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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기록 / 박미라

작성자군불|작성시간26.06.07|조회수39 목록 댓글 0

 

 

사소한 기록 / 박미라

고래가 있었다

캄캄하고 뜨겁고 기다란 몸을 가진 고래였다

우리 집 고래는 불을 잘 먹는단다 할머니는

고래 속으로 고래 속으로 불을 밀어넣었는데

고래가, 욕심껏 삼킨 불을 어쩌지 못해

꾸역꾸역 게워낼 때면 내 등짝이 후끈거렸다

할머니가 죽고, 동생이 죽고, 뒤란 감나무가 죽고,

숨죽여 울다가 차디차게 식어버린 고래

더는 불길 들이지 않는 저녁을 견디던 고래가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

내가, 고래 없는 세상으로 숨어든 다음

고래는 바다로 갔다던데

더는 불길 삼킬 고래도 없는 옛집을 떠난 후

불꽃 같은 분수를 짊어지고 떠돌더라는

고래 이야기를 듣고 또 듣고

고래가 없이도 등짝을 데우는 방법이 우거진 세상에서

내 등짝은 마른장마에도 눅눅해서

가끔 바다에 들려 고래 소식을 수소문해보는데

바다가 지피는 불은 참, 뜨겁기도 하더군

얼마나 다행인지

 

 

- 시집 『죽음의 쓸모』 (달아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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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미라 시인
경기 광주 출생, 경희사이버대 문예창작과 졸업 
1996년 〈대전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울음을 불러내어 밤새 놀았다』『비긋는 저녁에 도착할 수 있을까』『파리가 돌아왔다』『죽음의 쓸모』
수필집 『그리운 것은 곁에 있다』『유랑의 뼈를 수습하다』등 
서귀포문학상대상, 천안문학상, 대전일보문학상본상, 충남시인협회상본상, 2023년 지리산문학상 수상
現)나사렛대학교 평생교육원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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