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자연분해 / 이수명
비가 짧게 내렸다. 비가 그친 후 넓은 구름이 왔다. 우리는 구름을 거의 보지 않았다. 보았을 수도 있다. 구름 전선은 발달하고 발달하고 발달을 멈추고 북상 중이었다. 구름은 수시로 바뀌었다. 구름의 모양이 흐트러질까 근심하는 동안 구름이 사라졌다.
상설 할인마트 앞에 한 노인의 조각상이 있었다. 뼈가 드러나 있는 상이었다. 지나는 사람들이 조각상을 피해서 갔다. 나는 노인의 편을 들었다. 뼈가 점점 튀어나오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걷고 있었다. 짧은 비에 땅을 뚫고 올라온 지렁이들이 번들거렸다. 지렁이들은 비킬 줄 몰랐다. 헝클어진 지렁이들 사이를 통과하고 통과했다. 하루하루를 통과해서 하루하루의 투명한 비들이 깨어지고 우리는 걸어가면서 노인이 되었다. 구름 조각을 들고 서서 노인이 되었다. 구름을 놓쳤다. 노인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뼈가 움직이고 있었다.
버스는 타지 않았다. 차량이 뜸해졌다. 무엇이 우리를 앞으로 떠밀고 있는지 우리는 오늘보다 앞서 있었다. 오늘은 자연분해되고 있었다. 발이 구멍이 숭숭 뚫리고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손을 뻗어 단추를 채운 것도 같았다. 어디까지 왔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도블록이 새로 깔린 곳까지 왔다. 뭘 생각하고 있니, 네가 물었다. 아무것도
그냥 구름 한 점에 대해서
— 웹진 《님Nim》 202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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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명 시인
1965년 서울 출생, 서울대 국문학과 졸업 및 중앙대 대학원 문에창작학과 박사학위
1994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 『붉은 담장의 커브』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마치』 『물류창고』 『도시가스』 등
산문집 『나는 칠성슈퍼를 보았다』
연구서 『김구용과 한국 현대시』
시론집 『횡단』 『표면의 시학』
평론집 『공습의 시대』 등.
2001년 박인환문학상, 2012년 노작문학상, 2014년 이상시문학상, 2018년 김춘수시문학상, 2022년 청마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