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향의 미국편지(261).이상한 호칭···이상한 족보···
안녕하십니까? 덕향입니다.
#풍경 하나.(한인 식당). 족히 70은 됐음직한 할머니 "언니야 여기 물 좀 줘"
스무살 안팎의 아가씨가 물병을 들고 나타납니다.
- 아니 저 아가씨가 할머니의 언니라니…
근데 웬 반말이지.
#풍경 둘.(의류 매장). 30대의 여종업원 "아버님 참 잘 어울리네요".
- 아이쿠! 50 중반밖에 안된 내가 언제 저렇게 늙은 딸을 뒀나.
#풍경 셋.(한인 식당). "아줌마 여기 물 좀…" 쳐다 보지도 않습니다.
옆에 앉은 친구 "이 친구야 그렇게 부르면 안 와" "아가씨! 여기요"
40은 넘었을 아주머니가 다가 옵니다.
- 조금 있으면 손자 볼 나이 같은데 아가씨라니.
#풍경 넷.(신혼부부). "오빠 이리와 인사 드려" "네 오빠냐" "아니 신랑 이예요"
"그럼 너는 오빠랑 결혼 했니?".
- 하긴 새파랗게 젊은 부부가 신혼여행에서 오자마자 여보 당신 하는 것도
닭살 돋는 장면이겠지.
위의 실례들은 LA의 한 복판 한인 타운에서 흔히 듣고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우리가 쓰는 호칭이 왜 이렇게 뒤죽박죽 됐을까요. 매사를 편리하게 생략하고
인터넷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용어를 생산한다는 시대지만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안드십니까?
언니 아가씨 아버님의 말 뜻을 굳이 사전에서 들춰 볼 필요도 없이
한국 말을 한다면 누구나 다 아는 호칭인데 원래의 뜻은 어디 가고
아무렇게나 여기저기서 마구 뒹굴고 있습니다.
아무나 아버님 어머님이고 아무나 언니고 아가씨입니다.
아마도 듣는 사람의 기분을 헤아리고 공손함과 친밀감을 더해 보자는
계산된 의도가 깔려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듬은 나만 그럴까요?
좋게 불러 준다고 손해 볼 것 있겠는가 하겠지만 '과공은 비례'라고
지나치게 공손한 것도 예의에 어긋납니다.
엄연한 서열상의 호칭을 무시해 가며 위 아래를 뒤집어 놓을 수는 없다는 말이죠.
10여년 전 한국 TV드라마에서의 이야기 한토막입니다.
서울 변두리 복덕방 주인이 잔심부름하는 여직원을 툭하면 "미스 김양아…
얘는 내 딸 같은 아이야"라고 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물론 시청자들은 작가가 우리말을 왜곡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드라마 전개상 영어 한마디와 딸을 사용함으로 자신의 유식(무지)함과 친밀감을
과시하려는 얄팍한 의도를 보여 주기 위한 대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 첫머리에 인용한 호칭들은 드라마 대사가 아닌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사례라는 데서 걱정이 앞섭니다. 여기 와서 한번 보십시오. 식당이나 샤핑몰이거나
수퍼마켓같은데서 자주 아주 자주 듣는 호칭들입니다.
더욱이 미국에서 낳고 자라는 2세 3세들 앞에서 엉터리 호칭을 사용한다면
그들도 따라 할 것이 불보듯 뻔하구요. 친척이 적은 미국에 살면서 3촌 4촌 이상 넘어가면
정확한 촌수의 개념은 물론이고 호칭 조차 알지 못하는 2~3세들도 많은게 현실입니다.
실제로 엄마와 친한 친구는 모두 '이모'라고 불러야 되는 것으로 아는 경우도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자기의 고모부를 김서방이라고 불러 성이 '김'씨고 이름이 '서방'인줄로 만
알고 있었다는 2세도 있습니다.
물론 연세도 지긋하고 실제 자기 부모와 비슷한 연령의 어른을 아버님 어머님 하고
부르는 것이야 친근하기도 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우리네 풍습에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때와 장소에 따라 가려서 써야 할 것입니다.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어색해 할 호칭은 쓰지 말아야 합니다.
더욱 본래의 의미까지 왜곡 시킬 바에는 차라리 가만 있는게 더 좋습니다.
나이 지긋한 사람이 젊은 처녀를 언니라고 부르고, 나이가 조금 많다고 아버님이라고 부른다면
그건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도 아니고 친밀감을 나타내는 방법도 아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민망한 경우가 더 많을 것입니다. 특히 나같은 경우엔 내가 대머리라서 그런지
대뜸 ‘할아버지. 아버님! 할때는 민망하기가 이루 말할데 없습니다.
우리 말 잘 가다듬으면 더 좋겠지만 그냥 족보라도 올바로 지킬 수 있게
바르게 쓰면 더더욱 좋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2008년 1월 26일(토 )
미국 캘포녀에서
덕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