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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꽃비처럼 / 박수호

작성자군불|작성시간21.10.30|조회수62 목록 댓글 0

 

 

꽃비처럼 / 박수호

 

텔레비 뉴스를 보면

세계는 무척 힘들겠다 싶다

 

사랑하는 것에조차

거리를 두라고 한다

 

마음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말

혼잣말처럼 들린다

 

여전히 꽃은 환하게 피었다가

비처럼 흩날린다

 

 

* 박수호 시인

1953년 전남 해남 안동리 출생, 목포교육대학과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졸업

30 여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한 후 명예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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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독자가 박수호의 시 <꽃비처럼>을 가리키며 시를 이렇게 써도 되냐고 묻는다. 그 독자는 이 시가 뭘 말하는지를 알지 못하겠단다. 전체 네 개의 연이 다 따로 각기 다른 모습을 제시만 할 뿐 의미가 연결되지 않아 시인의 의도를 알지 못하겠다는 얘기였다. 문학작품 감상에 고정된 혹은 하나의 답이 없는 것이고, 그 독자의 감상은 그만의 느낌이기에 뭐라 폄하할 수는 없다. 그런데 나는 그에게 분명하게 말했다. “시 참 좋은데요.”라고.

 

시를 읽어 보면 그 독자가 말했듯이 전체 네 개의 연에 서로 다른, 다르다기 보다는 서로 별개처럼 느껴지는 상황이 제시된다. 그런데 찬찬히 읽어 보면 1, 2, 3 연은 연결되고 마지막 4 연은 앞의 세 개 연의 상황과는 전혀 별개인 것처럼 읽히지만 이 역시 이어지는 상황이다. 다만 주체가 다를 뿐이다.

 

시 속 상황들을 들여다보자. 독자들도 느끼겠지만 이 시는 근래에 쓴 것으로 읽힌다. 왜냐하면 1, 2, 3 연이 모두 코로나19 상황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스나 메르스 때와는 달리 코로나19는 전 세계적인 상황이 되었고, 결국 WHO에서 펜데믹을 선언하지 않았던가. 그만큼 2020년과 2021년은 코로나 시대이다. 그러니 뉴스를 들어보면 ‘세계는 무척 힘들겠다 싶’은 것은 시인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우리도 K-방역이라 일컬을 정도로 다른 어느 나라보다 선도적으로 방역을 시행하고 있고 그 바탕이 되는 것이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두기이다. 이런 사회적 거리두기의 단계별 격상과 관련하여 시인은 이를 사랑하는 관계라 해도 ‘거리를 두라고 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와 관련하여 TV나 라디오 그리고 신문 지상에는 방역 혹은 전염병 전문가들이 나와 토론도 하고 해설도 한다. 흔히 거리가 멀어질수록 마음도 멀어진다고 말하는데 방역과 관련한 ‘거리두기’에 따라 거리가 멀어지는 상황을 ‘마음은 거리의 제곱에 / 반비례한다’는 말장난 같은 해설이 문학적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방역과 연결해 보면 시인의 귀에 ‘혼잣말처럼 들’린다.

 

결국 1, 2, 3 세 개의 연은 지금 현재의 코로나19 상황과 그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데 마지막 연은 꽃이 피고 지는 것이 코로나19와는 상관이 없다는 말로 들린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식물에게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지만, 그렇기에 코로나19와는 상관없이 꽃들은 때맞춰 피고 진다고 해석하면 이는 피상적인 이해이다. 시인의 의도는 다른 데에 있다.

 

물론 4연은 1, 2, 3 연의 상황과는 전혀 다른 상황, 바로 세상만사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있는, 인간들의 사회상, 복잡다단한 상념들로부터 마치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한 자연의 순환이 제시되어 있다. ‘여전히 꽃은 환하게 피었다가 / 비처럼 흩날린다’는 시행은, 꽃이 피고 지는 것이 인간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이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냥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1, 2, 3 연의 상황에 전혀 마음을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전히’란 부사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이전의 상황과 같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실은 꽃 본연의 특성 – 꽃이라는 식물이 인간의 의도나 행동과는 전혀 상관없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인의 눈에는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전 세계는 물론이고, 방역이 어떻느니, 거리두기가 어떻느니 이러쿵 저러쿵 떠드는 언론조차 호들갑으로 보일 뿐이다. 그러니 갈릴레오가 그랬듯이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한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제목 ‘꽃비처럼’이 시인이 제시하는 답이다. 분명 시인은 코로나19에서 멀리 떨어져 아니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전 세계적 이슈인 코로나19 상황을 조감(鳥瞰)하고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경지를 풀어내고 있기에 내게는 분명 ‘좋은 시’이다. ♣

 

- 이병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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