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객들은 밝은 옷을 입는다 / 이수명
그는 컵에 담긴 아이스커피를 빨대로 휘휘 저으며 성묘를 가자고 한다. 성묘객들은 모자를 쓰고 밝은색 옷을 입는다. 손에 꽃을 들고 있다. 무덤을 빙 둘러 서 있다.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서 절을 한다.
그는 컵을 휘휘 젓는다. 컵 속을 들여다보며 세상을 떠난 사람의 성묘를 가자고 한다. 공원묘지에는 성묘객들이 많아서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전개된다. 미리 성묘한 사람들과 미리 성묘하려는 사람들이 벌초를 권장한다. 무덤을 정리하고 벌집을 숨긴다. 벌초를 하는 사람이 있고 벌초하고 잔디를 입히는 사람이 있고 벌초하고 잔디 입히고 다시 와서 벌초하는 사람이 있다. 올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벌초를 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컵을 계속 열심히 휘젓는다. 학교를 그만두고 직장을 그만두고 그는 밝은색 옷을 입는다. 운동을 그만두고 성묘를 가자고 한다. 컵 속에는 아직도 얼음이 둥둥 떠 있다. 그는 컵을 들어 올린 채 성묘에 접속한다. 성묘 문화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성묘객들이 무리를 이루어 나란히 걷는다. 입은 옷을 넓게 펼치며 벌떼를 스쳐 지나간다. 벌들이 전부 다른 무덤에서 기어 나온다. 성묘객들은 서로의 존재를 비밀에 부친다.
— 계간 《창작과비평》 202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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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명 시인
1965년 서울 출생, 서울대 국문학과 졸업 및 중앙대 대학원 문에창작학과 박사학위
1994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 『붉은 담장의 커브』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마치』 『물류창고』 『도시가스』 등
산문집 『나는 칠성슈퍼를 보았다』
연구서 『김구용과 한국 현대시』
시론집 『횡단』 『표면의 시학』
평론집 『공습의 시대』 등.
2001년 박인환문학상, 2012년 노작문학상, 2014년 이상시문학상, 2018년 김춘수시문학상, 2022년 청마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