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장 / 안지은 어디야? 나 수목장하러 가는 중이야. 그래? 수요일마다 목장에 가는구나. 걸으면 좋지, 힘들면 나무 그늘 아래서 좀 쉬기도 하면서 잘 걷고 와. 졸지에 나는 수요일마다 목장을 걷는, 걷다 힘들면 나무 그늘 아래에서 숨을 돌리는 산책하는 사람이 된다. 수요일의 산책에는 어떤 나무가 필요할까. 사시사철에 의미를 두면 소나무가 좋겠고, 한 철 피다 지는 것에 의미를 두면 벚꽃나무가 좋겠다. 나에게 의미를 두면 덩굴나무가 좋겠고, 선과 악에 의미를 두면 사과나무가 좋겠지. 산책에는 어떤 동물이 필요할까. 개는 너무 친숙하고, 독수리는 너무 거창한가. 목장에는 어떤 동물이 사나. 양과 소와 말과 개는 띠로써 한평생 살 것인데 당신은 양띠생이고 누군가에게 당신은 좋은 사람이었겠지만 나에겐 아니었으니, 알면서도 나는 당신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니 오늘 산책에는 전염병을 앓고 있는 양과 뿌리가 썩은 사과나무가 좋겠다. 나는 더 이상 걷지 않을 예정이다. 산책이라면 지긋지긋하거든. 아주 오랫동안 당신의 그림자를 밟으면서 여기까지 걸어왔거든. 내 말 듣고 있어? 한 줌의 재는 말이 없으나 말라비틀어진 나무에는 여전히 그늘이 있다. 나는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걸음을 멈추고 그늘 아래에서 숨을 돌린다. 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땅에 묻자 내리쬐는 볕이 살갖을 파고들고 재가 흩날린다. 그제야 나는 나무랄 게 없는 사람이 된다. - <포지션> 2023년 여름호 ---------------------------------- * 안지은 시인 1992년 서울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과 졸업 201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앙팡 테리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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