하였다. 그는 1899년 신시사(新支社)를 결성하고 1900년대에는 잡지 「명성(明星)」을 간행하였다.

 아키코는 1901년 출판된 처녀 단편집 「헝클어진 머리(みだれ髪)」에서 일본미의 전통적 감각을 서구적 참신함과 융화시켜 자유분방하고 관능적으로 표현함으로 당시 문단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1904년에는 러일 전쟁에 참전한 막내 남동생을 노래한 시 「너는 죽지 말아라」를 발표하여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이 시의 배경


러일 전쟁의 최대 고비는 러시아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중국의 여순항 공격과 동해에서의 해전이다. 이 두 지역에서 승리한 일본은 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전쟁으로 국력의 소모는 크고 또 여순 공격에 많은 인명의 손실이 발생하였다.노기 대장이 이끄는 제 3군은 요새 203고지를 함락 시키려고 몇 번이나 결사대를 보냈지만 실패를 거듭하였다. 그런데 아키코의 남동생은 입대하여 제 3군에 배치되어 있었다.


아키코의 친정은 증조부 때부터 일본과자를 판매하는 상인 집안이었다. 1903년에 아버지가 죽지만 남자 3형제중 큰형과 둘째형이 가업을 계승할 수 없어 막내 남동생이 계승을 했다.

아키코는 큰오빠와 사이가 나빠서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했을때도 위패에 참배하는 것은 허락받지 못했다. 한편, 아버지의 사후 그녀와 마음이 맞는 남동생이 일가의 가장이 되었으며, 결혼한지 10개월도 안된 시누이는 임신을 하고 있었다. 여순에서 일본군의 고전과 참상이 전하여 졌을 때마다 누나로서 견딜수 없는 심경이 들었던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감상

 

시대를 뛰어 넘는 공감(共感)

 이 시를 읽는데 문득 예전 기억이 났다. 나에게는 남동생은 아니지만 2살 터울의 오빠가 있다. 물론 오빠는 한국의 여느 남자들처럼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왔다. 최근은 아니지만 예전에, 언젠지는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 북한에서 미사일이 어쩌네 저쩌네 하면서 뉴스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던 때가 있었다. 그때 흘러나오던 뉴스를 보면서 우리가족은 혹시나 있을 지도 모르는 전쟁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 했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젊은 남자들이 전쟁에 출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어머니와 나는 오빠에게 우스갯 소리삼아 만약에 전쟁에 나간다면 제발 부탁이니 쓸데없는 정의감이나 나라에 충성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구석에 조용히 있다가 돌아와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집안은 대대로 남자들이 정의감이나 정이 많은 성격이라 오빠나 아버지는 우리의 말을 듣고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코웃음 쳤었다. 이건 예전의 기억이지만 만약 정말로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 생각은 지금도 그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나라를 생각하는 충성심 있는 사람이기 보다는 한사람의 목숨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은 나와 이 시를 쓴 요사노 아키코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시에서 시인은 자신의 집안을 상인집안이라 상인집안에 그런 법도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상인이라 하면 자신의 손익을 계산하여 유익한 쪽으로 일을 이끌어 나가기 마련이다. 아키코는 남동생에게 여순성이 무너지든지 말든지 간에 너의 목숨 쪽이 더 유익하니 죽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시를 반전 시라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반전시 라기 보다는 이 시는 단지 자신의 피붙이를 걱정하는 마음이 가득한 누나의 애정이 담기 시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오로지 그 시대에 자칫 잘 못하면 나라의 충성심에 반한다고 비난 받을수도 있던, 누구도 말하지 못하던 모든 어머니와 누이의 심정을 대표했던 대표자가 아니었을까.

  

전쟁이라는 것은 국민이 원한다고 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국민이 하지말자고 해서 안 하는것도 아니다. 전쟁은 다분히 시대에 따른 정치적인 흐름으로 이어지는, 어찌  보면 국익 싸움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어서 따지고 보면 일반 서민에게는 원하지 않는 전쟁을 강요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나라의 이익을 위하여 전쟁을 하는 것은 어떤면에서는 좋을지도 모른다. 전쟁에서 이긴다면 많은 혜택을 보장 받을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을 하던 간에 하지 않던 간에 나, 혹은 남의 아버지나 형 또는 동생들이 피를 흘리고 죽어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시인 살던 시대와 다르지 않듯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에도 전쟁에 많은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다. 그들 한사람 한사람은 어느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자식일 것이며, 혹은 어느 누군가의 동생일 것이며, 또는 어쩌면 살아 돌아오기를 두손 모아 기도하는 어느 여자의 남편일지도 모른다.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모든일들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그리고 또한 바라건데 제발 전쟁을 좋아하는 어떤 정신나간 사람들이 이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참고도서 :  일본시가문학사(태학사)

인터넷 참고 : http://www.geocities.jp/the_longest_letter1920/kimi_shinitamou_koto_nakar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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