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빨래 / 이현호 그러나 당신은 도로 위에서 길 잃은 지렁이를 맨손으로 집어 풀숲에 놓아주던 사람 죽은 새를 두 손으로 옮겨 공원 나무 아래에라도 묻어주던 그런 당신을 또다시 떠올리는 밤은 잔뜩 밀린 빨랫감처럼, 나는 내가 지겨워진다 어제 입었던 옷을 다시 걸치고 킁킁, 냄새를 맡아보는 것처럼 비릿한 추억에 코를 파묻은 채 나는 나를 떠나지 못하고, 당신은 당신을 떠나지 못해서 우리는 우리를 떠났지 덜 마른 옷을 입은 것처럼 찝찝해하는 내가 지긋지긋해 빨래통을 뒤집어 속엣것을 세탁기에 쏟아붓는다 이제는 내가 너를 사랑해도 당신에게는 남의 일이지 그러나 당신은 지렁이와 죽은 새를 돌려보낸 손길로 내 손을 잡았던 사람 집 안의 창문을 죄 열고 밤공기를 불러들이며 나는 빨래집게처럼 입을 다문다 당신의 손가락 사이로 들려 있던 지렁이와 죽은 새와 같이 어둡고 긴 시간에 젖은 빨래처럼 걸려서 - 『상상인』 2025년 봄호, 제3회 상상인작품상 수상작 --------------------------------- * 이현호 시인 1983년 충남 전의 출생, 추계예술대 및 고려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 2007년 『현대시』등단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비물질』 산문집 『방밖에 없는 사람, 방 밖에 없는 사람』『점, 선, 면 다음은 마음』등 2019년 시인동네문학상, 2025년 상상인작품상 수상 ****************************************************** 무더운 밤,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맥락을 알 수 없는 얕은 꿈들이 수차례 왔다 가기도 한다. 이런 밤에는 더러 덜 마른 옷을 입은 것처럼 찝찝해지기 마련. 비릿한 추억에 한 번쯤 코를 파묻기 마련. 스스로를 지긋지긋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고, 그리워하고, 어둡고 긴 시간 속에 뜬눈으로 웅크려 밤이 지나길 기다린다. 여름은 여지없이 혹독한 계절. 시를 읽으며 새삼 깨닫는다. 지난 사랑은 참으로 질긴 것. 소량의 추억만으로 온밤을 꼬박 앓게 한다. 그러나 진짜 질긴 건 외로움 아닐까. 길 잃은 지렁이나 죽은 새를 보살피는 사람의 손길, 사람의 온기를 향해 속수무책 번져가는 외로움. 외로움을 덜지 못하는 한 젖은 사랑을 멈출 방도란 없다. 그립다는 말은 어쩌면 외롭다는 말. 길 잃은 지렁이와 같이, 죽은 새와 같이 끝 간 데 없이 쓸쓸하다는 말. - 박소란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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