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꾹채는 피고 / 마경덕
뒷산에서
바람을 타고 마을로 내려오던 그 소리
어느 나뭇가지에 홀로 앉아있었을까
둥지 하나 짓지 못한 어미 가슴에
발갛게 번진
봄볕에 열흘을 말려도
마르지 않는 울음이 어렴풋이
탱자울타리를 넘어오면
고모는 방아를 찧다 말고
치맛자락으로 쏟아지는 가슴을 받아내고
그때 어린 내게 뻐꾸기울음이 옮겨붙었다
뻐, 꾹, 뻐, 꾹,
오래전 뻐꾸기가 되어 날아간
볕에 다 바랜 고모와
뻐꾹채 피던 그 늦봄을
나는 주머니에 가만히 담아 두었다
― 시집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 (상상인, 2022)
* 마경덕 시인
1954년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신발論』 『글러브 중독자』 『사물의 입』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
북한강문학상 대상. 두레문학상 수상. 선경상상인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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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꾹채’가 피는 시기에 발생한 추억이 시적 서사로 재현되었다. 늦봄 보리가 익어가던 시기쯤일 것이다. 여름으로 넘어가는 5월과 6월 사이 산비탈을 보듬고 울어 젖히는 뻐꾸기 소리는 가슴을 후벼 파듯 울림이 길다. “둥지 하나 짓지 못한 어미 가슴에/ 발갛게 번진” 조마조마한 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듯 뻐꾸기 울음이 고모의 가슴을 헤집어 놓은 것이다. ‘둥지 하나 짓지 못한’ 뻐꾸기와 고모의 동병상련의 심정에서였을까? 고모는 일찍이 누군가를 뒷산에 묻은 슬픔을 안고 있다. 그 ‘어미 가슴’ 속 아픔의 대상은 ‘뻐꾸기’가 울어대는 계절에 유명을 달리한 어린아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를 잃은 고모의 슬픔은 쉽게 치유될 수 없는 고통이 되었다. 방아를 찧던 그날도 뻐꾸기가 슬피 울었고 “고모는 방아를 찧다 말고/치맛자락으로 쏟아지는 가슴을 받아내고/그때 어린 내게 뻐꾸기울음이 옮겨붙었다”는 추억이 실재한 서사를 추동한다. 애잔한 추억 속 고모도 이 세상에 안계지만, ‘뻐꾹채’가 필 때면 속절없이 그립기만 한 인정머리가 더 애잔해진다. 사람은 죽음을 맞는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숙명이다.
- 박철영 (시인.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