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질 순서 / 성영희
이사를 앞두고
하나씩 버리기로 한다.
앞으로 들어왔던 것들이
뒷걸음질로 나간다.
이 집에 살면서 가장 불화했던 것이
모서리들이었고
화해한 것도 모서리들이었다.
오래된 것들은 그 모서리부터 낡고 닳는다.
화해는 서로 닳는 일이었다.
몇 번의 유행이 바뀌는 동안
옷가지들은 날씬했던 과거에 머물러 있다.
버릴 것들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
무슨 죄를 짓는 것만 같아
손대지 못한 채 며칠이 흘렀다.
무거운 것들이 놓였던 자리마다
꾹 참고 또 참았다는 듯
짓눌린 자국들은 이 집에 남을 것이다.
이런저런 자국들은 쉽게 따라나서지 못할 것이다.
쌓아둔 책이 허물어지고
가지런했던 것들은 헝클어지면서
제 쓸모를 버린다.
미끄러진 책들 사이로
섞이고 가려진 이름, 이름들
몸 없는, 무수한 이름들과 동거했었다.
고요했던 구석들이
먼지로 살찌고 있었다.
ㅡ계간 《시와소금》 2025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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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영희 시인
충남 태안 출생. 방송통신대 국문과 졸업
2017년 《경인일보》, 《대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섬, 생을 물질하다』 『귀로 산다』 『물의 끝에 매달린 시간』
<김우종문학상〉 〈농어촌문학상〉 〈동서문학상〉 〈시흥문학상〉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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